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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좋은 교무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있을까요?” “복잡하게 살지 않고, 스스로 낙원 속에 살아야 합니다.”김기원 교무(기간제·태안교당)의 말에 참가자들의 고개가 주억인다. 11월 10~12일 원불교 익산성지에서 진행된 일반신성회에서다. 10명의 일반 신성회원들은 3일간 익산성지와 영모묘원, 구룡상사원을 찾아 인생의 새 길을 궁구했다.이들이 일반신성회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제각각 다르지만, 통일된 마음은 모두 ‘서원’에 있다. 각자의 서원을 찾기 위해, 또는 서원을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기 위해 함께한 것이다.
교화
유원경 기자
2023.11.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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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교단 창립에 힘을 모은 9인 선진을 비롯해 원불교 조상들이 모셔진 영모원에서 일주일 특별천도재를 통해 1만4천여 제위 존영의 완전한 해탈 천도를 기원했다. 4월 25일~5월 1일 진행된 이번 특별천도재는 제를 위해 가족이 모이기 어려웠던 이들이 가족 단위로 참여한 경우와 조상들의 기념제를 합동으로 모시고자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올해 진행된 특별천도재에는 지난해에 비해 위패가 100위 이상 증가했으며, 5월 1일 종재식 날 대원전 법당을 직접 찾은 가족과 친인척들도 200여 명에 달해 지난해보다 증
교화
유원경 기자
2023.05.1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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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영모원이 가정의 달을 맞아 1만4천여 제위 존영에게 추원보본의 정성으로 특별천도재를 올렸다. 매년 진행되는 영모원 특별천도재는 4월 25일 초재를 시작으로 5월 1일에 종재식을 맞았다. 이번 특별천도재에는 가족과 친인척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불전에 위패를 올리는 명단은 사전 접수 받아 준비됐으며, 올해는 영모원 전체 제위 위패와 함께 883위 존영의 위패가 올랐다. 또한 특별천도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인연들을 위해 행사 후 유튜브로도 방송했다.이현덕 영모원장은 “특별천도재 기간동안 존영 가족들의
교화
유원경 기자
2022.05.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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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산 고문국 원정사가 4일(화)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반했다.원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보산 원정사는 원기26년(1941) 원불교에 입교했다. 원기 23년(1938) 모친을 따라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를 친견하고 “법명(문국·文局)대로 문명을 위하여 큰일을 담당하라.”라는 말씀을 받들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전남대학교에서 강의하다 1957년 미국 네브래스카대학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30여 년간 서울대학교 교수로서 부총장 등의 요직을 맡았고, 한국물리학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등에 선임되었다
온라인뉴스
이여원 기자
2022.01.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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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세완 교무] 얼마 전 유명 연예인 부부가 이혼을 진행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동창 교무가 나에게 물어 왔습니다. 교무님은 손예진, 송혜교 같은 예쁜 사람과 3개월 살아보고 평생 혼자 살래? 아니면 평범한 사람하고 일생을 살래? 선택한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 거야? 뜬금없는 이 물음에 얼마 전 교무 훈련 시 영모묘원에서의 일이 떠 올랐습니다.중도훈련원 교무 훈련 시 매끼 공양 후에는 영모묘원 산책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그날도 산책하던 중 갑자기 한 교무가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풀밭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땅바닥에는
설교
정세완 교무
2021.09.0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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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영모묘원에 잠든 영가들을 위해 가족과 친척, 친구, 법동지들이 완전한 해탈 천도를 축원했다. 영모묘원은 1일 대원전에서 묘원과 대원전, 자연장지에 안장된 제위존영 1만4천여 명을 위로하는 제17회 합동 특별천도 종재식을 지냈다.합동 특별천도재는 가정의 달을 맞아 해마다 열리고 있으며, 4월 25일 초재를 시작으로 이날 종재까지 모두 7재를 진행했다. 올해는 사전에 접수를 받은 800여 명이 합동 특별천도재 명단에 올랐다. 또 코로나19 상황을 반영해 초재부터 종재까지의 영상을 별도로 제작해 각 가정에서 유
교화
이은선 기자
