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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알고 알지 못하는 데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니 너는 미함을 가져 깨달음을 기다리는 마음을 버리고… 보조국사는 도(道)를 찾고자 하는 마음, 자신은 중생이니 부처를 찾아야 한다는 그 마음을 버리고 지금 작용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 그것 자체가 바로 부처이며 도(道)임을 계속하여 강조하고 있다. 수행에 있어서 바른 깨달음이 그만큼 중요하며, 깨달음의 핵심은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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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기의 눈이어니 어떻게 다시 볼 수가 있으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만 알면 그것이 곧 눈을 본 사람이라 다시 구해 볼 마음이 없거니 어찌 보지 아니하였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보조국사는 밖에서 부처를 찾는 마음을 돌이켜 자성을 깨닫고 보면 이 성품 자리에는 원래에 번뇌가 없고 샘이 없는 지혜가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모든 부처님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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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라 하는 것은 비록 본성이 부처님으로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알았으나 다생 겁래로 익혀온 습기를 졸연히 다 제거하기가 어려운 고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서 점점 훈습하여 공을 이루어… 이치나 성품, 마음의 원리에 대해서는 깨닫는 순간 곧바로 중생과 부처가 털끝만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지만 오랫동안 익혀온 습관은 일시에 없앨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어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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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품 자리에는 원래에 번뇌가 없고 샘이 없는 지혜가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곧 모든 부처님으로 더불어 털끝만치도 다름이 없는 것을 알았을 새 그런 고로 돈오라 하는 것이요. 돈오 즉 깨달음이 단번에 이루어진다는 말은 닦음과 연관하여 다양한 토론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논쟁의 주요한 주제는 깨달음과 동시에 닦음도 완성되는가 아니면 깨달음 이후에도 닦음이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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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가 미했을 때에는 사대(四?)로 몸을 삼고 망상으로 마음을 삼아서 자성이 참 법신인 줄을 알지 못하며 자기 영지(靈知)가 참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고 …… 보조국사는 깨달음은 단번에 이루어진다는 돈오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미 부처와 다름없다는 것을 깨친 이상 무슨 닦음이 더 필요하며, 점차 닦아야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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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범 도에 들어오는 문이 많으나 강령으로써 말할진대 돈오와 점수의 두 문에 벗어나지 않나니… 지금까지 보조국사는 마음이 곧 부처이며, 이 마음은 성인이나 일반인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으니 네가 곧 부처임을 깨달으라고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리를 깨닫는 것만으로 모든 수행은 끝나는 것일까? 보조국사는 깨달은 이후에도 닦음의 과정이 필요함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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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배우되 선후를 알지 못하며 이치를 설하되 본말을 가리지 못하는 이는 사견이라 이름할 것이요 수도라 이름하지 못할지니… 지금까지 보조국사는 마음이 곧 부처이니 육근의 동작이 곧 불성의 작용이며 내가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것이 곧 견성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견성을 하였다는 것은 곧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며, 성인이라면 그렇지 못한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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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이르되 “어떻게 보림 공부를 하오리까?”대사 이르시되 “한 티끌이 눈에 있으매 허공 꽃이 요란하게 떨어지나니라” 하시니, 그 중이 언하에 크게 깨달으니라. 귀종화상과 제자와의 문답은 보림 공부로 이어진다. 보림 공부란 내가 곧 부처임을 깨달은 후 부처의 마음을 생활 속에서 그대로 지켜가는 공부이며, 깨달음에 바탕하여 닦아가는 공부이다. “어떻게 닦아가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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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떠한 중이 귀종 화상에게 묻되 “무엇이 부처이오니까.” 귀종이 이르시되 “네가 지금 믿지 아니할까 염려하노라.” 중이 이르되 “화상의 진실하신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아니하오리까.” 대사 이르시되 “곧 네가 부처니라.” 보조국사는 마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이견왕과 바라제 존자와의 문답을 통해서 우리의 육근 동작이 모두 불성의 작용임을 설명한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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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만일 작용을 하시면 불성 아님이 없거니와 왕이 만일 작용하지 않으시면 체(體)도 또한 보기가 어렵나이다.’ 미묘한 마음의 세계로 보조국사의 안내를 따라 계속 여행해보자. 마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조국사는 경덕전등록에 나오는 이견왕과 바라제 존자의 대화를 소개하고 있다. 바라제 존자가 불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남천축의 이견왕을 교화하기 위하여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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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형상할 수 없는 것(勿形段者)은 모든 부처님의 법인이며 또한 너의 본래심이니라.