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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진수 교무] (이하 )에 ‘창립 당년의 회세’가 기록돼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회원 상황은 영광·김제·전주·부안·경성·진안 등에 남자 약 60명, 여자 약 70명 정도였고, 전무출신자는 영광·익산 등을 통해 수십 명에 이르렀다. 회관 건축 이전부터 전무출신이던 김광선, 오창건, 이동안, 이준경 등은 박원석(송학리)의 집에 임시로 머물면서 이 시기에 송학리 동양척식회사 소유의 토지를 빌려 근근이 농사를 지었다.에 따르면, 1924년 9월에 박원석의 집에서 개최된 임시요인회는 제1
다시 읽는 불법연구회
장진수 교무
2024.03.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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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원기로는 9년. 한 해에 이뤄진 소태산 대종사의 걸음은 바빴고, 과감했고, 다정했다. 그 걸음을 좇다 보면, 우리는 아마 1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수시로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고, 걸음에 동행하며, 때론 같은 길 위에서 ‘세상을 위한 꿈’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에는 지난 1월 17일 자 〈원불교신문〉 특별기획 ‘1924, 그해 소태산 – 세상과 소통하다’에 미처 담지 못하고 남겨둔 이야기를 모았다. 당시 이리역1924년, 원기9년 당시 익산은 상당히 근대화된 도시였다. 특히 1912년 3월 6일 역무를
이달의 기획
장지해 편집국장, 민소연 기자
2024.02.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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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6년(1921) 가을, 소태산 대종사는 정산종사에게 “어디든지 가 보아라. 그러면 만나야 할 인연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전주는 돌아볼 것이 없다”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의 명을 받들어 길을 가던 정산종사는 진안 만덕산(萬德山) 미륵사(彌勒寺)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는 동안 화주 최도화(崔道華)가 정산종사를 생불님으로 받들었다. 최도화는 정산종사가 봉래정사로 돌아가자 찾아와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 귀의하고 진안지방과 경성지방의 인재들을 귀의시켰다. 소태산 대종사는 최도화의 주선으로 오창건과 송도성을 수행인으로 하여 만덕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1.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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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원기로는 9년, 꼭 100년 전이다. 게다가 60간지의 첫해인 갑자년. 그해 세상에 ‘본격 등장’한 한 종교단체가 있다. 바로 원불교(당시 회명(會名) 불법연구회)다. 여기서 ‘본격 등장’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있다. 1924년 그해에 원불교가 내디딘 역사의 남다른 의미 때문이다. 그 내딛음에는 이전까지의 역사와는 차원이 다른 결연함 같은 게 들었다. ‘세상 속으로’ 그리고 ‘세상과 함께’. ‘그해 소태산’은 세상 속으로 한발을 크게 들이는 동시에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교화’를 본격화 했다. 실제로 ‘그해
이달의 기획
대표 집필=장지해 편집국장
2024.01.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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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8년(1923) 음력 6월 말, 소태산 대종사는 모친 유정천의 환우 소식에 영광으로 향했다. 모친을 간호한 뒤 봉래정사로 복귀했으나 얼마 후 모친이 열반에 들었고, 다시 제자들과 영광의 도실에 모였다. 이때 많은 제자가 모여 불편이 이어지자 도실을 범현동에 옮겨 짓자는 발의가 나왔고, 범현동 산기슭에 터를 정하고 옥녀봉 아래 도실을 옮겼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 집에 영산회상을 다시 짓겠다는 의미를 담아 ‘영산원’이라 이름 붙였다. 이후 아래채(현 학원실), 식당채(소실)가 신축됐다. [2023년 12월 27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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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8(1923) 음력 6월 말, 소태산 대종사는 봉래정사에서 서중안 부부의 간청을 받고 새 회상을 열기로 했다. 그러다 모친(유정천(劉定天))의 환우 소식에 영광 연성리 아우 동국(東局)의 집으로 가서 모친을 간호하며 “인간의 생사는 다 천명(天命)이 있는 것이오니, 안심하시고 항상 일심 청정의 진경(眞境)에 주하십시오”라고 위로하고 봉래정사로 돌아왔다. 얼마 후 모친이 열반하자 소태산 대종사는 각지의 제자들과 치상(治喪)을 마치고 제자들과 영산으로 와서 옥녀봉 아래 도실(道室)에 모였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제자가 모이자 도실은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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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에 자리를 잡은 뒤 제자들의 방문이 많아졌다. 원기6년(1921)에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 땅에 초당을 짓고 ‘석두암’이라 이름 붙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석두암이 지어진 뒤 남녀 제자를 실상초당과 석두암에 나눠 지내게 하고,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원기8년(1923)에는 김제에 사는 서중안이 찾아와 감복해 부자지의를 맺고, 하산을 간청했다. 