2021.05.0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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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단에 들어와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바로 ‘주인主人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예전에는 보통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한 말씀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대산종사님께서는 출가위를 말씀하시면서 “출가위가 다른 것이 아니다. 교단이 내 일이다”고 하셨습니다. ‘교단이 내 일이다’를 다른 말로 하자면 ‘교단의 주인이 됐다’는 뜻이며, 조금 더 심오한 말로 바꾸면 ‘대의大義를 잡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신심 공심 있는 분이 바로 주인 그러나
편편법문
정리·사진 안세명 교무
2021.03.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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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진실하고 순수한 성품으로 간난한 초창기 교당에서 감원으로 봉사하며 알뜰하게 공중사에 힘쓴 이타원 홍하영(尼陀圓 洪何靈)정사가 9일 원광효도요양병원에서 열반에 들었다. 이타원 정사는 원기54년 운봉교당을 시작으로 동산선원, 한국보육원 감원으로 근무하다, 원기70년 늦게 서원승인을 받고 동년 영모원 감원으로 봉직하다 원기79년 정년 퇴임했다. 이타원 정사는 ‘싱싱한 생선’ 사오라는 스승의 말씀에 ‘싱싱’이라는 생선을 찾아 온 시장을 뒤질 만큼 오롯한 신성으로 일생을 교단과 스승의 명에 일호의 불평불만 없이 봉
열반
이여원 기자
2021.01.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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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현실인연이 끝났다. 필자가 염산정사를 만난 건 원기92년 1월이었다. 원로원 근무를 마치고 삼정원에 부임함으로 관계되어 진 것이다. 회상하면 첫 모습의 기억은 점잖아 보이는 선비의 모습이었다. 5년의 시간을 함께하고 자선원으로 이동하면서 4년의 사이가 있었고, 원기102년 다시 삼정원으로 사령되었으니 만났으니 도합 8년의 인연을 가진 셈이다.지난 1월 설 전전날 염산정사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된 것도 일반적인연이 아니라 생각된다. 원로원근무 11년 생활 속에 많은 교단의 원로수행자들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독자기고
김도영 교무
2020.02.0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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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몇 년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해외여행 때 도시에 묘지가 있으면 꼭 한 번씩 가본다는 김영하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니까”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아름다운 묘지에 대해 재미있고 의미 있게 풀어낸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묘지가 많다. 익산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부하는 공원묘지가 있다. 바로 영모묘원이다. 영모묘원 역사전북 익산시 왕궁면 호반로 173-45에 위치한 재단법인 영모묘원은 원기68년(1983년) 6월 1
세상은 한 일터
김세진 기자
2020.01.2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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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안세명] 도올 김용옥 교수가 명절대재를 맞아 영모묘원(원장 이현덕)을 방문, 심향일주(心香一炷)를 올렸다. 도올 교수는 원기99년(2014) 5월 전무출신 자연장 묘역에 ‘식운릉(息韵陵)’이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전무출신의 고결한 삶을 추모하는 시문을 올린 바 있다.그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수학시절 6년간 익산에 머물며 원불교 교무들의 숭고함에 깊은 교감을 가졌다”며 “전무출신 묘역에 헌시를 올리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거룩한 일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가슴에 맺히는 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미니인터뷰
안세명
2019.12.1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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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5일 영모묘원 자연장 앞에서 추석명절을 앞두고 중앙총부와 인근기관 재가출가 교도들이 추원보본의 향례를 올렸다. 추석향례는 선령들의 은덕에 감사하고 보은 봉공을 다짐하는 자리로 전산 종법사를 비롯해 중앙총부 임직원, 원로교무들이 참석했다. 이날 향례는 상주선원 교무들이 주관했으며, 〈예전〉 기념제 식순에 준하여 독경과 성가가 진행됐다. [2019년 9월20일자]
한컷
유원경 기자
2019.09.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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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안세명] "별 말씀 없으신데도 가슴에 스며드는 인자함과 화열(和悅)이 넘치는 성자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관산 이춘일 종사(80·전포교당)는 학창시절 익산성지 구조실에서 뵈었던 정산종사를 떠올린다. 그는 "지금껏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정산종사의 자비덕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스승을 모셨는가에 따라 일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 체험했다"고 회고한다.원불교와의 첫 인연 그는 중학교 3학년 "원불교를 가봤는데 제도도 좋고, 교법도 훌륭하다"는 지리 선생님의 말에 10여 명 친구들
호법의삶
안세명
