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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당시 한국 사회의 예법이 너무 번거롭고 허례허식에 치우쳐 사람들의 실생활에 오히려 심한 구속을 주고, 경제에도 큰 낭비를 가져와 사회 발전에 장애가 됨을 통탄했다. 원기11년(1926), 예법의 근본정신인 공경(恭敬)·겸양(謙讓)·무계교(無計較)의 정신만을 살려 번거롭고 구속·낭비가 많은 당시 예법을 ‘사실을 주(主)로 하여 허례를 줄이며, 정신을 주(主)로 하여 형식을 따르도록 개혁’하는 신정의례법(新定儀禮法)으로 제정·발표했다. 신정의례법은 회원 중에 이해하는 사람부터 실행하게 했다. 출생의 예는 노덕송옥의 손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4.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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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3년(1928) 음력 3월 26일은 새 회상 제1대 제1회 기념일에 정기총회를 겸한 날이었다. 이때 3일간 기념총회를 익산총부에서 개최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회상 창립 한도 1대를 36년으로 하고, 1대를 다시 12년씩 3회로 나눠 정한 뒤 열린 첫 기념총회다. 총회에서는 창립 제1회 12년간의 사업평가와 제2회 사업계획을 토의해 교단 발전의 기초를 확립하는 방안이 모색됐다. 총회 준비를 위해 연초부터 정산종사 등 5인이 창립 12년간의 사업보고서와 각 교도의 공부·사업성적을 사정·편성했다. 총회에서 사업보고와 역사보고가 이뤄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3.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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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순정’을 찾아 합력하는 청년·청소년회원들이 늘고 있다. 이에 원불교 전북교구는 3월 16일 서전주교당에서 원불교 법회의 ‘순정’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학생연합법회를 열어 눈길을 끈다.‘합작’이란 주제로 열린 연합법회는 새학기를 맞은 11개 교당(남원·상동·서신·원평·임실·전주· 전주혁신·평화·효자)의 중·고등학생회원 74명을 대상으로 열렸다. 연합법회를 통해 전북교구내 청소년교화단을 활성화 하여 교구 내 청년들의 결속력을 높였다. 전북교구 이외에도 중앙교구의 북일교당과 정토회교당 학생회원들도 참여해 원불교 정서로 마음
온라인뉴스
김도아 기자
2024.03.1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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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2년(1927) 3월 간행된 에 이어 교단 최초의 수양·연구의 교리서 이 5월에 간행됐다. 에는 상하 편과 연구의 강령·연구의 진행조건·연구의 사연조건·각항 연구 문목·공부의 진행 순서 등 7편이 수록되어, 수양과 연구의 지침이 되도록 했다. 은 원래 로 불리는 전래의 도교 계통 수련서였다. 원기2년(1917) 정산종사가 증산 교단을 방문했을 때 수집돼 원불교(당시 불법연구회) 교단에 수용됐다.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감수했고, 이춘풍(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3.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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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2년(1917)에 설립된 저축조합은 원기4년(1919) 초겨울 소태산 대종사의 변산 입산으로 인해 발전적 해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의 법을 신봉한 이동안은 고향인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 신흥에서 이완철 등 10여 명과 함께 공부 비용을 장만할 목적으로 ‘묘량수신조합’을 조직했다. 길룡리 기성조합의 정신을 이어 근검저축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신흥마을에 설립된 묘량수신조합의 조합원 전부는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1920년부터 26년까지 7년간 조합의 총자산을 1천1백여 원까지 모았다. 이 가운데 상당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3.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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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9년(1924) 처음 상경(上京)해 경복궁 앞 당주동에 경성임시출장소를 정하고 한 달여간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창덕궁 인근 가회동(嘉會洞)에 살고 있던 31세의 이동진화(李東震華)가 박사시화의 안내로 찾아와 귀의했다. 원기11년(1926) 여름까지 경성지역 회원 10여 명은 소태산 대종사가 상경하면 이동진화의 창신동 수양처와 계동(桂洞) 이공주(李共珠)의 집에서 법문을 받들고, 몇몇은 총부 동(冬)·하선(夏禪)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경성과 총부는 거리가 멀고 소태산 대종사를 모실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3.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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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9년(1924)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후, 소태산 대종사는 진안 만덕산 만덕암에서 한 달 선회(禪會)를 열었고, 이듬해인 원기10년(1925) 익산총부에서 혁신 교리와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발표했다.정기훈련은 매년 정기로 공부를 훈련시키는 방법으로서, 동하 양기(冬夏 兩期)의 선(禪)으로 하되, 하선은 음력 5월 6일에 결제해 8월 6일에 해제하고, 동선은 11월 6일에 결제해 이듬해 2월 6일에 해제했다. 과정은 염불·좌선·경전·강연·회화·문목·성리·정기일기·주의·조행·수시설교 등 11과목으로 정했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2.