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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한 달만 가서 살아보고 와라.”출가를 반대하던, 아니 어쩌면 ‘시집가지 않는 삶’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한 달’을 조건 삼아 딸의 이리(현 익산)행을 승낙했다. 스물셋, 적지 않은 나이였다.공부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와 한 달이 흐른 걸 알았다. 아버지는 “집에 가자”고 했다. 딸이 물었다. “아버지께서 제 생사고락을 대신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답했다. “그건 안 되지.” 딸은 말했다. “그러면 제 인생은 제가 개척을 해야지요.” 그렇게, 한 달은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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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9.1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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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진타원 전팔진 원로교도(이리교당). 그의 본적은 ‘전북 익산시 북일면 신용리 344-2’, 즉 중앙총부다. 불법연구회 초창기,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설계해 준 집을 지어 익산총부 구내에 온 가족이 살았고, 그 집에서 그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 총부 구내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기억이 확연하다. 구타원(이공주 종사) 할머니집을 지나면 총부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 팔타원(황정신행 종사) 할머니집, 그 옆이 자신이 나고 자란, 큰 방(소태산 대종사 당대 선방) 하나를 놀이터 삼던 ‘우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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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원 기자
2023.08.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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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지금 합천 황매산 자락에 뜻을 함께하는 도반들과 삼하나농원이라는 농장을 마련했는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시선 공부터입니다.” 김우성 전 수위단원(광안교당)은 여든에 가까운 원로임에도 교법 실현과 교단 부흥을 위한 고민, 그리고 교화를 위한 활동으로 여전히 바빴다. 원불교의 호법수위단원과 부산교의회의장, 광안교당 교도회장을 역임한 그는 교단을 위해 헌신해온 시간만큼 교단 세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어떤 이보다도 애정이 깊었다. 그 때문인지 재가출가 교도들에게 원로로서 후진들을 격려했고, 모두가 교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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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경 기자
2023.04.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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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다니던 청년은 ‘불교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만난 에서 소태산 대종사가 이미 불교의 현대화를 이뤄놓았음을 발견했다. 마침 친구의 소개로도 알게 된 원불교의 실상은 그의 생각과 딱 맞는 공동체였다.아침 좌선을 마친 후 괭이와 연장을 메고 일터로 나가고, 보수를 따로 받지 않는다는 점에 감동한 청년은 그길로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를 찾아왔다. 인생의 방향을 새로 잡은 그 청년, 바로 벽산 김종천 원로교무(碧山 金宗天·7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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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12.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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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1999년 밀레니엄이 다가오던 때, 세상은 디지털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때 다큐멘터리와 광고에서 영감을 얻었다. 현각스님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서구사회에 명상바람이 분다는 것과 할머니들이 ‘디지털? 돼지털!’을 외치는 광고를 보며 ‘앞으로는 영상과 디지털 시대가 오겠다’는 생각에 바로 캠코더를 구매했다.그렇게 당하는 곳마다 영상을 찍으며 교단 역사를 기록하는 숨은 사관 역할을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보산 최경도 원로교무(補山 崔敬道·72). 그는 방 안에서 세계를 보는 요즘 시대에 맞게 익산시 삼기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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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11.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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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잘 왔어. 오늘 나랑 재미지게 놀게.”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인사하는 그의 미소는 마을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해바라기와 꼭 닮았다. 퇴임 후 농촌개발 활동에 전력하고 있는 청산 장연광 원로교무(靑山 張淵光·72)를 찾아갔다. 옛 모습 그대로인 그의 고향집은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시골집처럼 정겹다. 인터뷰 중에도 쉼 없이 울리는 전화 너머로 ‘장 이장님’을 애타게 찾는 마음과 그의 다망함을 알 수 있다.배운 대로 할 뿐퇴임을 앞두고, 장 원로교무는 이사병행의 수행터이자 새로운 교화패턴을 만들기 위한 구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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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10.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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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원로원의 복도에 펼쳐진 소담한 화원을 지나면, 작지만 알차게 채워진 방을 만날 수 있다. 인산 조정중 원로교무(仁山 趙正中·85)가 머무는 곳이다. 퇴임 이후에도 방송, 인터뷰,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모습으로 후진들에게 귀감이 되고있는 그는 가을바람처럼 시원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요즘보다 총총한 그 시절“어릴 적 기억이 요즘 기억보다 총총해요”라며 천천히 옛 기억을 더듬는 조 원로교무.