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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선원생활은 나만을 위한 오롯한 삶 살게 해막연하게 알았던 교리, 생활 접목하며 배움 깊어져[원불교신문=김기원 교무] 영산성지에서 수학하던 기간제전무출신선원 기간은 나만의 오롯한 삶을 살았던 시절이라 기억된다. 태어나서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유년시절은 모르지만 학생이 되면서 공부, 숙제 등 크고 작은 무언가에 정신없이 끌려 살았다. 성인이 되면서 나보다는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또 직장인으로서 살았다. 그런 나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았던 때는 영산에서의 선원생활이었다. 영산의 선원생활이라고 해서 고삐가
교화자의 삶
김기원 교무
2018.05.1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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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먼저 원불교 입교 권했던 처갓집출가, 고민하는 자체가 인연 있어 맺어진 것[원불교신문=김기원 교무] 우리 집안 남자들은 처가의 압력으로 강제로 입교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둘째 사위가 결혼하기 전, 결혼허락 받으려고 온 첫 만남에서 입교원서를 적으라고 장모 될 사람인 아내의 노골적인 요구를 보면서다. 둘째 예비 사위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교원서에 묵묵히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내가 처갓집을 찾아갔을 당시를 떠올려 본다.장모는 대뜸 "류씨 집안에 장가 오려면 교당에 다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
교화자의 삶
김기원 교무
2018.05.1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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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의 외국생활 도왔던 할머니 은혜 떠올라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 입학하다[원불교신문=김기원 교무] 나는 직장 정년퇴임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심했다.남은 인생 30년을 위해 길을 찾다보니 어른들의 퇴임 후 만족도 조사에서 종교생활과 봉사활동이 만족도가 제일 높은 것을 보면서, 나도 동감하고 이와 같이 살아가리라 결심해 그렇게 살아 봤다. 하지만 나에게 만족을 주는 봉사활동들은 노동을 하는 허드렛일보다는 전문성을 필요로 했다. 나는 사회봉사와 거리가 있는 특수 기술 분야의 경험자로 그 경험은 봉사활동
교화자의 삶
김기원 교무
2018.05.0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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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 장애 얻었지만 고마운 일도 많아그저 대종사 교법 믿고 가야겠다는 생각 뿐[원불교신문=장영근 덕무] 고생을 많이 했던 영모묘원 생활에서도 고마운 일들이 있었다. 먼저 지금의 정토를 만난 일이다. 사실 정토는 전무출신을 서원하려고 당시 김영효 교무와 살았는데 몸이 워낙 약해서 간사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다. 교무님은 안되겠다 싶어서 나와 인연을 맺어줬다.지금까지 나를 믿어주고 함께 법도반으로 살아준 정토를 만나게 된 것은 영모묘원에서 그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은이 내려준 복이라 생각한다.또 고마운 이들은 내일처럼 달려와준 마을
교화자의 삶
장영근 덕무
2018.04.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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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할 당시에는 교무품과 구별이 따로 없어힘들고 용금 적었지만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생각[원불교신문=장영근 덕무]영모묘원 초창기에는 늘 바쁜 나날이었다. 따로 법문을 듣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새벽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녁 늦게쯤이나 끝나는 일과가 365일이었다. 그 흔한 추석·설 명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백철 원장이 원평에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당시 대산종법사가 원평에 내려와 요양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대산종법사는 교도나 교무를 막론하고 칭찬을 참 많이 해주었다. 나
교화자의 삶
장영근 덕무
2018.04.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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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임시 버스기사하며 원불교와 인연 맺어영모묘원으로 이직해서 하루 10시간 꼬박 일해[원불교신문=장영근 덕무] 고향은 익산 인화동이다. 원불교는 지금 북일교당에 원광중앙유치원이 있었을 때 처음 만났다. 그때가 원기69년도 즈음으로 기억한다.한창 유치원이 됐을 때라 버스를 운행했었다. 그런데 당시 휴직을 했던 모양이다. 아는 친구를 통해서 그곳 버스 기사 자리가 임시직으로 있다는 소리를 듣고 일하러 간 것이 원불교 인연이 됐다. 당시 이성옥 교무님이 재직하고 있을 때다. 당시 유치원으로 사용했던 곳은 예전에 야간학교였다. 가서 보
교화자의 삶
장영근 덕무
2018.04.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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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내 3백여 개 사회복지기관… 자력 육성 정책 부족원불교 사회복지와 사회적 경제, 연계 연구가 나의 과제 다양한 경험과 원불교 사회복지에 눈뜨게 했던 원광효도마을에서 원기95년 나는 다시 동그라미로 이동했다.처음 동그라미로 발령 받아서는 특별히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바로 사회복지학 박사 공부였다. 나는 원불교 사회복지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만 잘하는 것으로 그치기보다는 심도있는 학문 공부를 통해서 그것을 논문이나 글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다양한 사회복지 현장에서 잘 운영
교화자의 삶
구도선 도무
