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26일은 법인성사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삼천리강산을 피의 함성으로 물들이던 1919년(원기 4) 7월 26일, 우리의 9인 선진님들은 혈인의 이적으로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교단 창립의 정신적 토대를 다졌다.법인성사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욕을 떠난 희생봉사의 정신이요, 분열과 대립이 아닌 단결과 화합의
사설
원불교신문
1979.07.25 13:25
-
대산 종법사는 7월 6일 정산종사의 탄생지(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찾아 참배하고, 「정산종사 성탑명」봉고식을 올렸다. 이어 대구교구 일원 교당을 순시하고 경주 「통일원」에서 가진 조국 통일 기념 법회 임석, 불국사 주지 월산 스님 예방, 최수운 선생 용담 성지 참배, 감포 해수욕장 옆 새 수양원 부지 답사, 대구교구 합동 대법회 임석 등 3일간의 대
교화
원불교신문
1979.07.25 13:20
-
<사진설명: 필자>원불교란 무엇인가? 에 대한 위치 파악 중요시 여겨야끊임없는 봉사와 참을성 있는 자기 투쟁을 통한 교육예비교역자 교육담당 교무들의 교류 근무 바람직하다.관료적 억압, 씨족적 압력, 경제 물량적 공세 등은인간형성과 자아실현에 막대한 영향 미치게 돼보수성과 진보성은 대립될 수밖에 없어행정적 발전, 경제적 안정, 법위향상 못지않게새로
교화
원불교신문
1979.07.10 16:45
-
정토회 교당 체육대회가 5월 20일 원광대 실내체육관에서 1백여 명의 회원과 1백 50여 명의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었다.이날 체육대회는 교화단별로 8개 팀을 구성하여 각종 경기에 임했는데, 각 팀마다 특색을 살린 입장식에는 대산 종법사를 비롯 교단 원로님들이 임석하여 박수를 보냈다.경기내용으로는 사은보은 게임, 사리연구 게임, 릴레이, 상부상조
교화
원불교신문
1979.06.25 16:21
-
… 4년 만에 실시된 전국 교당 감사가 5월 말로 전부 마치고 6월 11일 평가회를 가져 감사위원들의 지역별 감사결과를 놓고 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금년 감사는 과거 전국 감사반과 달리 교구별 감사반을 편성 교정원의 부장들이 감사반장으로 2개월 만에 전국을 일제히 마친 것과 부교정원 실무진인 과장급들이 감사위원으로 감사가 실무적인 면을
교화
원불교신문
1979.06.25 16:16
-
<사진설명: 밀양 제일극장에서 열린 사상 강연회>밀양의 지역사회를 위해 열린 제1회 원불교 사상 강연회가 5월 20일 밀양 제일극장에서 밀양교당 청년회 주최로 열리었다.군수· 경찰서장· 통일주체 대의원 등이 모두 참석한 지역적인 행사로 열린 사상 강연대회에서 문한규 박사(부산대· 동래교당 교도회장)는 「오늘의
교화
원불교신문
1979.06.10 16:10
-
= 충무공 탄신 4백 34주년과 세종 탄신 5백 83돌을 맞으며바르고 옳은 일이면 그것으로 자기의 갈 길 삼아충무공은 일체의 부정을 극복하고 새 길 뚫어막혔던 숨통 열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한 선각자세종은 경사(經史)에 박통하고 외국의 문화사업과 문물에 예민훈민정음의 제정은 민족정신과 애민정신에 바탕세종은 국왕이기보다 「과학의 대?뮈?「발명의 대왕」우리는 우
교화
원불교신문
1979.05.25 16:02
-
<사진설명: 우리나라 누각 형태에 현대미를 기한 첫 시도의 울산교당><사진설명: 외벽을 높이 세우고 거기에 일원상을 부착한 형태·신촌교당><사진설명: 외형은 고유한 한옥식으로 내부만 법당시설·서울교당><사진설명: 일반 공공건물처럼 지은 평범한 교당 건물·원평교당>교단의 발전 추
교화
원불교신문
1979.05.25 15:58
-
석가탄일 2천 6백 2주년(불기 2523년)이 되는 4월 8일(음)을 등석(燈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사월 초파일은 연등회 관등회를 베풀고 연화등 일월등 수박등 거북등 학등 잉어등 마늘등 칠성등 수자(壽字)등
교화
원불교신문
1979.05.10 15:51
-
한 제자가 증산에게 묻기를 『저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나이까.』『있나니라.』『그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나이까.』『또한 있나니라.』 이렇게 아홉 번을 묻고는 또 물으려 하였다. 증산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그만 물이라. 그렇게 물으면 마침내 도를 얻지 못하나니라.』 이 말씀과 같이 천지의 모습은 사량으로 측량할 수 없는, 중심도 없고 겉이 없는 무한하고 무
교화
조정중
1979.05.10 15:50
-
<사진설명: 영산선원 영산원 법당에서 열린 대산 종법사 초청 간담회>대산종법사는 4월 6일 교단 관계의 국회의원 및 전남도지사·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과 영광지역 기관장· 유지 등을 영산성지의 영산선원으로 초청, 간담회를 가졌다.초창간담회에는 국회의원 정해영씨(신민· 부산) 김재식씨(공화· 영광)
교화
원불교신문
1979.04.10 15:23
-
