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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구도 역사와 선진들의 창립 정신이 어려있는 영산성지, 그 영성의 땅에 소태산의 경륜을 이어받고자 모인 예비교무들이 있다. 영산선학대학교가 있는 영성의 고향 영산성지에서는 마치 공동체 생활을 함께했던 초기교단의 선진들처럼 예비교무들이 서원으로 뭉친 젊은 기운을 힘차게 뿜어내고 있었다.백인혁 영산선학대학교 총장은 “학생들이 소태산 대종사의 대행자로 부족함 없는 교역자로 성장하기를 기도한다”며 그가 꿈꾸고 준비하는, 그리고 그 역시 스승님의 경륜을 받들어 실현하고자 하는 학교의 모습을 소개했다.그는 ‘영산선학대학교(이하
특별인터뷰
유원경 기자
2024.02.2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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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1981년 11월 SK에 입사한 후 28년간 공부와 사업, 조직 생활을 배웠다. 입사 후 3개월밖에 안 된 신입사원에게 ‘주유소경영 매뉴얼’을 만드는 일을 주위의 반대와 우려에도 상사가 과감하게 맡겼다. 창고를 개조해 편집실을 만들어 주고, 회사에서 가까운 호텔도 잡아 숙식 제공 등 온갖 편의를 다 제공해줬다. 지덕을 겸비한 당시 상사는 훗날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을 교육업무와 경영기법 개발에 매진했다. 얼마 후 영업교육과가 생기고, 1995년 대전에 마케팅개발원이
평형수
이준원 소장
2023.10.0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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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맥타원 이선균 정사(脈陀圓 李善均 正師)가 8월 12일 열반에 들었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준 대종사님과 원불교에 한없이 감사하다”며 봉공직으로 주어진 일터에서 계교 없이 오직 정법 만난 감사함으로 심신을 바쳐온 일원회상의 주인으로 살아온 일평생이었다. 맥타원 정사는 해방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의 시대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용신교당 야학에 참여해 출가의 서원을 키웠다. 출가 후 초임지인 영산선원에 근무하며 ‘정관평 재방언 공사’에 합력해 어느 때는 감원으로, 또는 농부와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8.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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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회상을 지키는 높은 고목처럼 장구히 교단을 짊어져 왔던 스승, 예타원 전이창 원정사(睿陀圓 全二昌 圓正師). 이제 무겁게 짊어졌던 공도사업의 법장을 후진들에게 맡긴 채 먼 피안의 수양길로 떠났다. 큰 어른이었던 예타원 전이창 원정사는 원기108년 5월 30일 밤 11시 19분 원병원에서 입적했다. 육일대재를 이틀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의 기일을 따라 기어이 큰 스승님 곁으로 가고야 말았다. 제생의세의 대서원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가 되어 지극한 수행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80여 년이었으며, 세수 98세다. 늘 묵묵히 공도에 헌신한
열반
글=유원경 기자
2023.06.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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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3대선원이자 교역자양성기관으로 역할해 온 영산선원이 마지막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4년제 영산대학으로 승격, 개편한다. 영산대학은 선학의 전통을 잇고, 교학과목 외에도 특색있고 내실있는 교육으로 인재양성에 매진할 예정이다.[2023년 2월 8일자]
Won Time
정리=이현천 기자
2023.02.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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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건타원 김대관 원정사(乾陀圓 金大觀 圓正師)가 9월 3일 열반에 들었다. 김 원정사는 ‘교법정신과 스승님들의 뜻이 하나로 이어져서 그 정신 그 서원으로 영생을 일관하리라’는 신념아래 교법 선양을 위한 전무출신으로 살았다.건타원 원정사는 원기42년 삼례교당 교무를 시작으로 49년 영산선원(현영산선학대학교) 교무, 52년 정화사 사무위원, 53년 합천교당 교무, 57년 정읍교당 교무, 62년 사직교당 교무, 66년 중앙훈련원(현 중앙중도훈련원) 교감, 71년 부산동부교구(현 부산울산교구) 교구장 겸 동래교당
열반
이현천 기자
2022.09.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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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한국 서예계의 거목인 그의 모습은 붓끝처럼 부드럽고, 먹빛처럼 선명하다. 어느덧 일흔과 팔순의 중간지점에 선 가산 조대성 원로교무(可山 曺大性·75). 지금도 그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다.어릴 적 아버지에게 영자필법을 배우며 붓을 처음 잡았던 것이 한평생 길이 되었다. 전무출신 서원 당시 ‘나를 위하고 원불교 문화를 위한 서원’이 함께 섰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렇게 동양 최초로 설립된 원광대학교 서예과의 발전과 원불교 문화창달에 기여했다. 송죽헌(松竹軒)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작업실에는 아직도 열정이
선진의법향
이현천 기자
2022.04.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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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스물두 살, 당시로써는 꽤 늦은 출가 서원이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양재학원(양장 디자인 학원)을 다니던 그를 출가하게 한 데에는 여러 명의 집요함이 있다. 그러나 정작 당시 영산선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작은 오빠(고 은산 김장원 종사)에게는 출가 권유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데….서원을 세우게 된 계기에 대해 “우리집에 수시로 드나들던 영산선원 학생들과 교무들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말하며 웃는 이타원 김기덕 원로교무(里陀圓 金基德·76세). 그의 고향은 소태산 대종사와 같은 영촌마을이다.
