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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도를 행함에 있어 큰자비로 덕을 베품이 보시외에 더큼이 없나니 보시공덕의 뜻을 세워 그 도를 행하면 복이 심히 크나니라 또한 수희공덕이라 다른 사람이 베푸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도와서 몸과 마음에 즐겁고 기쁨을 가지면 많은 복을 얻으리라”하셨다. 자타가 이로써 이로움을 얻는 길이다. 베품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생시(資生施)로 재물로 빈궁
불조요경
이용정 교무
2008.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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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오직 널리 듣고 많이 보는 것만으로써 도를 사랑하는 이는 도리어 도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요, 먼저 신(信)을 세우고 뜻을 지켜서 천만 경계에 능히 흔들리지 아니 함으로써 도를 가진 후에야 그 도가 반드시 크게 되리라”하셨다. 삼국시절 한고조의 진영에 장량이란 이가 있었다.한고조는 언제나 이 장량의 병법에 의지해서 전쟁을 수행해 왔다.장량이 병법
불조요경
이용정 교무
2008.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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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악한 사람이 어진이를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우러러 침을 뱉으면 침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도리어 자기에게 떨어지며,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날리면 먼지가 저쪽에 가지 않고 도리어 자기 몸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어진이를 해하는 것은 화가 자신에게 돌아와 몸을 망치게 된다” 하셨다.남을 해롭게 하는 것은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이니 남을 공경하고
불조요경
이용정 교무
2008.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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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어떤 사람이 찾아와 여래가 도를 지키고 큰 자비를 행한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와서 꾸짖고 욕하길래 내가 묵묵히 상대하지 않았더니 그 사람이 꾸짖고 욕함을 그쳤다.” 그에게 말하기를 “이제 네가 나를 꾸짖고 욕해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욕은 너 자신에게 돌아가서 스스로 화를 입게 된다. 마치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고 그
불조요경
이용정 교무
2008.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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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 때 범천왕은 두 개의 주머니를 주었다고 한다. 큰 주머니에는 자기의 과실을 넣고 작은 것에는 다른 사람의 과실을 넣어서 줄로 매어 걸게 하였는데, 잘못 걸려서 남의 허물 주머니는 앞에 오고 자기 허물 주머니는 등쪽으로 걸렸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부터 시작된 습성이 남아 있어 자기 허물은 못보고 남의 허물만 잘
불조요경
이용정 교무
2008.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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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영원한 세상에 구속은 없어지고 자유 해탈을 얻는 법으로 계문을 정해 주셨으니 비구 250계, 비구니 500계의 많은 계문이 있다. 그중 강령으로 중요한 십계로 살생, 도적, 간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 탐심, 진심, 치심 등 몸으로 셋, 입으로 넷, 뜻으로 셋을 경계하신 바가 있다. 열반 뒤에는 계로서 스승을 삼으
불조요경
이용정 교무
2008.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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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어라 !부처님께서 “도를 배우는 이는 욕심과 애착을 끊어 버리고 불법의 깊은 이치를 깨쳐야… 한다”하셨다.(2장)대종사께서는 수행품 6장에 “성불을 목적하는 공부인은 세간의 모든 탐착과 애욕을 능히 불고하여야 그 목적을 이룰 것이니 만일 소소한 욕심을 끊지 못하여 큰 서원과 목적에 어긋난다면, 꿩이나 토끼를 잡다가 사자나 범을 놓친 셈이라 그
불조요경
이용정 교무
2008.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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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산을 끼고 돌매 굽은 곳을 만나면 굽은 대로 가고 곧은 곳을 만나면 곧은 대로 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 마음이 분별이 없나니 보조국사는 원래 번뇌가 없는 우리의 성품을 깨달아 그 성품을 바탕으로 정과 혜를 아울러 닦아나가는 돈오점수의 수행이 곧 모든 성현들이 밟아온 수행길임을 단언한 바 있으며, 이러한 정혜쌍수의 수행은 바로 우리 마음의 공적영지의 본체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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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定)이 곧 혜(慧)인 고로 고요한 가운데에도 항상 신령하게 아는 지혜가 있고, 혜(慧)가 곧 정(定)인 고로 신령하게 알면서도 항상 고요한지라 ‘정이 곧 혜’라는 말은 ‘고요하면 곧 지혜롭다’(定則慧)는 뜻이다.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에 곱게 물든 단풍이 그림처럼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왔다. 그러나 아무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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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에 드는 문이 많으나 정과 혜 아님이 없고 그 강요를 취하건대 다만 자성상의 체와 용 두 가지뿐이니 앞에 말한 공적 영지가 이것이라 수심결 즉 마음을 닦는 비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혜쌍수(定慧雙修) 즉 정과 혜를 아울러 평등하게 닦는다는 대원칙이다. 이는 정과 혜를 함께 닦지 아니하고 먼저 정 즉 고요함을 얻은 후에야 혜를 닦는다는 어리석음에 대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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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된 마음이 근본이 없는 자리를 비추어 보면 허공 꽃과 같은 삼계가 바람에 연기 같이 걷어지고 육진 번뇌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리라. 