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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3대가 교단을 위한 공익심으로 살아온 집안이다. 그래서 박문철 영산교당 교도회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광에서 나고 자라며 교당 생활을 해왔던 그의 눈에는 원불교의 고향이 곧 그의 고향이었고, 교당은 곧 그의 집과도 같았다. 그래서 교단 일이 무엇보다도 먼저였고, 고향의 교당인 영산교당이 가장 소중한 그였다. 더욱이 소태산 대종사가 회상을 창립한 그 시기부터 그의 조부모님도 그 현장에서 역사를 함께 해온 분들이었다.“소태산 대종사님이 우리 할아버지의 입교 연원이십니다. 조부모님께서는 무엇보다
여기, 은혜로운 당신
유원경 기자
2024.02.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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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당고모 할머니(삼타원 최도화 대호법)가 열반하던 해, 그가 태어났다. 전북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 온 동네 사람이 모두 원불교인인 일원마을에서 그 아이의 주 놀이터는 회관(마을에선 교당을 회관이라 불렀다)이었다. 일상수행의 요법을 구구단보다 더 잘 외우고, ‘영산회상 봄소식이’(교가)는 입에 착 달라붙는 유행가 마냥 구성지게 불렀다. 겨울에는 집집마다 요를 가지고 와 일주일씩 교당강습(선)을 났던 마을 사람들, 그사이에 꼭 끼어 앉아있던 아이가 그였다. 초등학교 시절, 교당에 가면 검정치마 흰저고리 선생님
교무와의 대화
이여원 기자
2024.02.1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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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09년, 원불교 대학생 리더(원대리)들을 찾아 활동부터 청년교화 제언까지 솔직담백한 얘길 들어본다. 첫 주인공은 문닫을 위기의 고원회를 살려낸 신주성 회장(본명 대윤). 명상 배울 곳을 찾다가 원불교 동아리를 만나 입교까지 이어졌다. 신입교도의 신선한 시각으로 ‘힙한 동아리’를 만들어가니, 고원회는 원불교 배경이 없는 학생들이 모여드는 새로운 원불교 교우회가 됐다. 1. 입교계기? 힘든 일이 있어 정신과 상담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 혼자 극복하자는 생각에 명상 배울 곳을 검색해봤고, 마침 고려대학교 SNS인 ‘에브리타임’
원(won)대리
민소연 기자
2024.02.0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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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그날 아침, 최성원 교도의 얼굴이 유독 어두웠다. 이를 알아챈 정법일 교무가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는 아침에 아내에게 했던 ‘충격요법’을 털어놓았다. 새벽에 시댁 일로 나간 아내가 남편 아침상에 올릴 굴비를 굽기 위해 오븐의 예약기능을 사용했던 게 화근. 기능이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굴비는 새까맣게 타버렸고, 이를 그냥 넘길 최 교도가 아니었다. 아내가 요리를 태운 적이 한 두번 아니라는 생각까지 더해져, 그는 오븐이며 그릇을 모두 엎어놓고 나왔다. 그가 말한 ‘충격요법’의 전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정 교
감사생활 캠페인
이여원 기자
2024.02.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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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편집국장] 그가 불교를 만난 건, 20대 중반이다.본래 ‘교회 오빠’ 그 자체였으나,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며 피신 다니다 불교를 만났다. 그리고 불교 공부를 하며 그는 ‘충격적 감동’을 받았다. 특히 에 담긴 ‘보살은 사상(아·인·중생·수자상)을 여의어야만 올바른 바라밀을 행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동안의 생각을 모두 뒤엎는 계기가 됐다.“학생운동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위해서 일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누구를 위한다’는 그 마음이 사고와 화를 일으킬 수
이웃종교 링크
장지해 편집국장
2024.02.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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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스승은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사회로 나온 한 청년. 그는 ‘세상의 스승’을 그때 만났다.누구에게나 항상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었던 스승. 그는 청년에게 “나에게도 스승이 있다”고 말했다. 스승님의 스승은 다름 아닌 ‘원불교’였다. 어느날 “자네도 원불교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떻겠나”는 질문이 왔다. 청년은 두 마음없이 “네 그러겠습니다”고 답했다. 어느덧 30여 년이 지난 과거 속 익산성지에서 스승인 故 래산 김홍준 전 제일제당 고문(법명 경원)과 청년이었던 강용성 미푸드시
여기, 은혜로운 당신
김도아 기자
2024.02.0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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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방타원 김지훈 정사(旁陀圓 金芝薰 正師)가 1월 16일 열반했다. 명랑하고 쾌활한 성품으로 주변과 화합하며, 당하는 곳마다 부처님으로 보고 불공에 정성을 쏟았던 방타원 정사는 오직 공심과 무아봉공으로 일관한 전무출신의 삶을 살았다.방타원 정사는 의령교당 교도로 활동하며 故 후타원 김현성 정사를 만나 출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순창교당에서 예비덕무 과정을 거쳐 동계선교소(현 동계교당)를 설립할 때 후타원 정사를 도와 묵묵하고 흔적없는 태도로 불사에 헌신했다.또 늦은 출가였지만 ‘87동이(학년)’에 대한
열반
이현천 기자
