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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원불교를 만나 인생이 활짝 피었다는 청타원 송혜자 원로교무(淸陀圓 宋慧慈·73). 그는 원불교를 만난 것은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다고 말한다. 부임지마다 어려운 환경도 많았고, 빚을 짊어지는 등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어렵고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 없이 평생을 누리고 살았다는 감사함이 가득하다. 어린이집 운영에도 탁월한 성과를 보여 합천에서 경상남도 도지사상, 부안·임실에서도 전라북도 도지사상을 수상한 그의 삶의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여자로서 다른 인생을 살리라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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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06.1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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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진리탐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경산 노대훈(본명 권용) 원로교무(敬山 魯大薰·77). 원광대학교에서 30여 년간 후학들을 지도하고 퇴임한 후 지금도 그의 진리탐구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칠순이 훌쩍 넘은 그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유연한 사고와 열린 자세를 지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다.영생의 의사가 되리라노 원로교무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군산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안타깝게도 6.25 때 이른 나이로 열반에 든다. 그 후 어머니는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외지로 일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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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04.1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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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농산 남궁성 원로교무(農山 南宮誠·72). 그의 일생은 영산성지와 인연이 깊다. 영산선원을 4년제 각종대학으로 인가받고, 국내 대안학교의 모체가 된 영산성지고등학교를 설립, 영광국제마음훈련원 초대원장으로 영산성지의 기반을 닦은 후 이제는 남미 교령으로 남미 교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그를 만났다. 형제들과 함께 출가의 길로남궁 원로교무는 전남 영광 군서에서 신심 장한 일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신심이 깊었던 외조부와 부모의 영향으로 그의 형제 3남 3녀 중 5명이 전무출신의 길에 들어섰다. 남궁선봉 원로교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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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03.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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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대구, 부산, 신촌, 태백, 수원, 뉴욕, 화곡, 경남 마산 등지에서 교구청 설립 등 다양한 불사를 이뤄온 각타원 장경진 원로교무(84·覺陀圓 張敬眞). 그의 삶의 기록 속으로 들어가 본다.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길그가 원불교와 인연이 된 건 친구를 따라 교당에 갔던 오빠 장장렬이 출가를 서원하고 원광대학교 교학과에 다니면서였다. 장 원로교무가 전주여고 1학년 시절, 소개를 받아 전주교당에 방문했다가 융타원 김영신 법사의 불공에 대한 법문을 듣고 마음에 큰 감화를 받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청년회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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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1.01.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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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전북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 상산 박장식 종사의 고향이기도 한 죽산 박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보타원 박명제 원로교무(82·寶陀圓 朴明濟). 이곳에서 배출된 전무출신만 40여 명이다. 어린시절부터 전무출신에 나선 친척 언니들을 보며, 한 가정의 부인이 되기보다는 많은 사람을 품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전무출신을 꿈꿔온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일자출가 구족생천전무출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박 원로교무에게 당시 수지교당에 있던 전기철 교무가 총부 구경을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19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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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11.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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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동생 데리고 왔습니다.” 농타원 이양신 교무가 동생인 소타원 이명신 교무를 총부에 데려와 대산종사에게 인사시키자, 대산종사가 말했다. “네가 데려온 게 아니다. 전생 숙연으로 온 아이다.” 구례, 광주, 종로, 원주, 서면, 남대전, 동대전 등 여러 교당과 서울교구, 교정원 재무부, 문화사회부 등 교단의 부름에 따라 한평생을 살아온 소타원 이명신 원로교무(素陀圓 李明信·71). 만덕산 ㈜푸른생명에서 퇴임 후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성직의 길을 가야 할 아이영광 대마면이 고향인 이 원로교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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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10.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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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의 정석이 있다면, 정전을 공부하는 교도들에게는 각산 신도형 종사의 교전공부가 있다. 예비교무부터 현장에 있는 교무들까지, 그리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재가 교도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정전 공부의 길잡이. 곤산 박광수 원로교무(73·崑山 朴光秀)가 바로 그 책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1310쪽, 4536항목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원불교대사전의 편찬위원장을 맡아 원불교 100년 성업의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운봉에서 출가서원남원 운봉이 고향인 박 원로교무는 교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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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09.