2019.08.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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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투철한 책임감과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전무출신의 삶을 일관한 노산 김태성 정사(櫓山 金泰成 正師)가 14일 오후 3시3분 원병원에서 열반했다. 노산 정사는 원기64년 삼동원 주사를 시작으로 영모원과 지리산국제훈련원, 장수수양원, 훈훈한동네(현 장수노인전문요양원), 이리자선원 원장을 거쳐 정읍원광보은의 집 원장을 마지막으로 원기103년 정년퇴임했다. 노산 정사는 강직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매사에 정성을 다해 맡은 책임을 완수했다. 각 임지마다 공중사를 오롯이 이뤄내겠다는 정신으로 전무출신으로서의 모범을 보였으며
열반
유원경 기자
2019.06.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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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은생어해(恩生於害). 기구한 삶이 아니었다면 역겁난우를 뚫지 못했을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고, 가족은 빚보증에 모든 것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다가 친견한 소태산 대종사.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 시절 대종사께 들었던 꾸지람과 칭찬을 잊지 못한다는 법산 이백철(92·法山 李百徹) 원로교무. 그가 평생 일관했던 강직한 신성과 공심, 공부심은 어릴적 뵈었던 소태산 대종사와의 언약에서 비롯됐다.빚보증으로 흩어진 가족그가 태어난 전북 무주군 적상면은 당시 산중이었다. 불법연구회는커녕 세상 돌아가는 소식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9.06.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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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몸은 천하의 뒤에 서서 일하고 마음은 천하의 앞에 서서 일할지니라.' 고향 죽마고우의 인연으로 대도정법을 알아본 후 30여 년을 흐트러짐없이 공심으로 일관해 왔던 진산 강보광 원로덕무(69·眞山 姜保光).그는 어려운 생활을 겪었기에 자수성가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사업이 번창했음에도 출가하기로 약속된 날이 다가오자 아무런 미련없이 처분하는 강단을 보였고, 이러한 신의는 퇴임하는 날까지 일관해 전무출신으로서 보여준 큰 사표가 아닐 수 없었다.자수성가와 양복점전북 김제군 금산면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9.04.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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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원 송인영 덕무 모친, 김덕인(87세) 교도가 5일 완주요양병원에서 열반했다. 발인식은 7일 천도장례식장에서 진행되며, 주례교당은 영모묘원이다.
동정
원불교신문
2019.01.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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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열린 수위단회 인사위원회가 교단 중요인사를 심의결의했다. 성기윤 미주동부교구장 겸 뉴욕교당 교감교무(유임·변경), 김법조 일본교구장 서리 겸 오사카교당 주임교무, 박윤철 원광대학교 총장, 사회복지법인)원광효도마을 박은전 이사장, 임규호 원광사 사장, 김보선 배내청소년훈련원 원장서리, 이명수 만덕산훈련원장 겸 만덕산농원 원장, 강혜선 제주국제훈련원장, 황주원 제주원광요양원장, 강진영 하이원빌리지 원장서리, 김법열 은덕문화원장, 이현덕 영모묘원장(유임 3년)을 임명결의했다. 한편 본사 사장에는 최정풍 교무를 임명결의했다. 최정풍
교화
이여원 기자
2018.12.2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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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 장애 얻었지만 고마운 일도 많아그저 대종사 교법 믿고 가야겠다는 생각 뿐[원불교신문=장영근 덕무] 고생을 많이 했던 영모묘원 생활에서도 고마운 일들이 있었다. 먼저 지금의 정토를 만난 일이다. 사실 정토는 전무출신을 서원하려고 당시 김영효 교무와 살았는데 몸이 워낙 약해서 간사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다. 교무님은 안되겠다 싶어서 나와 인연을 맺어줬다.지금까지 나를 믿어주고 함께 법도반으로 살아준 정토를 만나게 된 것은 영모묘원에서 그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은이 내려준 복이라 생각한다.또 고마운 이들은 내일처럼 달려와준 마을
교화자의 삶
장영근 덕무
2018.04.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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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할 당시에는 교무품과 구별이 따로 없어힘들고 용금 적었지만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생각[원불교신문=장영근 덕무]영모묘원 초창기에는 늘 바쁜 나날이었다. 따로 법문을 듣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새벽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녁 늦게쯤이나 끝나는 일과가 365일이었다. 그 흔한 추석·설 명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백철 원장이 원평에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당시 대산종법사가 원평에 내려와 요양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대산종법사는 교도나 교무를 막론하고 칭찬을 참 많이 해주었다. 나
교화자의 삶
장영근 덕무
2018.04.19 1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