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곧 마음이요 불성이라면 굳이 마음을 찾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을까? 마음을 찾으라고 그렇게 간절히 외치는 뜻은 무엇일까?그것은 먼저 수행자들이 나아가야 할 공부 목표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정확하고 명확한 목표의식을 깨우쳐주는 것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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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반드시 너의 불성이라' 보조국사가 지금까지 밝힌 수심결의 요지는 '마음이 곧 부처이니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라'는 것이다. 수심결의 주제이자 부처의 본질인 마음에 대하여 보조국사는 '불성'이라고도 표현하고 '한 물건(一物)'이라고도 표현하며 '본래심' 또는 '형상없는 것(勿形段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마음이란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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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이 물듦이 없어서 본래에 스스로 두렷이 이루었나니, 다만 망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니라.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절대로 밖에서 찾지 말고 안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는 보조국사의 간절한 부탁이 계속된다. 마음 바탕이 밭이라면 그 밭에서 생장하는 채소나 잡초는 마음 작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내가 경작하는 밭이나 부처가 경작
불조요경
원불교신문
2007.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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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일체 중생을 보니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어 있다.'번뇌의 불길을 끄고 마음의 평화,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은 부처를 찾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으며, 부처는 깊은 산 속이나 두꺼운 경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임을 알고 내 마음을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많은 법문이나 경전을 공부하고 법 갖춘 스승을 찾아 지도받는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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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구하고자 하되 자기의 마음을 관(觀)하지 아니하나니’ 번뇌의 불길을 끄기 위한 최고의 유일한 방법은 부처를 구하는 것이며 부처는 곧 마음임을 알았으니 부처를 찾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음을 찾아야 한다. 마음을 찾다니 내가 언제 마음을 잃어버렸던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정녕 내 마음을 잘 관찰해본 적이 있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도 모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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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함을 면하고자 할진대 부처를 구함만 같지 못하고 만일 부처를 구하고자 할진대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 찾으리오.’ 탐·진·치의 무명심에서 비롯되는 끊임없는 번뇌의 불길은 물을 끼얹어 끌 수도 없고 그런다고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끌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번뇌의 불길을 일시에 진화시킬 특급 소방수는 누구란 말인가. 보조국사의 대답은 ‘부처
불조요경
장석준 교무
2007.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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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실체가 비었으나 빈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공 가운데 모든 조화가 갈마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있으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만일 있는 것에만 치우친다면 현실을 초월할 수가 없게 된다.大砲無外하고 細入無內하며크기로는 밖이 없는 데까지 포함하고 작기로는 속이 없는 데까지 들어가며-우리는 언뜻 자기 세계만을 구축하기에 분주하지 말고 나를 벗어난 큰 세계를
불조요경
원불교신문
1970.04.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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合而言之컨댄 熾然作用이나 正體如如를 謂之坐요종합해서 말하면 천만경계에 치연히 작용하나 마음의 정체가 여여부동함이 좌요-.이 세상은 경계 가운데, 일 가운데 살기 때문에 결코 단순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만일 이 단순하지 않은 세계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위험천만한 생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복잡한 세계는 복잡하게 인정해 주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자세
불조요경
원불교신문
1970.04.0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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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피하려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그 경계를 요리하려는 마음이 확고하게 서야 한다. 그런 다면 이 세계가 나의 활동 무대가 된다.外不放入하고 內不放出을 謂之坐요바깥경계가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안 마음이 바깥경계로 나가지도 않는 것을 좌라 하고-결국인간은 경계 가운데 일 가운데 살게 되며 일과 경계를 피해서는 살 수 없다. 만일 밖의 모든 인연이 쉬었다(外
불조요경
원불교신문
1970.03.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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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은 실상반야나 관조반야를 놓고 문자반야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근본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거기에 안주하지 못한다.분별이 아닌 지혜로, 일시적이 아니라 오래오래 계속 해야 한다. 마음의 광명을 가지고 계속해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반야에는 실상반야, 관조반야, 문자반야의 세 가지가 있다. 실상반야는 내 마음의
불조요경
원불교신문
1969.12.01 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