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이런 까닭에 마땅히 법을 취하지도 말고, 법이 그르다는 것도 취하지 말라. 이런 뜻으로 여래는 항상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이 뗏목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법도 응당 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리요(『금강경』 6장).”법상과 비법상도 취하지 말라는 말씀에 이어서 부처님은 나의 설법이 뗏목과 같다는 말을 했다. 뗏목의 비유는 유명하다. 뗏목을 이용하면 ‘이쪽 언덕(此岸)’에서 ‘저쪽 언덕(彼岸)’으로 건너갈 수 있다. 뗏목은 강을 건널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도구이다. 하지만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06.23 10:23
-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선의 목적은 자유다.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움이 기반 되어야 한다. 그런데 비움은 마음먹는다고 해서 이내 비워지는 게 아니다. 어떤 대상에 몰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한 생각이 전일하다가 저절로 무념이 된다. 물론 마음먹은 즉시 비우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희박하다. 설사 이렇게 비웠다 해도 이 비움은 마음 멈춤의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왕 마음을 비울 것이면 선의 몰입으로 비워서 내면화가 되어야 언제든 마음먹은 즉시 비울 뿐 아니라 그 내용이 아주 맑고 영롱하고 힘이
수행의 길
길도훈 교무
2022.06.22 14:20
-
[원불교신문=김지법 교무] 장자의 많은 우언(寓言) 중 인상적인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포정해우’를 택할지 모른다. 신분에 따라 차별이 심하던 시대에, 백정이 임금에게 도(道)를 논한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많은 해석과 변주를 낳았다. 먼저 장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포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가르고 있었다. 손으로 철썩 때리고 어깨를 쑥 내밀고 발로 꽉 밟고 무릎을 구부림에 따라, ‘쉬익!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휘두른 칼날이 소를 갈라내는데, 결코 리듬을 잃지 않았다.
생각의 심연 『장자』
김지법 교무
2022.06.22 13:49
-
불교 3, 아띠샤 (2)왜 많은 사람들이 광신자 되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광신자가 됨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도피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깊이 생각하고 느끼지 않아도, 예수에 기대고 부처나 보살들의 어깨에 기대면 편하다. 히말라야를 올라갈 때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강과 아름다운 계곡과 숲이 있는 길도 있고, 수목이 없는 길도 있고, 바위로만 된 길도 있다. 아니면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길도 있다. 그러나 모두 정상으로 가기는 한다. 정상에 오른 선각자들은 여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부처님의 향기
김종천 원로교무
2022.06.21 11:09
-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아시아 사회에서 부모교육에 대한 인식은 자녀교육보다 그 비중이 낮다. 아마도 유가의 가부장적 문화, 수직 문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예컨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자녀교육의 대표적인 텍스트를 꼽는다면 단연 남송의 유학자인 주자(朱熹, 1130~1200)가 편한 『소학(小學)』이나, 이이(栗谷, 1536~1584)가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들 수 있다. 한 걸음 나아가 태교도 부모교육이라고 한다면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 1739~1820)가 쓴 『태교신기(胎敎新記)』가 있다. 『태교신기』는 남성 역시
원불교와 교육
김혜광 명예교수
2022.06.17 11:01
-
[원불교신문=라상현 교무]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죽염을 샀다. 죽염은 소금인 줄만 알았는데 처음 먹어 보니 맛과 냄새가 달걀 썩은 냄새 같아서 비위가 상했다. 고체 형태의 다른 죽염들은 냄새도 덜 나고 먹기도 편해 보였는데 내가 산 분말 죽염은 비린내가 나서 먹기가 고달팠다. 먹을 때 고약한 냄새가 나니 기분이 찝찝하고, 왠지 몸도 더 안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이 상한 것일까? 왜 이런 걸 비싸게 주고 사서 먹지? 이해가 안 가네 어떻게 이런 죽염을 시중에 내놓고 팔지?’라며 업자에게 속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재잘재잘
라상현 교무
2022.06.17 09:55
-
[원불교신문=이도하 교수] 알트스페이스는 2013년에 설립됐고 2015년 5월에 초기 제품을 출시한 소셜 VR 플랫폼이다. 2년만인 2017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했으니, 그 뒤로도 벌써 5년째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마이크로소프트 메쉬 등과 함께 혼합현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무료로 운영되며 누구나 이벤트를 열 수 있고, 2020 파리 패션위크 가상 패션쇼가 열렸고 레드카펫 시사회, 가상우주기지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알트스페이스VR은 확장성과 개방성이 높은 메타버스다. 알트스페이스의 확장성은 월드를 구축하는