선진의법향
장지해 기자
2022.02.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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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11월이면 전국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긴장하게 된다.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적격자를 선발하기 위해 교육부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수학능력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정성스럽게 노력한다. 좋은 대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물론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가 좋은 대학일 수도 있다. 또는 가치 기준에 따라 좋은 대학교를 분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라남도 영광에는 진리를 탐구하고 인류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공부하는 대학교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명문대라고 자부하고 있는 곳이다. 바
세상은 한 일터
김세진 기자
2021.11.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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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20년 넘게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유산 이성길 원로교무(裕山 李性吉·85).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건강한 심신으로 자력 생활하며 연로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노인들이 안정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헌신봉사한 공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장 표창, 원광효도마을이사장 감사패, 부송종합사회복지관장 감사장 등 각종 표창장과 감사장을 수상했다.전재동포구호사업소, 주산종사 만나함경남도 원산. 이 원로교무의 고향이다. 작은
선진의법향
류현진 기자
2021.09.0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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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화평하고 의기로운 성품으로 교법에 바탕한 신앙수행을 정성스러움으로 일관한 봉산 이종명(奉山 李宗明) 정사가 13일 열반에 들었다. 봉산 정사는 원기42년 원광사 편집부원을 시작으로 영산선원(현 영산선학대학교), 화해교당, 총무부, 원광중고교(현 원광고등학교)를 거쳐, 원광대학교 교무와 영산사무소 소장으로 봉직하다 원기88년 정년퇴임했다. 열반소식을 접한 전산종법사는 “주세불 소태산 대종사님 일원회상 만나서 배우는 기쁨과 지식을 나누는 것을 보람으로 끊임없이 공부하며 실력을 갖추신 봉산 정사께서는 후진들의
열반
이여원 기자
2021.08.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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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 자리 잡은 영산성지고등학교(교장 신호래). 이곳은 지역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4년 원불교 영산선원 부설 영산고등공민학교(중·고등학교 과정)로 출발했다. 1982년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일반계 과정인 남녀 공학의 각종학교로 개편해 인가를 받아 영산성지학교로 운영되다 1998년 인성중심 특성화고등학교 제1호인 영산성지고등학교로 개교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영산성지고는 평화·생명·행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걸고 교육과정 안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달의 기획
류현진 기자
2021.08.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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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농산 남궁성 원로교무(農山 南宮誠·72). 그의 일생은 영산성지와 인연이 깊다. 영산선원을 4년제 각종대학으로 인가받고, 국내 대안학교의 모체가 된 영산성지고등학교를 설립, 영광국제마음훈련원 초대원장으로 영산성지의 기반을 닦은 후 이제는 남미 교령으로 남미 교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그를 만났다. 형제들과 함께 출가의 길로남궁 원로교무는 전남 영광 군서에서 신심 장한 일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신심이 깊었던 외조부와 부모의 영향으로 그의 형제 3남 3녀 중 5명이 전무출신의 길에 들어섰다. 남궁선봉 원로교무를
선진의법향
류현진 기자
2021.03.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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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과묵하면서도 자상한 성품으로 교단 초창기 원불교학을 발전시키고, 진솔함과 정성스러움으로 후진 양성에 매진한 죽산 강경락(竹山 姜慶樂)정사가 7월28일 열반에 들었다. 죽산 정사는 원기54년 남원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영산선원 교사, 원광원예원 총무, 재무부(현 재정산업부) 과장, 원광노인요양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고, 영등교당 교무, 장수수양원 부원장, 원광노인요양원 원장, 동산사회복지관 관장으로 봉직하다 원기96년 정년퇴임했다.열반소식을 접한 전산종법사는 “강한 책임감과 타고난 봉사심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
열반
이여원 기자