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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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2시쯤 눈이 뜨였다. 정신이 초롱초롱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홍복인가 감사하다. 천지개벽 시대에 대종사님 일원대도에 입문하게 해주신 인연…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만났으니 죽기로써 정진해야 한다.” (원기90년 9월 20일 일기 中)98세 되던 지난해 4월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기재한 인타원 장세진 원로교무(99·仁陀圓 張世眞). 새벽 2시면 자연히 일어나 단전송을 일만독씩 염송해온 그. 천 개의 염주알을 얼마나 돌렸던지 한알 한알이 맨들맨들 빛을 발하고 있다. 꿈에서 뵌 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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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08.1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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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 내는 열정의 삶을 살아온 지산 권세영 원로교무(85·芝山 權世英). 교단 초기 선진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그의 인생에는 창립의 역사가 많다. 이리교당 학생회 창립, 서울교당 대학생회 창립, 원불교 청년회 창립, 학교법인 해룡학원 해룡중·고등학교 창립 등. 영산 근원성지 발전에 서원을 세우고 한평생 노력해온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정산종사에게 받은 법명전북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무주 구천동 하늘 아래 첫 동네라 할 만큼 깊은 산골에서 그는 태어났다. 아름다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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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07.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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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연타원 마원종 원로교무(77·淵陀圓 馬圓宗). 그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재원이었다. 개신교 신자였지만 대산종사와의 첫 만남 후 두 마음 없이 출가 서원을 굳힌 그. 그의 삶에 귀 기울여 본다.다른 신을 섬기지 말지니라개성에서 태어난 마 원로교무. 6.25 직전 서울로 이사했다가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 10살 무렵부터 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심심하면 길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하루는 길 건너편에 비구니 스님 두 분이 나란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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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06.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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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영산선원, 마산교당, 중앙중도훈련원, 정토회교당, 서울교당, 교정원, 영광교구장, 중앙교구장, 전북교구장, 교학대서원관 교감. 출가 후 퇴임까지 열 군데에서 살고 가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그대로 이뤄졌다. 왕타원 고원선 원로교무(74·汪陀圓 高圓善). 19살에 출가해 50여 년을 교화 현장에서 힘쓰며 교정원 교화부원장과 교육부장, 수위단원, 여자정화단총단장, 교구장 등을 두루 역임하고, 현재는 원로회의 위원이자 수도원 상임위원으로 봉직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원로교무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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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04.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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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40여 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11월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온 익타원 하대연 원로교무(88·益陀圓 河大淵). 그는 대산종사의 뜻을 받들어 하와이 교화의 터를 닦은 장본인이다. 현재 미국 시민권 보유자로 한국으로의 귀화 신청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인 그를 만났다. 어린이들이 좋아하 원로교무는 경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할아버지는 경주 외곽에 절을 불사할 정도로 불심이 강했다. 비교적 부유했던 그의 집은 경주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는 절이 멀리 산에 있었어. 오빠랑 언니는 할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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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04.1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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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소태산 대종사의 큰딸 박길선 종사와 정산종사의 동생 주산 송도성 종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융산 송천은 원로교무(86·融山 宋天恩). 그는 원광대학교 제7·8대(1994년~2002년) 총장을 역임하며 원광대학교의 발전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문학석사를 마치고 원광대학교 철학박사를 딴 그는 미국 예일대학, 컬럼비아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 종교학회·불교학회 이사, 대한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대종사와 함께 한 어린 시절“대종사님이 외할아버지, 정산종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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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2020.03.1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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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남다른 안목으로 어려운 초기교단 환경 속에서도 교육학을 전공해 원불교의 대 사회화 활동에 힘쓰고 있는 우산 김혜광 원로교무(70·愚山 金慧光). 그는 팔산 김광선 선진의 손자이다. 그의 선친 설산 김병철 교무가 바로 팔산 종사의 셋째아들이다. “팔산님이 가세가 그렇게 어려운 분은 아니셨는데, 교단에 다 헌공을 하셔서 사가에 있는 자식들 고생이 말로 못 할 정도였어. 선친도 교무를 하셨기 때문에 얼굴을 잘 뵙지 못했어. 가난에다가 어려움이 농축된 대로 살아서 뭘 잘 몰랐어. 집안에 출가자가 10여 명이 돼.