요즘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에 대한 논란이 세인들의 관심이다. 학력 위조에 대한 사회적 요인이나 윤리적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어느 유명 인사의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지자 평소 그에 대하여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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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살생과 도적과 간음과 망어가 성품으로 좇아 일어남을 자세히 관하면, 일어나되 곧 일어남이 없는지라 당처가 문득 고요하나니 어찌 반드시 다시 끊으리오. (수심결 24장 중)보조국사는 앞서 불성(마음)은 작용하는 데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어느 왕이 아주 맛있는 차를 마신 일이 있었다. 후일 다시 그 차 맛이 생각나서 신하들에게 그 ‘차 맛’을 다시 가져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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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선악의 성품이 공함을 알지 못하고 굳이 앉아 움직이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을 억지로 눌러 항복 받기를 마치 돌로써 풀을 누르는 것과 같이 하면서 이로써 마음을 닦는다 하니 이것이 크게 미혹함이로다. 깨달음 이후에도 부단한 닦음이 필요하다면 이제 어떻게 닦는가에 대하여 말해야 할 차례다. 흔히 마음을 닦는다고 하면 조금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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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뒤에 닦음이 있다 하나 이미 먼저 망념이 본래에 공하고 심성이 본래에 청정함을 깨쳤을 새 악을 끊되 끊는 바가 없고 선을 닦되 닦는 바가 없나니… 보조국사의 가르침에 의하면 깨달음이란 구경처에 이르기 위한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깨달음 이후에도 그 깨달음에 바탕한 부단한 닦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깨달음 이후의 닦음은 깨닫기 이전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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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친 뒤에 항상 비추고 살펴서 망념이 홀연히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덜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 비로소 구경처에 도달할 것이니, 천하 선지식들의 깨친 뒤에 목우행이 이것이니라. 깨달음에 있어서는 부처와 중생이 호리도 다름이 없지만 아득한 옛날부터 쌓아온 습기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없애기가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역경과 순경을 만나고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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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친 바가 비록 부처님과 같으나 다생에 습기가 깊은지라 바람은 잤건마는 물결은 오히려 출렁거리고 성리는 나타났건마는 망념은 오히려 침노한다. 우리의 본래마음 즉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본래심은 성인이라고 하여 더 고요하거나 밝은 것도 아니요 범부라 하여 더 요란하거나 어두운 것도 아니어서 범부와 부처가 조금도 다르지 아니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미 부처와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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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근(根)과 경(境)과 일체의 망념과 내지 가지가지의 형상과 모양과 가지가지의 이름과 말을 한 가지 얻지 못할진대 이 어찌 본래에 공적하며 본래에 물(物)없음이 아니리오. 나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물을 볼 때는 ‘크다’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물을 볼 때는 ‘작다’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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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또한 까마귀 울고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느냐?” 가로되 “듣나이다.” 가로되 “네가 또한 너의 듣는 성품 가운데에도 허다한 소리가 있음을 듣느냐?” 가로되 “이 속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을 함께 가히 얻지 못하리이다.” 가로되 “기특하고 기특하다. 이것이 관음보살이 성리에 들어가신 문이로다.” 마음에 대한 보조국사의 설명은 계속 이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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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되 “나의 분상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이 공적 영지의 마음이오니까” 대답하되 “네가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너의 공적 영지의 마음이니, 어찌 반조해 보지 못하고 오히려 밖으로 찾는가.” 우리의 본래면목은 텅 비어 고요한 가운데 소소영령한 지혜를 갖춘 공적영지로써 부처나 중생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실제 나에게 있어서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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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적(空寂)한 가운데 영지(靈知)하는 마음이 곧 네 본래 면목이며 또한 이 삼세제불과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의 밀밀히 서로 전하시는 법인(法印)이니라. 나의 본래 마음은 어떠한 형체도 없고 번뇌 망상도 없는 텅 비어 고요한 것이지만 경계를 당하게 되면 당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비추어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신령스런 앎의 작용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6.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