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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원불교교사』 ‘개교반백년의 결실’에서 “새 회상은 처음부터 하나의 새 종교로 창건되었고, 불법을 주로 연원하되 모든 종교의 교지(敎旨)도 이를 통합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를 이룩하자는 것이 대종사의 본회(本懷)시었다.”라고 명시한다.일원상에 근원한 원불교는 첫째 ‘새 종교’라는 선언이다. 그러기에 정산종사는 “과거 교법과 우리 법과의 관계는 어떠하냐?”는 질문에 “주로 창조하였다”하시고 “혹 혁신, 혹 인용하였다.”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39장) 한 것이다.둘째, 일원회상은 불법을 주체 삼아 불법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9.2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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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사대강령’의 불법활용은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해 활용되는 불법으로, 소태산은 “이 부처 불(佛) 자라는 것은 각(覺)이라, 만법을 깬다는 뜻”으로 풀어준다. 즉 불법은 만법을 깨달도록 하는 마음공부법이다.불법활용의 불법은 ‘재래의 불법’이 아니라 ‘미래의 불법’으로,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인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는 불법이다. 역사상의 불법에 한정된 제도(制度)의 불법이 아니라, 물질이 개벽되는 미래시대에, 물질을 선용하는 정신개벽에 활용되는 불법이다. 즉 미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9.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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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사대강령’의 ‘정각정행’을 문맥에 따라 구분하면, 정각(正覺)은 “일원의 진리인 불조정전(佛祖正傳)의 심인(心印)을 오득하는 것”이라면, 정행(正行)은 “그 진리를 체받아서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불의하고 과불급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는 것”이다. 정각은 일원상의 진리인 ‘제불제성의 심인 불조정전의 심인’을 바르게 깨달아 체득하는 것이라면, 정행은 그 진리를 체받아서 육근을 작용할 때에 한편에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게 하며 과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원만행을 하는 것이다. 결국 소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9.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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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인 ‘양대 요도(兩大要道)’는 정전 교의편의 총괄이다. 교의편은 일원상으로 비롯하고 있다. 즉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로 전개하고 있는 구조이다.정전 교의편의 구조처럼, 인생에 있어 일원상에 근원해 사은·사요를 밟아 가면 인생의 요도가 되며, 자신을 닦아가는 수행에 있어 일원상에 바탕해 삼학·팔조를 밟아 가면 공부의 요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부연하면 일원상으로 사은에 보은하고 사요를 실천하는 것으로, 즉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 자리에서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9.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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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일상수행의 요법’은 일상에서 수행하는 요긴한 방법이다. 즉 요란해질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어리석어질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글러질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불신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탐욕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게으른 나태가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자기 맘대로 행하는 어리석을 우(愚)가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원망생활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타력생활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배울 줄 모를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가르칠 줄 모를 때가 일상수행 할 때
정전
원불교신문
2020.08.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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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원불교교사 ‘대종사의 발심’에서 “대종사, 7세 되시던 해, 어느 날, 화창한 하늘에 한 점 구름이 없고, 사방 산천에 맑은 기운이 충만함을 보시다가, 문득 ‘저 하늘은 얼마나 높고 큰 것이며, 어찌하여 저렇게 깨끗하게 보이는고’ 하는 의심이 일어나고, 뒤를 이어 ‘저와 같이 깨끗한 하늘에서 우연히 바람이 일고 구름이 일어나니, 그 바람과 구름은 또한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의심이 시작됨을 따라 모든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9세 때 부터는 나를 생각한즉 내가 스스로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8.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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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작업취사의 목적’에서 “우리는 정의 어든 기어이 취하고 불의 어든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를 하여, 싫어하는 고해는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아 오자는 것이니라”고 귀결하고 있다. 이처럼 정의는 낙원 인도의 정로(正路)라면 불의는 고해를 초래하므로,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작업취사의 실행공부는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자는 ‘개교의 동기’의 실천방법이다.