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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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익산총부는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에 위치하며 소태산 대종사가 법을 전한 성지(轉法聖地, 傳法聖地)로, 익산성지라고도 불린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9년(1924) 이리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열어 회상을 내외에 공개했다. 그해 말 총부 건설이 시작됐고 전무출신의 주경야독 공동체 생활도 시작됐다. 익산성지는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할 때까지 교화경륜을 폈던 곳으로 소태산 대종사와 총부 건설 당시 선진들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다. 그리하여 곳곳에 훈련, 공동생활 등의 목적으로 건축물을 건립했다. 총부 최초의 건물인 도치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2.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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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삼동회(이하 삼동회)가 신임 발령자들을 대상으로 사령장 수여와 직원연수를 진행해 새롭게 도약하는 삼동회를 다짐했다.1월 26일 익산성지 대각전과 법은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동회 연수는 새로 인사를 받게 된 신임 발령자들을 축하하고, 발령자들의 근무환경 안내에 대한 강의 등으로 이어졌다.유형진 이사장은 특강시간을 통해 시설장이 가져야 하는 태도와 지역사회 및 직원들과의 소통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사령자 연수를 통해 경청하는 마음과 시설장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온라인뉴스
유원경 기자
2024.02.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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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원광효도마을이 산하 시설 내 시설장과 사무국장, 회계사무원,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직원역량 강화교육(문서·회계)을 펼치며 원기109년을 준비했다.1월 29일 진행된 이번 직원역량 강화교육은 법인과 산하 시설문서의 통일성을 갖추기 위함이며, 시설장과 중간관리자, 해당 실무자의 업무 능력 향상을 목적했다. 특히 일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갖춰 효과적인 업무환경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이날 김동원 사무국장(법인사무처)이 법인행정에 대한 안내를 진행했고, 김진수 센터장(원광효도마을노인복지센터·효도의집)이 2023년도 지도점검 주의사
온라인뉴스
유원경 기자
2024.02.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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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9년(1924)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마치고 만덕산 만덕암(萬德庵)에서 1개월 선회(禪會)를 열고 하산(下山)했다. 이후 총부(總部) 건설 기지를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344-2번지 황등호수 인근 도치고개로 정하고 서중안의 희사로 3,495평을 매입했다. 그해 가을 이리역(현 익산역) 뒤 오산면 송학리 박원석(朴元石)의 집에서 임시 간부회의를 열어 총부 신축 건을 논의했다. 서중안 회장과 각처 회원들이 의연금(義捐金)을 보냈고, 한겨울 눈보라를 무릅쓰고 김남천이 목수, 송적벽이 토수, 송규·송도성 형제가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2.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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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삼동회 광양지회(광양장애인복지관, 중마장애인복지관, 광산특수어린이집, 서산나래, 햇살) 산하 시설 임직원들이 1월 17일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38만원을 희사하며 따뜻한 소식을 전했다.이번 후원은 삼동회 광양지회 임직원들이 ‘사랑의 열매 희망 2024 나눔캠페인’ 후원에 동참하며 펼쳐진 행사였으며, 지역사회로부터 큰 호응이 있었다.이영재 관장(광양시광양장애인복지관)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삼동회 임직원들이 마음을 모았다”면서 “성금이 지원되는 곳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며, 지역사회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사회
온라인뉴스
유원경 기자
2024.02.0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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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6년(1921) 가을, 소태산 대종사는 정산종사에게 “어디든지 가 보아라. 그러면 만나야 할 인연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전주는 돌아볼 것이 없다”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의 명을 받들어 길을 가던 정산종사는 진안 만덕산(萬德山) 미륵사(彌勒寺)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는 동안 화주 최도화(崔道華)가 정산종사를 생불님으로 받들었다. 최도화는 정산종사가 봉래정사로 돌아가자 찾아와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 귀의하고 진안지방과 경성지방의 인재들을 귀의시켰다. 소태산 대종사는 최도화의 주선으로 오창건과 송도성을 수행인으로 하여 만덕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1.