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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지법 교무] 장자는 도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이야기를 통해 넌지시 전한다. 남백(南伯)의 자규(子葵)가 여우(女偊)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이를 먹었는데도 어떻게 안색이 어린아이처럼 생기가 넘치는 것이오?” “도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오.” “도라는 것이 배울 수 있는 것이오?” “이런! 배울 수 없소.”여우는 도를 말로 전할 수는 있지만, 생각 너머에 있기에, 배움의 방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도를 깨닫는 과정을 설명한다. 과거 여우가 복량의(卜梁倚)에게 도를 말해주고, 그가 변화하는 모습을 이야기한
생각의 심연 『장자』
김지법 교무
2022.11.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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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세상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한 사람은 많다. 일찍이 (1962)를 쓴 토머스 쿤(T S. Kuhn, 1922~1996)은 정상 과학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도록 권고했다. 한마디로, 최신의 과학발전을 이룬 패러다임이라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 없이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말이다.우리 사회는 학령인구와 노동인구는 급감하는 반면에 노인인구는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지구는 온난화로 인해 온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인공지능(AI)의 발달 등 과학의 발달은 날로 변화를 거듭
원불교와 교육
김혜광 명예교수
2022.11.2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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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라상현 교무] 요즘 나의 유무념 조목은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춰서 생각하기’다. 말하기 전에 분별과 주착을 채로 한 번 걸러서 비교적 온전한 마음으로 말을 해보자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상대를 내 멋대로 규정짓거나 분별과 주착으로 인한 시비에 사로잡혀 말을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을 쉽게 해 경외심을 잃게 되고, 남의 잘못된 점이나 흉이 될 만한 것을 말하며 적지 않은 구업을 지어왔다. 저 사람이 바로 나에게 복 주고 죄 주는 권능을 가진 부처님임을 안다면, 과연 저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했을
재잘재잘
라상현 교무
2022.11.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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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도하 교수] 지난 9월 말에 포털사이트 다음(Daum)이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다음 메일을 쓰는 모든 사람들은 새로 카카오 계정을 만들어 통합해야 했다. 본인 명의의 스마트폰 없이는 이제 최소한의 기초생활마저 거의 불가능하다. 업무와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 이제는 모두가 스마트폰의 시대, 온라인의 시대로 넘어왔음을 실감한다.미래시대를 그려보면서, 코로나19 이전에도 필자는 ‘현실-가상-생체의 경계가 무너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현실(오프라인)보다는 가상(온라인)이
메타버스 시대의 원불교
이도하 교수
2022.11.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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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세존이시여 이 경은 무엇이라 이름하는 것이 마땅하오며, 우리들은 어떻게 받들어 가지오리까?(世尊 當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13장에서 수보리는 세존에게 지금까지 설한 법문의 이름을 물어본다. 책의 절반 정도가 지난 후 책의 제목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책이나 경전의 주석서 등에서 글의 서두에 집필 의도나 경전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불교 경전이 구성된 과정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글로 정리된 것이 아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11.2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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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과거에는 선정에 들어도 선정인 줄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수행을 놓지 않고 나아가는 수행자만이 선정이 잦아지며 영계에 눈이 뜨이고 지혜가 솟아났다. 이것마저 상시로 열려 확연해 지고 나서야 견성을 하고 도인의 반열에 올랐음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이러니 선정에 들기만 해도 견성이니 도인이니 하여 그 명칭에 따른 무게감이 컸다. 정산종사의 견성 다섯 단계가 온전한 정도다. 이 단계는 만법귀일의 실체를 증거, 진공의 소식을 아는 것, 묘유의 진리를 보는 것, 보림하는 공부를 하는 것, 대기대용으로
수행의 길
길도훈 교무
2022.11.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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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지법 교무] “무릇 도란 그것만의 본질을 지닌 것이고 믿을 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함이 없으며(無爲) 어떤 모양도 없다(無形). 도는 전해줄 수는 있지만 내 것으로 취할 수는 없고, 붙잡을 수는 있지만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도는 그 자체로 몸통이자 뿌리이며, 하늘과 땅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도는 귀신도 하느님(帝)도 신으로 만들며, 하늘과 땅도 낳았다. 태극(太極)보다 더 멀리 있으면서도 높다고 여겨지지 않고, 우주의 여섯 방위(六極)보다 아래에 있으면서도 깊다고
생각의 심연 『장자』
김지법 교무