소태산은 평탄한 낙원을 버리고 험악한 고해에 들게 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밝혀준다. 첫째, 일에 당하여 시비를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8.1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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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정전 ‘사리연구의 요지’에서 이(理)는 천조(天造)이며, 천조는 대·소·유무(大小有無)로, “대(大)라 함은 우주 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요, 유무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 순환과, 풍·운·우·로·상·설(風雲雨露霜雪)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를 이름이며”라고 밝히고 있다.결국 이(理)=천조(天造)=대·소·유무로, 대·소·유무는 소태산 대종사의 고유한 진리인식 방법이요 깨달음의 표현이다. 대·소·유무의 이(理)는 ‘대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8.1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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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정전 정신수양의 목적은 “유정물(有情物)은 배우지 아니하되 근본적으로 알아지는 것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데, 최령한 사람은 보고 듣고 배우고 하여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동물의 몇 배 이상이 되므로”로 시작해 “천지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니라”고 결론짓고 있다.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수양의 요지의 ‘분별성’ 및 ‘주착심’과 관련 된다. 분별성은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어 좋아하고 싫어하는 차별상(相)을 내는 실체라면,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7.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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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공도자 숭배의 강령’에서 “세계에서 공도자 숭배를 극진히 하면 세계를 위하는 공도자가, 국가에서 공도자 숭배를 극진히 하면 국가를 위하는 공도자가, 사회나 종교계에서 공도자 숭배를 극진히 하면 사회나 종교를 위하는 공도자가 많이 날 것”이므로, “우리는 세계나 국가나 사회나 교단을 위하여 공헌한 사람들을 그 공적에 따라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도리로써 숭배하자는 것”이며, “우리 각자도 그 공도 정신을 체받아서 공도를 위하여 활동하자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즉 ‘공도자 숭배’의 핵심은 공도헌신자이부사지(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7.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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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사요의 ‘타자녀 교육’은 자타가 둘이 아닌 일원상에 바탕하고 있다. 자타의 국한을 벗어난 일원상 자리에서 내 자녀도 타자녀도 교육하라는 것이다. 즉 자타가 둘이 아닌 일원상으로 교육할 때 타자녀 교육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정전 ‘타자녀 교육의 강령’에서 “교육의 기관이 편소하거나 그 정신이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지 못하고 보면 세상의 문명이 지체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자타의 국한이 트인 교육이어야 내 인연뿐만 아니라 모든 인연이 교육의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을 확장하고 자타의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7.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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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지자(智者)를 본위(本位)하여 지자를 선도자로 삼도록 한다. 청정 지혜에 바탕하여 지우(智愚) 차별이 없는 가운데 지자를 지도인으로 모시라는 것이다. 원만평등한 일원상 자리에 근원하여 ‘과거 불합리한 차별 제도’인 반상(班常)·적서(嫡庶)·노소·남녀·종족 등의 ‘불합리한 차별 제도’에 끌리지 말고, 배우고 구할 때에는 지자를 본위(스승)하라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지자 본위의 조목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통솔하는 솔성(率性)의 도와 타인을 잘 섬기고 대하는 인사(人事)의 덕행이 자기 이상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7.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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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사요’의 첫 조목으로 자력양성을 제시한다. 자력을 양성해 자력으로 사는 것이 떳떳한 길이라는 것이다. 사요의 자력양성은 일원상에 근원한 자력이다. 일원상 자리는 상대가 끊어진 상독로(常獨露)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두요목 2조)이요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리(의두요목 6조)이다. 즉 일원상 이 자리로 자력을 양성하라는 것이다. 일원상의 자력은 조건에 의한 것도 비교우위에 의한 것도 아니며, 우월하다거나 낮다는 분별이 떨어져야 드러나는 자리로, 상대와 비교 분별하는 순간 망각되는 것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6.2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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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정전 ‘법률 피은의 강령’에서 “법률이란 인도정의(人道正義)의 공정(公正)한 법칙”이라 밝히고 있다.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은 청정한 일원상 자리에서 드러나는 법률로, 일원상=법률=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이다.‘사은의 법률’은 일원상의 진리가 인간의 길에 드러나는 법칙으로,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 자리에 기반해 드러나는 인간이 밟아갈 정의롭고 공정한 방향성이다. ‘사은의 법률’은 정치·종교·철학·교육·경제·윤리·사상 등의 문명을 통해서 인간이 밟아 가야할 그 시대의 삶의 지혜요 길로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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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2020.06.