일산 이재철 선진의 인도로 총부를 찾아온 부친(덕산 조희석 대봉도)에게 소태산 대종사는 “그대의 법당(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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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09.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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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영산원에서 두 번째로 태어난 아이는 성지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사랑을 교단과 후진들에게 되갚고 있다. 초기교단의 생생한 모습을 또렷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타원 이정무 원로교무(理陀圓 李正務·91).구순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맑은 눈빛과 밝은 미소로 후진을 반겨주었다. 이 원로교무는 44년의 교역생활동안 목포교당·초량교당·돈암교당·동명훈련원·수원교당·대구교당·대구경북교구장을 역임하며 교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일평생 전심전력을 다해왔다.은혜 속에 꽃피운 목포교화초기 목포교당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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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08.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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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공부로 살아온 일평생그는 매일 기도를 한다. 젊을 때부터 기도에 재미를 붙였다. 정토회관이 이리교당에 있었을 때, 100일 기도를 시작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교당에 가지 않아도 가정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다 ‘모든 것이 내가 잘못하고, 내가 지은 것이구나. 이 회상 만났을 때 빚 다 갚으라는 신호구나’ 하는 감응을 얻기도 했다. 정토회(正土會, 남자교무 부인 단체)의 원로로 후배 정토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주는 임타원 김도진 원로정토(林陀圓 金道珍·95)를 만났다.또 그는 교무들의 지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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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07.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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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전후 혼란스러운 시국에 피난 삼아 고향(영광 군서)을 떠나다가 원불교를 만났다. 그리고 사정이 어려워 배움을 얻지 못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20여 년을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전무출신의 길도 아이들과 어른의 말씀을 받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난 이 회상에 일평생 감사할 뿐이다.소산 정성덕 원로교무(昭山 鄭性德·93)를 만났다. 푸근한 기운과 인자한 미소를 담은 그는 50여 년의 교역생활 중 감찰원 과장, 반백년기념사업회 사무차장, 교정원 재무부장, 서울회관 관장,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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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06.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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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영광군 백수면 천정리에서 태어나 언덕을 넘어 다니던 소년은 원불교를 내 집처럼 여기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마음 없이 출가의 길을 나섰다. 주변 인연이 모두 불연이었음은 두고두고 감사할 일로 남는다.노구의 나이에도 일평생 일과로 다져온 정갈함과 은은한 소박함이 느껴지는 길산 한길량 원로교무(吉山 韓吉良·85). 그는 중앙총부에서 2년, 원광대학교에서 30년, 부송종합사회복지관에서 7년 동안 근무하며 대학과 원불교 사회복지의 발전, 교단의 화합·상생을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그동안 발표한 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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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05.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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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한국 서예계의 거목인 그의 모습은 붓끝처럼 부드럽고, 먹빛처럼 선명하다. 어느덧 일흔과 팔순의 중간지점에 선 가산 조대성 원로교무(可山 曺大性·75). 지금도 그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다.어릴 적 아버지에게 영자필법을 배우며 붓을 처음 잡았던 것이 한평생 길이 되었다. 전무출신 서원 당시 ‘나를 위하고 원불교 문화를 위한 서원’이 함께 섰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렇게 동양 최초로 설립된 원광대학교 서예과의 발전과 원불교 문화창달에 기여했다. 송죽헌(松竹軒)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작업실에는 아직도 열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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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2.04.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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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지치고 힘들 때, 그림을 그리면 저절로 쉼(休)이 된다. 그래서 이름 붙이기를 ‘원묵화(圓墨畵)’라 했다. 원묵화는 원불교의 법문을 명상과 차와 선의 정신을 함께 담아 마음공부하며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복타원 김원도 원로교무(福陀圓 金元道·77)의 방에는 은은한 묵향이 풍긴다. 그리고 그가 그리는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은 김 원로교무를 꼭 닮았다. 그림은 결국 자신을 투영하는 일이라는 말이 실감난다.자연스럽게 고른 검은색 외투여상을 졸업한 후 시험을 봤고, 군무원 4급에 합격했다. 4급임에도 “초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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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2.03.1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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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스물두 살, 당시로써는 꽤 늦은 출가 서원이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양재학원(양장 디자인 학원)을 다니던 그를 출가하게 한 데에는 여러 명의 집요함이 있다. 