2022.11.1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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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2007년 10월, 패션 잡지에 상반신 누드 사진을 실어 파문을 일으킨 국립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주원 씨가 감봉 1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다. 김 씨가 ‘발레단 이외의 예술활동을 할 경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복무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순수 예술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가질 기회라고 판단했다. 내 몸을 여과 없이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복무규정이 타당한 것인지 또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것인지, 그런 낡은 관료적 잣대로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 특히 문화
부처님의 향기
김종천 원로교무
2022.11.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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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일반적으로 고전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이나 문헌을 지칭한다. 그러한 고전이 그 가치를 유지하려면 독자와 긴 호흡이 이어져야 한다. 길게는 100년 전 아니면 1,000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아직도 독자와 접촉하는 저작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독자의 다양성만큼이나 고전과 호흡하는 양상도 얼마든지 다양하다. 한편으로 독자와 이런 긴 호흡을 하도록 그 고전에 대한 가독력 제고를 위해 때로는 해석과 주석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가 아는 동서양의
원불교와 교육
김혜광 명예교수
2022.11.1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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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도하 교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현란한 기술이 주도하는 현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다소 편협한 시각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서 120세를 사는 시대라거나, 좀 더 나아가면 구글의 자회사인 칼리코가 ‘불멸’을 연구하고 있고, 수명 연장을 상품화하는 시대로 이미 진입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유발 하라리는 와 등을 통해서, 불멸과 신성에 도전하는 인류의 미래를 그린다. 어쨌거나 현생인류는 그동안 감히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시대에 이미 살고있다.
메타버스 시대의 원불교
이도하 교수
2022.11.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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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12장에서는 경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8장의 내용과 11~12장의 내용은 변주·반복되고 있다. 8장 후반부에는 경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체 모든 부처와 부처의 아뇩다라샴먁삼보리의 법이 다 이 경전에서 나왔다. 수보리야 소위 불법이라는 것은 불법이 아니니라”고 했다. 12장에서는 “이 경전을 설하다가 사구게에 이르면 온 세계의 천인·아수라들이 모두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공양할 것이다. 하물며 이 경전 전부를 수지독송하는 사람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중략)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11.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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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선정에 이르는 것은 물리적 트레이닝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정해진 시간도 없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감각을 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선정이란 것이 곧 마음의 세계이니, 객관적 지표를 갖기도 어렵다. 그럼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선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선지자가 몇 가지만 짚어보면 알 수는 있다. 그러나 선정에 대해 많이 들어 자기화하여 이야기하면 판별이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선정에 자주 든 사람은 최소한 눈빛과 기운이 순수하고 맑고 영롱함, 의미로 깨어 있음, 통찰, 차분함, 진중함, 여유 등
수행의 길
길도훈 교무
2022.11.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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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신문=김지법 교무] 장자는 전체(全體)의 관점에서 존재의 본질을 생각한다. 우주 전체에서 보면, 어떠한 변화가 우주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주는 항상 그대로 있다. 범위를 줄여서 지구 전체로 보면, 그 안의 모든 동식물이 천만변화를 한다고 해도, 지구의 물질적 총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개체로서 생멸은 피할 수 없다고 해도, 결국 다른 존재로 바뀔 뿐,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를 골짜기에 보관해두고 물고기 잡는 그물을 늪에 보관해두고는 거기가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밤중에 힘센 사람이 그
생각의 심연 『장자』
김지법 교무
2022.11.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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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분야를 막론하고 서로 감동을 주고받지 못하면 생명력은 그만큼 짧다. 시장에 출시된 제품에서부터 모든 정신·물질적 생산물이나 재화까지 예외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의 오랜 전통을 지닌 유럽에서는 어떤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음악가나 예술가가 설 땅은 매우 좁다. 아니, 무대에 오르기도 버겁다. 그러자면 무대 뒤에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하느냐가 이를 대변해 줄 뿐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활동과 그에 대한 반응