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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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9년(1924) 음력 4월, 전주 전음광의 집에서 서중안·송만경·이청춘·이춘풍·문정규·박원석·전음광 7인이 불법연구회 창립발기인이 되어 창립 준비와 총부(본관) 기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회상의 총부 기지 터로 토지가 광활하고 교통이 편리해 무산자(無産者)들의 생활과 각처 회원들의 내왕에 편리한 이리(익산) 부근으로 정하기로 했다. 터전을 정한 후 6월 1일(음력 4월 29일), 이리 죽산 보광사에서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각 지역 대표들과 다수의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불법(佛法)에 정통하고 범사(凡事)에 모범이 될 만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1.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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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9년(1924), 소태산 대종사는 경성(서울)에서 이리를 거쳐 음력 3월 말일(31일)에 전주 완산동 곤지산 아래 전음광(全飮光)의 오두막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불법연구회 창립발기인 7인과 모임을 가진 후 전주에서 머물렀다. 그해 6월 1일(음력 4월 29일) 진행할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십여 일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는 전주천 옆에 있는 한벽당(寒碧堂)에서 송적벽의 소개로 20여 년간 독실하게 기독교를 신앙해 온 조공진(曺工珍) 장로를 만났다. 그가 문답을 청하자 소태산 대종사는 “예수교에서도 예수의 심통(心通) 제자만 되면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1.0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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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증을 받아서 너무 자랑스러워요. 책 많이 읽어서 똑똑해지고, 일상수행의 요법을 잘 지키면서 법회에도 잘 나갈 거예요.” 새롭게 입교한 임재우 어린이회원(초2)의 다짐이 울림을 남긴다. 12월 17일 원불교 광주전남교구 청소년교당을 중심으로 진행된 독서모임법회 ‘우리들의 대책’이 4번째 막을 내리는 현장에서다.독서 모임 ‘우리들의 대책’은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책마다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펼치며 이를 새로운 교화방식으로 삼고자 추진됐다. 특히 이번 활동에 참여한 10명 중 4명의 아이들이 청소년교당으로
온라인뉴스
김도아 기자
2024.01.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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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보다 늦게 찾아온 추위가 곱절로 차가운 바람과 눈 세례로 온 대지와 몸을 웅크리게 한다. 이럴 때 따스한 선풍으로 몸과 마음을 녹이고, 4대를 공부심으로 시작하게 할 동선(冬禪)이 재가출가 공부인을 기다린다. 영광국제마음훈련원(1월 8~11일)·만덕산훈련원(1월 9~13일) 동선 소식이다.영광국제마음훈련원은 새해기념 해맞이기도와 동선을 연다. ‘새해를 영산성지에서’를 주제로 내건 영광국제마음훈련원의 동선은 1월 8~11일 진행된다. 성지에서 서원을 세우고, 정진적공으로 새롭게 거듭남을 목표로 열리는 이번 동선은 교도정기훈련으로
온라인뉴스
이현천 기자
2024.01.0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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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암 백학명 선사는 소태산 대종사에게 정읍(井邑) 내장산 내장사(內藏寺)에서 ‘합작으로 혁신선원을 만들자’고 제의했으나, 내장사 대중들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소태산 대종사는 내장사를 나와 경성(京城, 서울)으로 갈 결심을 했다. 김제와 전주를 경유해 원기9년(1924) 3월 30일(음력 2월 25일) 아침, 소태산 대종사는 익산에 있는 이리역에서 송규·서중안·전음광을 수행인으로, 최도화를 길 안내자로 하여 경성행 기차를 타고 저녁때 경성역에 도착했다. 경성역을 나와 태평로 태평여관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최도화는 박사시화(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1.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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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8(1923) 음력 6월 말, 소태산 대종사는 봉래정사에서 서중안 부부의 간청을 받고 새 회상을 열기로 했다. 그러다 모친(유정천(劉定天))의 환우 소식에 영광 연성리 아우 동국(東局)의 집으로 가서 모친을 간호하며 “인간의 생사는 다 천명(天命)이 있는 것이오니, 안심하시고 항상 일심 청정의 진경(眞境)에 주하십시오”라고 위로하고 봉래정사로 돌아왔다. 얼마 후 모친이 열반하자 소태산 대종사는 각지의 제자들과 치상(治喪)을 마치고 제자들과 영산으로 와서 옥녀봉 아래 도실(道室)에 모였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제자가 모이자 도실은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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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 실상초당에서 제자들과 생활을 시작하자 찾아오는 이는 갈수록 많아졌다. 원기6년(1921), 월명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의 터 위에 송적벽이 터를 다졌고, 김남천이 목수 일을 맡아 초당을 짓고 ‘석두암(石頭庵)’이라 이름 붙였다. 석두암이 완공되자 실상초당은 여자 제자들이, 석두암 윗방은 소태산 대종사가, 아랫방은 남자 제자들이 사용했다. 제자들은 소태산 대종사가 석두암에서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훈련하면서 정법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원기8년(1923) 초여름, 김제(金堤)에 사는 서중안(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8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