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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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동포은의 대요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도(道)이다. 동포는 한 가지 동(同), 태 포(胞)로 한 포태의 존재를 총칭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비롯한 금수초목의 생명가진 모든 존재는 한 동포로서 천만물질까지 동포인 것이다.신령하게 깨어있는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 자리에서 보면 동포가 동포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즉 동포에 의해 동포들이 살고 있는 관계로, 이러한 사실이 동포에게서 입은 동포 피은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로, 이같이 큰 은혜가 없다는 것이다. 청정 일원상으로 보아야 서로 의지가 되고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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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2020.06.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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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부모 보은의 강령’은 “무자력할 때에 피은된 도(道)를 보아서 힘 미치는 대로 무자력한 사람에게 보호를 주는 것”이다. 무자력할 때에 피은된 도가 일원상의 부모로 부모은(父母恩)이다. 즉 ‘무자력자 보호의 도(道)’의 드러남을 부모은이라 하는 것이다. 부모은은 무자력할 때 자력을 얻도록 힘이 되는 관계의 총체로, 낳아주신 친부모뿐만 아니라 길러주고 가르쳐주신 양부모 은부모 등 모든 부모역할을 총칭한다. 무자력할 때에 보호를 주는 모든 존재가 사은의 부모로, 이러한 ‘무자력자 보호의 도’를 실행하면 부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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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2020.06.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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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 병진년 음력 3월 26일, 정신이 쇄락한 경지에서 천지조화를 청랑하게 드러내신다. 비 개인 날 뜬 청명한 달같이 일원상 자리에서 대각을 확인하고 증명하신 것이다. 즉 쇄락하고 청명한 마음에서 주역 한 구절을 논하는 것을 들으시고,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에 천지의 조화를 환히 증명하시었고, ‘여일월합기명(與日月合其明)’에 일월과 하나 되어 그 밝음을 나타내시었고, ‘여사시합기서(與四時合其序)’에 춘하추동 사시와 하나 되어 그 이치를 선명하게 밝혀내시었고, ‘여귀신합기길흉(與鬼神合其吉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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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2020.05.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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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팔조의 진행(進行) 사조인 신·분·의·성은 일원상에 바탕한 삼학을 촉진해 진행시키는 원동력이라면, 반면에 사연(捨捐) 사조인 불신·탐욕·나·우는 삼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요 걸림돌이다.진행사조의 신(信)은 만사를 이루려할 때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으로, 일원상에 바탕한 삼학 수행에 대한 확신이다. 이 신심으로 삼학 수행을 촉진하면 수양력·연구력·취사력인 삼대력을 이룬다는 발심이요 결심이다. 신에는 이처럼 발원이 내포되어 있으며, 마음을 정하는 결정심은 흔들림 없는 부동한 일원상 자리에 든 것이다. 분(忿)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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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2020.05.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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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교법의 총설’에서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인 법신불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을 수행의 강령으로 정하여”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일원상은 삼학으로 펼쳐야 하고 삼학은 일원상에 근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원상에만 그쳐 있어도 안 되고 삼학만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일원상만 있으면 현실에 무력할 것이고, 삼학만 있으면 근원이 단절된 자의적 행위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원상서원문’에서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또는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5.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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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사요는 일원상에 근원한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로 일원상의 사요이다. 왜냐면 사요는 ‘교리도’에서 일원상에 근원한 인과보응의 신앙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원상에 근원치 않는 사요는 진정한 사요가 아닌 것이다. 사요의 첫째 조목인 ‘자력양성’에 있어 자력의 근원처는 일원상이다.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이나 물질에 종속되어 의뢰하는 타력생활이 아니라 본래 의존할 것이 없는 상독로(常獨露)의 일원상 성품 자리가 곧 온전한 자력처인 것이다. 즉 짝할 것이 없는 일원상 이 자리에 근원해야 온전한 자력을
정전
방길튼 교무
2020.04.30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