2024.02.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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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이진수 교무(나포리교당)가 효당본가 반야로차도문화원 개원 40주년 기념 제3회 효당차문화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2월 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진행된 수상식에서 이 교무는 후학양성을 위해 다양한 차문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국내외로 차문화의 소통과 교류를 도모, 여러 저술로 학문적 성과를 이뤄 한국 차문화 발전에 대한 큰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교무는 국제차학술대회, 국제차 심포지엄 등 활발한 국제교류와 국내 활동을 비롯, 차문화 발전을 위한 43편의 논문 및 33편의 관련 저서를 발간했다.[2024
미니인터뷰
이여원 기자
2024.02.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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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소태산 대종사님은 그동안 너무 멀리, 높이, 벽 속에만 계셨어요. 그런 분이 점점 내려오고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순례를 하면 할수록, 스승님이 가까이 느껴져요.”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서울교화 100년인 올해 서울원문화해설단장을 맡은 박혜현 교도(정릉교당 교도부회장)다. 원불교의 서울성적지를 가장 많이 톺아본 교도, 1920년대 사료를 가장 많이 봤을 교도. 그리고 서울성적지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안내했을 박 단장. 한 글자 한 글자의 고증과 해설을 위해 매주 공부했고, 요청이 오는 대로 길
여기, 은혜로운 당신
민소연 기자
2024.01.2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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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1997년, 거짓말처럼 나라가 망했다. IMF경제위기가 온 국민을 집어삼키던 그때 남편이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후부터의 시간은 주식투자 실패, 빚보증 등… 온통 경계 뿐이었다. 당시 진귀은 교도(익산교당)는 인생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교당으로 향했다. “그때 교당에서 ‘세상이 나를 공부하게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가 경계를 무사히 지나게 해준 힘은 바로 ‘동포은’이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운영하게 됐다. “동네 장사잖아요. ‘아이 키우는데 고생하네’ 하며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4.01.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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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아중교당 노우진 학생교도(15)가 서울·경기 지역 외의 15세 이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 15세 이하 입단대회’에서 입단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프로 입단에 성공한 것이다. 노 초단은 1월 6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입단 결정국에서 종합전적 10승 2패를 거두며 입단 관문을 통과했다. 노 초단은 “입단에 성공해 너무 기쁘다. 4강에 올라갔을 때는 자신감이 생겨 입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모님께서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짐을 덜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저를 오랫동안 가르쳐주신
미니인터뷰
이여원 기자
2024.01.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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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원불교? 들어는 봤다”고 말하던 남편(김용인 교도)을 교도회장으로까지 키워내고(?), 시부모님, 시동생 둘, 동서 둘, 조카 둘을 모두 입교시킨 이혜명 교도(과천교당). 그래도 자녀교화는 마냥 쉽지 않았다. 4대째 신앙을 잇는 내 자식에게는 “엄마는 다른 소원 없어. 일원가정으로 살아주는 거면 돼”라며 어르고 달랬고 밀고 당겼다. 다행히 아들과 딸(김우성 응급의학과 전문의·김지원 기후변화학자)은 교도로도 잘 자라주었다.허나 며느리는 또 다른 장(場)이었다. 본래 생판 남이었던 며느리 속을 어찌 알며, 어
감사생활 캠페인
민소연 기자
2024.01.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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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도자기는 인과가 확실하다.원으로 된 물레를 돌리는 손끝에 온몸의 일심을 집중해야 바른 형태가 나온다. 잠시라도 허튼 생각을 했다가는 그대로 어그러져버리는 그 모습은 일원상 진리와 원리를 쏙 빼 닮았다.음식이나 꽃 등이 담기는 보통의 도자기와는 달리 그의 도자기에는 특별하게도 ‘죽음’이 담긴다. 누군가와 가족처럼 지낸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의 흔적이 화장 후 이은주 교도(서청주교당)의 도자기에 담겨져 추억으로 닫힌다. 그는 유골이 담길 도자기의 모양을 ‘집’으로 정했다. 죽음을 ‘결국 돌아오는 곳’처럼 편안하
여기, 은혜로운 당신
김도아 기자