북한교화위원회가 4월 5일 오후 2시 영산선원 대각전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발족되었다.「일원으로 뭉친 정성 평화통일 이룩하자.」는 표어를 걸고 열린 이날 발기인회에는 고향을 이북에 둔 실향민과 분단 이전 개성교당을 유지하던 교도들이 참석 「공산권에 사는 동포들도 법신불 은혜로 법은을 입어 평화로운 통일이 되길 기원」했다.북한교화위원회가 발족을 보게 된 것은
교화
원불교신문
1979.04.10 15:23
-
<사진설명: 전남 영광군 길용리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터인 노루목 광장에서 초청인사 등 교도 3천여 명이 모여 열린 「세계 평화 대법회」및 「북한 교화위원회」발족 봉고식><사진설명: 「북한 교화위원회」발족 봉고식 전야제에서 고향을 이북에 둔 교도 등 5백여 명이 금년 졸업생이 만든 「통일 염원대」에 각자의 촛불을 점화,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교화
원불교신문
1979.04.10 15:18
-
<사진설명: 백상원 교무>언어와 풍습, 인종과 생활양식이 다른 미국 교화의 전망은 어떠한가? 그 현황을 동계 교무훈련에 참석키 위해 일시 귀국한 백상운 교무에게 듣는다.「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자세로 교화에 임하고 있다는 「백」교무의 말이고 보면, 해외 개척교화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암시해 준다.사무여한의 정신자세만이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교화
원불교신문
1979.01.25 14:04
-
우리가 「원효」를 그늘 속의 사상가로 유별(類別)하려는 것은 원효가 당시의 불교 사상계에 던진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 얼핏 이해되지 않는 시대배경 속에서 나온 주장이기 때문이다.해동종의 종조(宗祖)익히 나는 것처럼 당대의 불교계의 표현대로 「해동종」의 宗祖라고 할 만큼 그의 사상은 탁월한 것이었고 특히 그의 제종을 하나로 통할 포용하는 포괄적인 주체성
교화
원불교신문
1979.01.25 14:01
-
<대산 종법사의 인품과 종교 혼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수시법문>공부하는 동지라야 영겁의 법형제가 될 수 있어스승이나 선배의 부족을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사진설명: 원기54년 10월 5일 알봉 묘지 야유회에서(중앙이 대산 종법사)>◇ 『이제 영웅시대는 지났고, 미륵 즉 근실시대이다. 각자 더욱 노력하고 근실해서 흑자생활을 해야 한
교화
원불교신문
1979.01.25 14:01
-
진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진리는 영원하고 또한 절대적인 것이다.그러나 현실 사회는 진리의 영원성과 절대성을 믿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심지어는 진리 그 자체의 존재까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모든 성현들이 한결같이 진리를 가르쳤고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진리를 갈구해왔지만,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은 성현의 말씀을 믿기 어려울 때도 많고 갈구하면
교화
원불교신문
1979.01.10 13:39
-
전문인을 기용, 재정을 통일 관리시대의 급변에 따라 사회가 크게 변천되고 사업이 확장되고 있으므로 교단적으로도 제도 면에 있어 많은 쇄신이 있어야 세계적인 종교로서 발돋움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의도에서 다음의 네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첫째 장학제도의 확충이다. 일반이나 교도가 다함께 관심을 갖는 사업이므로 대폭 확충하여 ① 교화에 전문하는 인재 양성
교화
박제권
1978.12.25 13:31
-
올해 문화계 활동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아시아 지역의 최대 공연장으로 등장한 세종문화회관 준공과 그 개관 기념공연, 폐문 위기 일보 전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난 소극장, 제1회 전국 대학 연극제전, 제2회 대한민국 연극제를 들 수 있다.그러나 그 내용이 대체적으로 격조 높은 예술성이 부족했고 통속적인 상업주의 근성에 젖었다는 것이 주된 결산 평가인 듯. 한편
교화
원불교신문
1978.12.25 13:30
-
지난번 추계 교역자 훈련 때와 교정위원회 때, 착하기만 하고 인내를 미덕으로 삼아 오던 다수의 교역자들이 교단 현실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토로했다.그것은 결코 교단 행정에 대한 비판이나 불평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교단의 장래를 생각하고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을 널리 펴야겠다는 투철한 서원과 간절한 소망에서 나온 적절할 호소였다.각종 훈련문제, 남자교무의
사설
원불교신문
1978.11.25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