선진의법향
류현진 기자
2020.02.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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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원광대학교병원의 초기역사를 이루고 오늘날의 원창학원으로 자리 잡기까지 순일한 공심으로 일관한 면산 김성진 원로교무(81·勉山 金聲振). 이흥과원 간사와 총부간사 등 스승님을 모시고 오직 이 회상에서 공부하는 기쁨으로 출가해 교단의 의료·교육사업과 교화에 매진했다. 충청북도 중원군이 고향인 그는 60여 년 전 중앙총부까지 찾아와 충북지역 최초의 교도이자 출가자의 인연이 됐고, 그를 따라 동생인 김명덕·김진광 교무와 팔촌동생 김명학 교무도 함께 출가하게 됐다. 또한 김 교무의 장남 김태원 교무는 알마타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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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경 기자
2020.01.0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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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교화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심타원 남궁선봉 원로교무(81·心陀圓 南宮善鳳). 당시에도 생소했을 남미 지역에서 오늘날 기반을 마련하기까지 모든 것을 진리전에 맡겨버리고 살아왔던 그였다. 하지만 기쁨과 보람이 컸던 만큼 다시 한번 그때를 생각해보면 결코 녹록치 않았던 교화 터였다. “교화를 45년간 했지만 남미교화에 나서기 전에는 한번도 교화가 어렵거나 괴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부에노스아이레스 선교소원기87년 국내 현장교화로는 군산교당을 끝으로 그가 남아메리카 대륙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9.12.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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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안세명] “소 교무야. 사람들이 내가 너를 닮고, 네가 나를 닮았단다.” 지난 9월29일 뉴저지교당 봉불식에 참석한 교도들은 20여 년을 함께 동고동락한 명타원 정연석 원로교무(77)와 소예리 교무를 어머니와 딸로 부른다. 오늘도 티 없이 맑은 함박웃음으로 교당 찾는 이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정연석 원로교무. 일생을 다해 교화 일념으로 묵묵히 걸어 온 그의 걸음걸음을 후진들은 ‘길’이라 부른다.미주교화 20여 성상그는 56세, 늦은 나이에 미국 땅을 밟았다. “나는 영어가 참 힘들었어. 그래서 교무들 열심히 교화하라 응원
선진의법향
안세명
2019.11.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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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원타원 김제명 원로교무(75·圓陀圓 金濟明). 그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었다. 시골 동네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는 왜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하는데 누구는 예쁘고 잘 살지만 어떤 애들은 못생기고 가난할까.'그는 목사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차별이 생겨요?" 목사는 시원한 대답을 못했다. 그냥 하느님 뜻이 그렇다는 말 밖에. 의심이 풀리지 않았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던 해부터 교회를 그만 다녔다. 원래 불교 집안이었던 그의 집은 매년 여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9.10.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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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은산 오성수 원로교무(85·銀山 吳聖洙). 그는 1934년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에서 부친 오두환과 모친 수타원 윤지정화 사이에 4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유복했던 아버지는 교회 목사였다. 배움의 뜻이 컸던 아버지는 한학으로 마을 서당까지 운영했다. 만족하지 못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미국에서 선교하러 나온 목사 남매를 만나 관촌에서 교회를 짓고 전도사 활동을 했다. 이후 함경도 원산에 정식 목사로 발령받아 선교활동을 했는데 안타깝게 33세 나이로 순직하고 만다. 그의 나이 7세 때였다. 살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9.09.1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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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아무것도 없던 시절. 개척교화에 헌신하며 희사만행하는 지타원 전기철 교무의 모습에 감동받아 출가하게 된 태산 김영택(75·太山 金泳澤) 원로교무. 마치 무염선사가 중생을 위해 불석신명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출가한 구정선사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전무출신에 대한 그의 강직한 서원과 의지는 훗날 어려웠던 교중 살림을 되찾고 지금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원불교와 만남, 그리고 감동그는 1944년 경남밀양에서 부친 한산 김원규와 모친 간타원 김호연 사이에서 8남매중 2남으로 출생했다. 그가 10살 되던 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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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헌 기자
2019.08.20 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