2018.04.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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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재활원, 원광효도마을에서 익힌 사회복지생소한 분야, 새로운 경험이 지금의 밑거름 돼[원불교신문=구도선 도무] 원불교학과를 졸업한 나는 바로 동그라미재활원(현 동그라미)에서 예비도무 생활을 시작했다.교무품과였던 다른 동기들과 달리 사회복지분야 도무로 품과를 전환했기 때문에 원불교대학원대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예비도무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나갔다.사회복지와의 인연도 추천교무가 되어준 배현송 교무님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군을 제대하고 나니 당시 동그라미재
교화자의 삶
구도선 도무
2018.03.2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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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은 누추해도 늘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가르침나 하나 출가로 9족이 생천한다는 격려가 큰 힘 돼원기78년(1993) 1월8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날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매년 이 날이 되면 혼자 조용히 그 날을 상기한다. 때론 자축한다. 이 날은 내가 첫 출가의 길에 올랐던 때이기 때문이다.당시 원광고등학교 법당에서 배현송 교무님의 추천으로 8명이 함께 출가를 했다. 김경원, 김덕욱, 류법현, 김대용, 박선장, 김유인, 홍현중 그리고 나. 나와 함께 출가한 동지들은 대부분 원불교 집안이 아니었다. 또 어릴 적부터 원불교 생
교화자의 삶
구도선 도무
2018.03.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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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고등학교 법당에서 만난 원불교에 흠뻑 젖어들어이타적 삶과 자아성찰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확신[원불교신문=구도선 도무]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큰누나가 원광여자중학교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시골에 살던 나는 저녁에 소 여물을 삶기 위해서 불을 때곤 했다. 불을 지피는 중에 검정색 표지의 작은 책자를 보게 됐다. 이라고 써 있었다. 책을 펼치니 이라고 써진 부분이 나왔다. 나는 을 훑어보면서 '이건 뭐지?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그리고 한참이
교화자의 삶
구도선 도무
2018.03.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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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 늘지 않는 이유…교도 위한 프로그램 적기 때문신입교도 법회 프로그램, 다양한 공부모임 마련돼야한결같은 마음으로 향상심을 갖게 하고 마음공부를 시켜 주는 지중한 법연, 나포리교당 이진수 교무님이 3년 전 원무를 추천해 주었다. 소정의 심사와 절차를 거쳐 원불교 원무가 되었으니 매우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일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원무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 갈등을 겪기도 한다.원무의 역할은 직장이나 교당에서 교무를 도와 교화에 힘쓰는 일이라고 한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크게 변화가 없지만 가장 하고 싶은
교화자의 삶
손운섭 원무
2018.02.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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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손원섭 원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 둘을 말하라고 하면 하나는 원불교이고 다른 하나는 차(茶)이다. 차와의 만남도 따지고 보면 원불교를 통해서 만난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참으로 낯선 곳에서 원불교를 만나 조금씩 익산 시민이 되어 가고 있을 즈음 원불교 여성회에서 만난 교도로부터 차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함께 한다는 생각에 수락을 하고 현재 전북은행이 있는 건물 5층 선실에서 차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나포리교당 교무님이자 차문화경영학과에서 함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진수 교무님을 처음
교화자의 삶
손운섭 원무
2018.02.2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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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활동 하며 교도들과 친근해지고 신앙심 깊어져법회 보고 나면 마음의 때가 벗겨지는 상쾌함 느껴[원불교신문=손원섭 원무] 교당에 다닌 지 3년쯤 지나면서 원불교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속에 밝은 빛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묘한 즐거움이 생겼다. 점점 교당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교무님의 설법이 기대되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 설교 내용이 궁금해 교무님에게 전화를 해서 내용을 물어 보기도 할
교화자의 삶
손운섭 원무
2018.02.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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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손운섭 원무] 나에게 원불교의 역사는 익산생활의 역사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1996년 남편이 원광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익산으로 이사 올 여건이 되지 못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었고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주말부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같으면 KTX가 있어서 서울과 익산을 왕래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였겠지만 그 때는 서울과 익산을 오가는 일이 그리 녹녹치 않았다. 교통이 불편해 서로 만나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속