이를 소태산 대종사가 허락하면서 새 회상 창립 준비가 시작됐다.[2023년 12월 20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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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 실상초당에서 제자들과 생활을 시작하자 찾아오는 이는 갈수록 많아졌다. 원기6년(1921), 월명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의 터 위에 송적벽이 터를 다졌고, 김남천이 목수 일을 맡아 초당을 짓고 ‘석두암(石頭庵)’이라 이름 붙였다. 석두암이 완공되자 실상초당은 여자 제자들이, 석두암 윗방은 소태산 대종사가, 아랫방은 남자 제자들이 사용했다. 제자들은 소태산 대종사가 석두암에서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훈련하면서 정법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원기8년(1923) 초여름, 김제(金堤)에 사는 서중안(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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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에 입산한 소태산 대종사는 월명암에 머물다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영광·김제·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찾아왔고, 소태산 대종사는 그들에게 관심입정과 견성성불 하는 방법의 법문을 설했다. 원기5년(1920) 소태산 대종사는 새 회상 기본 교리교강인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을 발표했고, 과 을 초안했다. 두 교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초기교서로 사용됐다. [2023년 12월 13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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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 머물자, 전주와 김제 등지에서 송적벽(宋赤壁), 김남천(金南天) 등이 찾아와 모시기를 원했다. 원기4년(1919) 음력 12월, 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서 산 아래인 실상사 옆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기자 김남천과 송적벽이 시봉(侍奉)을 하고, 김남천은 홀로 된 딸 김혜월(金慧月)과 외손녀 이청풍(李淸風)을 초당으로 오도록 해 식사 수발 등의 시봉을 담당하게 했다. 이때 영광·김제·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서로 소식을 통해 찾아오자 소태산 대종사는 그들에게 관심입정(觀心入定)과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방법의 법문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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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2년(1917)부터 깨달음의 심경과 세계상을 내다보고 많은 가사와 한시를 읊었다. 이를 이라 불렀다. 내용은 도덕부활과 장차 회상 건설계획 등이었다. 이후 원기5년(1920) 봉래정사에서 교리의 강령 발표 후 은 불살라졌다. 후인들이 외우던 서문 첫 절과 11구의 한시만이 에 담겨 전해지고 있다. [2023년 10월 18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0.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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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2년(1917)부터 깨달음의 심경과 그 지견으로 세계상을 내다보고 많은 가사(歌辭)와 한시(漢詩)를 읊었다. 당시 김성섭(金成燮)이 이를 기록하여 이라 하였다. 그 내용은 ‘도덕의 정맥(正脈)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며, 세계의 대세가 역수(逆數)가 지나면 순수(順數)가 올 것’이라는 것과, 장차 회상 건설계획 등이었다. 원기5년(1920), 소태산 대종사는 변산 봉래정사(蓬萊精舍)에서 교리의 강령(綱領)을 발표한 후 은 ‘한 때의 발심(發心)에 도움은 될지언정 많은 사람을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0.1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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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다원화된 현대 사회는 한 사람이 조직을 이끌 수 없다. 집단지성이 조직을 이끈다. 변화의 속도가 급속하여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하여 해결안 합의를 보기도 참 힘들다. 집단지성은 다수결이 아니다. ‘민주주의 함정’이 있다. 소수의 진실을 다수의 표결로 덮을 때다. 한 사람의 말이 금과옥조(金科玉條)일 때가 있고, 열 사람의 백 말이 백해무익(百害無益)할 때가 있다. 집단지성은 ‘집현(集賢)’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토론이 생명이다. 초기 경전 ‘사요(四要)’에서는 ‘지자본위(
평형수
이준원 소장
2023.08.2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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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세훈 교무] 원불교 중앙총부는 원불교의 모든 행정과 교당·기관의 업무를 관장하는 총본부로서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먼저 지리적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344-2’에 위치한다. 역사적으로는 소태산 대종사가 부안군 변산반도에 건립한 ‘봉래정사’에 주석하다가 1924년(원기9) 6월 1일에 익산시 마동에 있는 보광사라는 조그마한 절을 잠시 빌려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한 후, 제자들과 함께 익산시 부근을 답사하고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에 총부 건설기지를 정했다.또 공간적으로는 소태산 대종사가 불법연구회 창립