메타버스 시대의 원불교
이도하 교수
2022.06.16 17:11
-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금강경』 6장에 법상과 비법상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법상과 비법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상(我相, ātmasaṁjñā)은 ‘아트만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을 말하니, 법상(法相, dharmasaṁjñā)은 ‘어떤 법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법상이 없다’는 것은 ‘어떤 법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다.비법상(非法相, adharmasaṁjñā)의 풀이에 주의해야 한다. ‘법’은 제법무아(諸法無我)에서와 같이 ‘모든 존재’라는 뜻과 함께 ‘부처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06.16 16:55
-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알면 알수록 수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다 보니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아도 원초적으로 만족될 수 없다. 허기진 마음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자아실현과 일 그리고 의식이 깨어 존재하는 것을 넘어 영적 차원의 세계까지 의식이 펼쳐질 때 채워질 수 있다. 그런데 영적인 의식으로 삶을 살고 싶어도 그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이 ‘의식주와 좋아하는 사람들과 레저 즐기는 것을 넘어 의식이 깨어 열린 사람과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노력해갈 수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스
수행의 길
원불교신문
2022.06.16 10:57
-
[원불교신문=김지법 교무] 장자는 앎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지식과 같이 대상에 대한 앎이고, 다른 하나는 메타인지와 같은 앎에 대한 앎이다. 이 둘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대상에 대한 앎은 끝이 있을 수 없지만, 스스로 아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앎은 분명하다. 다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지혜가 없기에, 스스로 앎에 대한 확신이 없을 뿐이다.장자는 「양생주(養生主)」의 첫머리에서 “나의 삶은 끝이 있지만,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따르면, 위태롭다”고 말한다
생각의 심연 『장자』
김지법 교무
2022.06.15 14:46
-
불교 2불교 초기교단의 한 사람이었던 목갈라나(목련존자)가 붓다의 시자였던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입멸 전에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정해 입멸 후의 의지처, 곧 우리 교단의 상수로 정하지는 않았는가?” 아난이 대답했다. “단 한사람의 수행자도, 세존은 ‘이 사람이야말로 내가 떠난 후에 너희들이 의지할 곳이다’라고 추천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들이 오늘 귀의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목갈라나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렇게 의지처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인가?” 아난은 “그렇다
부처님의 향기
김종천 원로교무
2022.06.14 16:07
-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 『정전』에는 실천을 강조한 흔적이 많다. 일원상법어에서는 ‘이 원상은 인간의 육근을 통하여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요’라고 했다. 사은 장에서는 ‘은혜를 안다고 할지라도 보은의 실행이 없으면 배은이다’고 했다. 법률 보은의 조목에서는 ‘수신, 제가, 사회, 국가, 세계를 다스리는 법률을 배워 행할 것이요’라 했고, 작업취사의 목적에서는 ‘정신의 수양력, 사리연구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실제 일을 작용하는 데 있어 실행을 하지 못하면 수양과 연구가 수포로 돌아갈 뿐이요 실 효과를 얻기가
원불교와 교육
김혜광 명예교수
2022.06.10 09:48
-
[원불교신문=라상현 교무] 무슨 일이든 대충 노력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온 마음 온 힘을 다해야 간절히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다. 계획을 세우고 정진할 때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닿을 수 없거나 불가능한 일이더라도 온 마음 온 힘을 다해 간절히 구하면 현실에서 이뤄지는 이치가 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 애를 쓴다. 야구에서 투수는 공을 손으로 던질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통해 그 힘을 다한다. 무엇인가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심을 다 해야 한다. 고통에 빠진 온 생령을 위해 ‘죽어도 여한 없다’고 맹세한
재잘재잘
라상현 교무
2022.06.09 14:47
-
[원불교신문=이도하 교수] 금년초에 시작했던 메타버스 콜로키움과 메타버스 워크샵이, 얼마전부터 인게이지VR을 마치고, 두 번째 메타버스 플랫폼인 알트스페이스VR로 넘어가고 있다.인게이지VR에 비해서 알트스페이스VR은 안정적인 그래픽과 개방된 플랫폼으로 인해 호감도가 높아 보인다. 지난해 11월 오스틴 메타버스 봉불식을 할 때 알트스페이스VR의 계정 정책과 스팀 위에 알트스페이스를 설치해야 되는 번거로움으로 인게이지를 선택했다고 했는데, 어쩌면 정작 메타버스에 들어오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메타버스 시대의 원불교