교화자의 삶
손운섭 원무
2018.02.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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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만도 도무] 각양각색의 인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예쁜 주름을 비롯해 다양한 주름들이 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나중에 어떤 주름이 나타날까 하고 가만히 혼자 생각해본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죽음 보따리를 준비하라 했는데, 주름은 젊어서부터 살아왔던 모습과 흔적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예쁜 주름을 가진 어르신들을 보게 되면 나도 저 어르신처럼 예쁘고 멋진 주름을 가진 노년의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더 공부하고 마음을 잘 닦아서 "내 모습에 후회하지 않고 잘 살아왔구나" 하
교화자의 삶
이만도 도무
2018.01.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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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은혜의집 기관장으로 처음 발령을 받았다. 그동안의 배움을 토대로 좌선도 하고 법회도 보면서 어르신이 열반하면 천도독경을 주관하며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집을 만들어갔다. 이어 익산 원광자활센터, 곡성 심청골효도의집, 관촌원광수양원, 노인복지센터 푸드뱅크 등을 거쳐 지금의 근무지로 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대가족으로 정을 듬뿍 받고 자라서 정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알기에 많은 이들과 훈훈한 정을 나누며 살고 싶다. 복지현장에서 교화자란 기관을 잘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에 신망 받고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교법정신의 씨를 뿌리고 새싹이
교화자의 삶
이만도 도무
2018.01.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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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원에서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일궈세 명의 원장 지도로 전무출신 삶과 철학 배워사)삼동회 이리자선원에서 근무를 시작해 16년을 살았다. 자선원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노애락, 갖가지 아픔과 상처,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사는 곳이다. 전국에서 모이기 때문에 다양한 특성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 늘 긴장과 생동감이 넘치며 생과 사가 함께 교차하는 생활이었다.나의 가난한 처지를 원망하며 허송세월을 살 뻔했던 갈등의 시간들에서 만난 자선원 가족들과의 인연은 나를 더욱 더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해줬다. 내가 그들을 지도한 것
교화자의 삶
이만도 도무
2018.01.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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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7세 팔팔한 청년 시절부터 불혹의 나이가 지난 43세까지 자선원에서 16년간(재가 10년 출가 6년) 혹독한 간사생활을 견뎠다. 그 세월은 나에게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직간접으로 체험하고 인내하며 살게 했다. 자선원은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하는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기에 늘 감사하다.자선원 입사 당시 원장님이었던 이수오 종사님의 가르침은 나의 자력생활에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청빈과 마음공부로 참선을 실행하며 정신교육을 담당해 준 이수오 원장님으로부터 4년여 동안 전무출신으로서 언행일치를 실천하는 법
교화자의 삶
이만도 도무
2017.12.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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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성지인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원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교무를 서원했던 작은 누나가 가족 모두를 입교 시켰다. 형님은 고교시절부터 교도생활을 했고, 나는 교당에 가지는 않았지만 누나가 준 입교증이 소중하다고 생각해 지갑에 넣고 언제나 가슴에 품고 지내왔다. 그리고 누가 종교를 물으면 원불교라고 당당하게 대답을 하곤 했다.군대를 제대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이모부인 시산 김정문 정사님이 할 일 없으면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일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다.그 곳은 원불교 복지기관으로 노숙인을 위한(
교화자의 삶
이만도 도무
2017.12.0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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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는 하나의 건물 공간 내에 교당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러시아 학생들을 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매주 금·토·일 세 번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에는 러시아에 유학 온 40여명의 한국대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진해서 보조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이곳에 찾아오는 현지인 학생들과 유학생들이 내 집같이 편히 쉬고 공부하며 문화 활동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하고 있어서 사물놀이, 태권도, 한국무용, 한국노래 등 한국문화를 한껏 배우고 즐기는 장터가 되고 있다. 이들이 언제 찾아와도 부담
교화자의 삶
조정우 교무
2017.12.01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