2020.08.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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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영산선원, 마산교당, 중앙중도훈련원, 정토회교당, 서울교당, 교정원, 영광교구장, 중앙교구장, 전북교구장, 교학대서원관 교감. 출가 후 퇴임까지 열 군데에서 살고 가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그대로 이뤄졌다. 왕타원 고원선 원로교무(74·汪陀圓 高圓善). 19살에 출가해 50여 년을 교화 현장에서 힘쓰며 교정원 교화부원장과 교육부장, 수위단원, 여자정화단총단장, 교구장 등을 두루 역임하고, 현재는 원로회의 위원이자 수도원 상임위원으로 봉직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원로교무의 고향은
선진의법향
류현진 기자
2020.04.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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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응준 교무] 과거에는 60세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렇기에 집안 어른이 만 60세 생일이 되면 회갑잔치를 열어 장수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의술과 과학 발달에 따른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이제는 60세를 노인으로 보지 않는 시대가 된듯하다.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85세가 넘는 요즘은 회갑은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자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원불교에서 회갑은 출생 후 6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이니, 소년기와 장년기를 지내고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통해 모든 공부와 사업에 결실을 회고하는 뜻깊은 시기로 본다. 지나온 시
성가이야기
이응준 교무
2020.03.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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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제3회 영산선원 글로벌 스테이에 참가한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학생이자 필라델피아교당 소속인 원선교(Brian Freer)교도.그는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이후 두 번째 한국에 왔다"며 "원불교를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고 다시 오게 됐다"고 영산에 온 소감을 말했다. 영산선학대학교 잔디밭에서 학생들에게 동선을 지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그는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송대성 교무의 인연으로 원불교를 만나게 됐다.원 교도는 "다들 환영해줘서 감사하다. 이곳은 아무 걱정 없는 지상낙원이다. 학생들과
미니인터뷰
김세진 기자
2019.05.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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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3회째를 맞이한 영산선원 글로벌 스테이가 영산선학대학교에서 6일 결제했다.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학생과 현지인 법회 중심 교당에서 선발한 4명의 신심 있는 교도들이 중심이 된 이번 글로벌 스테이는 영산선학대학교가 주최·주관하며 30일 동안 정기훈련 11과목을 중심으로 영산선학대생들과 함께 훈련을 한다. 또한 성지순례, 한국문화체험 등을 통해 원불교를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영산선원 글로벌 스테이 진행을 맡은 송상진 교무는 "영산선학대학교에서 따뜻하게 환영해주고 정성껏 챙겨줘서 감사하다. 특히 학생들이 너
봉불&훈련
김세진 기자
2019.05.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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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오직 공도에 헌신하고 늘 약자를 살피며 교화자의 삶을 살아온 헌산 박남주 정사(憲山 朴南周 正師)가 22일 오후 5시56분 효도요양병원에서 열반했다. 헌산 정사는 원기58년 익산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원광대학교·수위단사무처·영산선원(현 영산선학대)·하섬해상훈련원·변산원광선원 원장을 거쳐 신용교당·교화훈련부 순교무로 봉직하다가 원기101년 퇴임했다. 교단만을 생각하고 공심으로 살아온 헌산 정사는 맡은 임지마다 정성으로 임했고,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고 살피는 보살의 심법을 보였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신성으로
열반
유원경 기자
2019.04.2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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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조선 건국과 함께 하루아침에 탄압의 대상이 되어버린 불교는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일부는 산속에 은둔하며 참선 등 수행정진으로 불법의 맥을 잇기위해 노력했고, 일부는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제반 잡역에 종사하면서 사원을 유지했는데 이때 나온 말이 이판·사판이다. 그러나 장좌불와로 토굴수행하는 이판들도 결국 잡역에 종사하며 벌어다 놓은 사판들의 공양이 아니었다면 면면하기 어려웠을 터인지라 어찌 불법의 맥이 온전히 이판의 공덕이라 할 수 있겠는가.수계농원을 시작으로 평생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9.03.12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