법규궁리
박세훈 교무
2023.0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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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원기13년(1928) 영춘원(현 구종법실)에서 제1대 제1회 기념총회(사진)가 300여 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개최됐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1회 기념총회 2일째 유공인들과 기념 촬영 및 제1회 사업성적표 수여식을 갖고, 이어 3일째 새 회상 첫 승급예식을 거행했다.흥미로운 사실은 소태산 대종사가 봉래정사 수양 시 시봉진들에게 각자 역할에 맞는 소품을 갖추게 해 사진 촬영을 했던 점이다. 이렇게 연출을 통한 사진기록을 남겼던 모습에서 소태산 대종사의 역사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소태산 대종사는 제1회 기념총
문화
유원경 기자
2022.12.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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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수양원의 모체금강원(金剛院)은 소태산 대종사의 단독 거주처로, 불법연구회를 공개한 후 최초의 조실이다. 원기13년(1928) 음력 3월 26일, 영춘헌(현 구종법실, 이후 종법실이 됨)이 준공된 후 도치원(현 본원실) 뒤 고갯마루에 소태산 대종사의 단독 주석처를 짓기 시작했다. 동년 5월 5일 10여 평의 팔작(八作)지붕에 기와를 얻은 3칸 기와집이 완공됐고, 이로써 소태산 대종사가 입실해 당호를 ‘금강원’이라 지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봉래정사 석두암을 떠나온 지 4년여만의 일이며, 소태산 대종사는 처음으로 기와집에 거주하게 됐
문화
유원경 기자
2022.10.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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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회상 총본부 마련의 주역원기9년(1924) 11월 불법연구회 최초 회관인 도치원(道治院, 현 본원실)을 건축하고, 불법연구회 간판을 걸기까지 물심양면으로 가장 큰 힘을 보탠 인물을 꼽으라면 추산 서중안 대호법을 들 수 있다. 서중안이 봉래정사에서 소태산 대종사에게 간곡한 청을 올렸다. “이곳은 길이 험난하여 교통이 불편하고 장소가 협착하오니 마땅히 교통과 장소가 편리한 곳을 택하여 모든 사람의 앞길을 널리 열어주심이 시대의 급무일까 하나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서중안의 말에 응하여 정식으로 회상을 열 계획을 함께 의논한 후 그
문화
유원경 기자
2022.09.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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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안훈 교무] 돌아오는 원기109년(2024)이면 익산에 원불교 중앙총부가 들어선지 일백년이 된다.익산총부 일백년 동안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많은 창립유공자들이 있지만 김제를 대표하는 인물로 추산 서중안(1881~1930)을 꼽을 수 있다. 서중안은 그의 법호만큼이나 서릿발 같이 짧고 굵직한 삶을 살았다. 김제에서 태어난 서상인(호적명)은 집안 가풍으로 유학을 공부했지만 노비문서를 불살라 신분제 차별제도를 바로잡고자 하는 진취적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질서를 향하는 그의 행동은 지역 유림에도 신선한 반향(反響)을
은생수
안훈 교무
2022.06.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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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선각 원무] 변산 제법성지 수호기지인 원광선원에서 직무를 시작한지 3개월째다. 예전에는 그저 공부를 하려고 해마다 2번 정도 순례했지만, 올해는 정식으로 원광선원에서 일정한 역할을 부여받고 도량관리, 성지수호, 훈련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덕분에 수행이라는 새 개념이 정리되고, 실천하는 신앙심이 저절로 이뤄지는 기분이다. 이 도량으로 인도해 준 장오성 원광선원 원장님에게 감사한 마음이다.나는 이곳에서 맡은 일을 할 때마다 기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이 일은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를 닮아가는
은생수
최선각 원무
2022.03.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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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주은경 교도] 지난해 5월 박중훈 교무님이 전북교구에서 진행하는 ‘3대가 함께하는 성지순례’ 행사를 공지했다. 남편은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회라고 반가워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계획을 세워 우리 부부와 강남교당 소속 신혼부부인 큰딸 내외, 그리고 두 딸이 함께했다. 그중 큰딸이 태명 ‘똥똥이’를 임신한 지 8개월째가 돼 가족 3대가 함께하는 성지순례를 계획하게 됐다. 1박 2일 동안 익산·변산·영산성지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계획하고 원광선원을 방문해 원장님과 숙박을 결정했다. 폭염주의보로 35도를 넘나드는 강렬한 햇빛 속에
은생수
주은경 교도
2021.04.08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