2024.01.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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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지난해(2023년) 원광대학교병원(이하 원광대병원)은 4주기 의료기관인증평가와 5주기 상급종합병원 평가에서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호남권 1위’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는 ‘호남·서해안권 최고 병원’으로 역할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명확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그뿐인가. 원광대병원은 지난해 비수도권으로서는 유일하게 초음파 진료 우수 병원 인증을 획득했고(6년째 선정), 만성 폐쇄성 폐질환·정신 건강 입원영역·폐렴 적정성 평가 1등급(각각 8차·2차·5차 연속) 등의 결과로 실력과 위상을 증명했다
특별인터뷰
장지해 기자
2024.01.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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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또래보다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학교가 재미없었다. 혼자 생각으로 ‘학교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 늘 의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13살 되던 해, 그는 “중학교를 마치면 서울로 상경하겠노라”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사실 일방적인 ‘통보’였을 터. 그렇게 그는 16살에 서울로 올라가 20대 초반까지 도시생활을 했다. 인연의 시작이었을까. 친구와 의기가 투합돼 농어민 후계자가 되고자, 그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일명 4-H 운동에 심취돼 새마을 청소년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좀 더 지식을 넓혀야겠
교무와의 대화
이여원 기자
2024.01.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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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교권이 무너졌다고 했다. 1998년부터 시작한 교육계의 큰 전환점이 된 일명 이해찬 이데올로기, 즉 무시험전형 및 교육개편이 큰 경계를 몰고왔다. 당시 교편을 잡고있던 한수진 강동교당 교도회장은 그야말로 ‘이빨빠진 호랑이’가 된 듯 자존감이 무너졌다. 그때 교당에서 들은 일상 수행의 요법 중 ‘세우고’와 ‘돌린다’가 그의 가슴을 울렸다. ‘그래 고정관념을 돌리면 자존감은 다시 세워질 수 있어!’ 덕분에 한 교도회장은 과거 ‘교사’에만 머물렀던 자신의 모습을 탈피해, 학생들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그들의 말에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4.01.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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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통영 사람들은 자기네 고향을 ‘토영’이라 부른다. ‘토’ 자에 힘을 담고, ‘영’ 자에 훅 빼버리는 그 묘한 발음을 통해 단박에 ‘토영 토박이’를 구분해낸다. 토영 토박이들에 대한 외지인들의 평은 대체로 이러하다. ‘바닷가맹키로’ 무뚝뚝하며 강인하지만, ‘쥑이는’ 미항의 풍경과 풍족함에 섬세하고 예술을 우러른다고. 요샛말로 ‘츤데레(차가운 듯하지만 속으로는 다정한)’ 스타일이랄까. 남쪽의 따뜻한 겨울 가운데 만난 정용권 통영교당 교도회장(법명 종환)도 꼭 그랬다. 너털웃음과 손사래로 한없이 겸양하면서도,
여기, 은혜로운 당신
민소연 기자
2024.01.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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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7살, 5살된 자녀들만 그의 곁에 남았다. 그때 김상원 교도(광주교당)의 나이는 시리도록 푸른 28살이었다. 당시 교당에서 남편의 49재를 지내며 원불교를 버팀목 삼았다는 그. “그때부터 어려운 일(경계)이 닥쳐와도 도반들과 의논하고 넘겨냈어요.” 그렇게 법동지들과 ‘서로 못나눠줘서 안달’하며 여러 세월을 살아왔다. 특히 연원인 故 김정근 원로교무와는 엄마와 딸처럼 지내며 살았다. “열반하시기 전 틀니를 해드렸는데 1년도 못지내고 가셔서….” 살아생전 진심을 다 했음에도 더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4.01.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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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신고한 사람은 그의 부모였다. 망상이 심해진 데다 폭력까지 행사하니, 참고 참다 결국 경찰서로 전화를 건 것이다. 경찰은 청년에게 말을 걸고, 그의 횡설수설하는 헛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느끼고 있던 청년은, 드디어 119차량에 올랐다. 그런데 병원에서 과대망상으로 입원 판정을 받자, 청년은 갑자기 섬망(급성 혼란 상태)을 보였다. 간호사들이 팔을 묶자, 청년은 경찰을 쏘아봤다. 분노와 슬픔이 섞인 눈동자, 원망심 그득한 눈빛이 경찰에게 날아와 ‘콱’ 박혔다. 벌
여기, 은혜로운 당신
민소연 기자
2023.12.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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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한 1973년 어느 여름의 길 위. 아들을 임신했을 시기라 배는 불렀고 손에는 방문판매로 팔 화장품을 들고 있었다. 원불교의 ‘원’자도 모르던 그는 길 위에서 우연히 검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쪽 진 사람을 처음 만났다.“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법문을 즐겨 말해주셨는데 처음 만난 ‘여자’가 마치 아버지처럼 법문을 들려주시길래 ‘우리 아버지가 환생 해 다시 오셨나’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조정인 교도(궁동교당)는 그렇게 서위진 교무와 원불교를 만났다.처음에는 무당집인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12.24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