그러나 정작 당시 영산선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작은 오빠(고 은산 김장원 종사)에게는 출가 권유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데….서원을 세우게 된 계기에 대해 “우리집에 수시로 드나들던 영산선원 학생들과 교무들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말하며 웃는 이타원 김기덕 원로교무(里陀圓 金基德·76세). 그의 고향은 소태산 대종사와 같은 영촌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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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2.02.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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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지난 11월 6일 대봉도 법훈을 수여받은 밀타원 진문철 원로교무(密陀圓 陳文徹·76세). 원기55년 출가 후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자’는 공부표준으로 밀양·창녕·인천·임피·여수·모스크바·전농·교동·백운교당 등 가는 곳마다 교화하는 재미로 살아온 그. 퇴임 후에는 모스크바 교당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보람으로 지내왔다. 그는 창녕교당, 인천교당, 여수교당 등을 신축하고 인재양성에도 힘써 9명의 전무출신을 배출했다.보람된 삶을 찾아 출가의 길로전북 정읍이 고향인 진문철 원로교무는 외사촌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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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12.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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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행복한 가족캠프로 마음공부의 사회화에 앞장서고 있는 금산 권도갑 원로교무(金山 權道甲·73세). 그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눈앞에 아른거리는 총부 전경부산이 고향인 권 원로교무는 고등학교 3학년 쯤(원기52년) 친구를 따라 교구 체육대회에 참석하며 원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다. “초등학교 동창인 미산 장도영 교무가 당시 초량교당 학생회장이었어. 체육대회 선수가 필요하다고 해서 갔다가 하루종일 뛰고 교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이 인연이 됐지.” 입교 후 그는 초량교당 청년회를 재창립하고, 부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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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11.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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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한학과 한시에 깊은 조예를 가진 궁산 오광익 원로교무(宮山 吳光益·77). 원기56년 교화부 주사를 시작으로 원광고등공민학교, 서울보화당, 부산보화당에서 근무한 그는 이후 상주선원, 서초교당, 서울회관, 금천교당, 시민선방, 변산원광선원, 교화훈련부 등지에서 근무한 후 원기99년 퇴임한다. 한학을 통해 대종사의 법을 빛내는데 힘쓴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한문 공부로 인연이 된 원불교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태어난 오 원로교무. 빈한했던 농촌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한기인 겨울, 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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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10.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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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20년 넘게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유산 이성길 원로교무(裕山 李性吉·85).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건강한 심신으로 자력 생활하며 연로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노인들이 안정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헌신봉사한 공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장 표창, 원광효도마을이사장 감사패, 부송종합사회복지관장 감사장 등 각종 표창장과 감사장을 수상했다.전재동포구호사업소, 주산종사 만나함경남도 원산. 이 원로교무의 고향이다.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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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09.0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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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원불교 최초 미국 교무로 교사에 기록된 유산 정유성 원로교무(唯山 鄭惟誠·86). 세계학계에 처음으로 원불교를 알리게 된 그의 삶을 조명해 본다.검사에서 전무출신으로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난 정유성 원로교무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익힌 일어는 훗날 그가 대학교수를 하며 불교서적 일어판을 읽는 기초가 됐다. 영광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독일어 발음이 좋다며 독일어를 전공하면 성공하겠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때부터 놓지 않고 독일어를 공부해 그가 박사학위 자격시험을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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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08.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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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우리가 수도인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되려면 시대를 따라 학문을 배워야 해.” 광주원광신협과 원광새마을금고 설립에 앞장서고 원칙경영의 탄탄한 기초를 세운 유산 이원경 원로교무(76·愉山 李圓京). 그는 학교법인 원광학원 상임이사로도 13년간 재직하며, 원광학원법인을 단단한 반석에 올려놓는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교전 읽고 감명받아이 원로교무는 전북 완주군 조천면 동산리에서 태어났다. 고2에서 고3으로 학년이 올라가던 시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 한창일 때 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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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07.07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