이도하 교수
2022.06.09 11:05
-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을 낸다(一念生淨信).”『금강경』 6장에서는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淨信)을 내는 사람을 설명한다. 이 사람은 이미 무량수 부처님이 계신 곳에 선근을 쌓았기에 『금강경』 법문을 듣자 한 생각을 넘기지 않고 청정한 믿음을 낸다. 또한, 부처님은 이 사람이 무량한 복덕을 얻는다고 강조한다(須菩提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 得如是無量福德). 그 이유는 이 사람이 다시는 사상과 법상, 비법상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何以故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無法相 亦無非法相).여기까지 보면 청정한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06.09 09:42
-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원불교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용심법(用心法)이다. 그 목적은 사람 사람이 마음을 잘 써서 행복한 세상을 이루는 데 있다. 그런데 그 용심법의 궁극적 기준이 여래다. 대부분의 사람이 ‘헉’하고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설사 여래의 뜻을 품었다 해도 현실로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그 시작은 세상 보편적 가치에 충족하는 것부터다. 게다가 동물과 인권과 환경을 생각하고, 일 처리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면 준수한 정도는 된다. 나아가 포용과 배려에 인색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진리를 벗하며 따듯한
수행의 길
길도훈 교무
2022.06.08 15:27
-
[원불교신문=김지법 교무] 장자는 삶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가진다. 세상의 거친 풍파 속에서 하늘의 뜻에 따라 천수를 누리라고 말하다가도, 죽음에도 초연하여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아 덧없는 삶을 남의 일인 듯 말하기도 한다. 얼핏 이 두 관점은 모순인 듯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서로 다른 말일까. 하늘의 뜻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은 참된 길(道)이다. 또한 그 삶이 끝나는 것 역시 하늘의 뜻, 이 또한 참된 길이다. 장자가 주목하는 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듯,
생각의 심연 『장자』
김지법 교무
2022.06.08 14:42
-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엄밀한 의미에서 고타마 붓다를 ‘시스템 메이커’라고 할 수는 없다. 시스템 메이커로서는 G.I.구르지예프가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고, 그 뒤를 이어 소태산이 시스템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소태산은 어느 의미에서는 구르지예프보다도 더 교리와 교단에 이상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구르지예프는 자기 가르침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그것이 만세를 유전해야만 한다는 욕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의 정치적, 문화적 분위기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인간은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로빈슨 크루소처럼
부처님의 향기
김종천 원로교무
2022.06.07 15:24
-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어느 시대든 사제관계는 존재해왔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지만 그 모습은 예전과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스승도 많지만, 제자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사제관계를 예전처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로 고집하기에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 물론 스승과 제자가 동행하는 것이 순리임은 분명하다.제자가 스승을 훨씬 능가한다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런 경우는 혹 스승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제자가 채워주기 때문에 제자로 인해 스승도 빛을 발한다. 그 반대도 없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스승에 미치지 못하는 제자일
원불교와 교육
김혜광 명예교수
2022.06.03 15:21
-
[원불교신문=라상현 교무] 아침에 교당 주변을 청소하다가 이웃 어르신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러자 어르신은 “감사합니다. 얼굴이 참 좋으시네요”라고 답례를 해줬다. 문득 ‘얼굴이 좋은 사람은 어떤 얼굴을 가졌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거울을 보며 다양한 표정을 지어봤다. 아직 의식적으로 웃는 얼굴이 강한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도 꾸준한 의지와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흔 정도 되면 살면서 어떤 생각과 마음 상태로 표정을
재잘재잘
라상현 교무
2022.06.03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