원불교와 교육
김혜광 명예교수
2022.11.0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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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라상현 교무] 교당 주차장에 외부 차량 몇 대가 주차되어 있다. 연락처가 없는 차도 있고, 어떤 차는 전화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교당 행사가 있던 시간에 차단기를 열어놨더니 그사이 들어왔구나. 왜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주차하는 거야?’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잠시 급한 일을 보러 온 사람이 주차했겠지’라며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까지 주차된 것을 보자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경우가 없네. 마주치면 따끔하게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 잘못을 질책하고 싶어졌다. 업무 중에도 싸우는
재잘재잘
라상현 교무
2022.11.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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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도하 교수] 매년 동국대학교 사찰경영 최고위 과정에서 메타버스를 포함한 미래의 종교와 불교에 대해서 강의를 한다. 연 1회, 10년 정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금년 강의는 지난주에 있었고, 이번에는 스님들로부터 특히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간추리고, 나눴던 이야기들을 요약하면서 이 지면을 통해 함께 하고 싶은 주제는 ‘종교와 메타버스는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또는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해서다.‘종교와 메타버스의 만남’이 모든 종교에서 유사하게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종교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메타버스 시대의 원불교
이도하 교수
2022.11.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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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11장과 12장은 법보시와 경전의 중요성과 가치를 말한다. 세상을 가득 채울 정도의 무한한 양의 보물을 사용하는 보시보다 을 전해주는 공덕이 더 크다고 역설한다.그런데 11장의 내용은 8장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8장에서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를 한다는 것이고, 11장에서는 항하(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숫자의 항하가 있고 그 모든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삼천대천세계가 있으며 이 모든 세계를 가득 채울 정도의 칠보로 보시를 한다는 것이다. 항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11.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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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한때 선정에 들어도 진리인식이 깊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다. 선 수행으로 선정에 이르러 솟는 지혜는 진리인식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진리인식을 위한 경전 공부는 일반적인 사고 체계로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법을 문자로만 알면 문자의 의미와 씨름하느라 하세월일 수 있다. 문자가 곧 법이 될 수는 없기에 문자로는 관념의 범주를 넘어서기 어렵다. 문자는 법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니 말이다. 더 구체화시켜 설명한다 해도 인형으로 알려 주는 정도다. 법이 곧 손가락이고 인형인 줄로 알고 손가락과 인형을
수행의 길
길도훈 교무
2022.10.3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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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지법 교무] 모든 종교의 중심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있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무섭고 가능하면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장자는 생사의 문제를 하늘의 운명으로 내맡긴다. 왜냐하면 나의 몸이란 것도 실은 땅에서 와서 다시 땅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의 피와 살이 되며, 그 피와 살의 세포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며 다시 나의 밖으로 나간다. 물질로 봐도 끊임없이 오고 가지만 어느 하나도 멈춘 바가
생각의 심연 『장자』
김지법 교무
2022.10.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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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불교의 탄생 분위기는 사회집단의 이해관계에서는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종교가 세속화되어가면서 집단을 형성하고 또 나름대로 삼보(三寶)를 존경의 대상으로 설정하면서 자기모순이 생기게 되었다.유대교 전통의 종교는 좀 다르다. 황량한 사막의 분위기 때문인지 공동체의 결합성이 강하다. 그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윤리적으로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이익을 당한다. 그래서 유대교 전통의 종교는 타인에 대해 선교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물론 힌두교 계통의 인도 종교들도 포교 활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부처님의 향기
김종천 원로교무
2022.10.31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