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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립학교의 이념구현에 노력하고 있는 해룡중학교(교장 권재홍)는 하루 일과의 시작인 직원조회에서부터 교단 의식에 의해 진행, 동교를 찾는 부형들의 마음을 한결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 현재 18명의 교직원 중에는 다른 종교를 가진 교사들도 있지만 다함께 합장 심고하고 교전봉독을 한 다음 본 업무에 들어간다. 교직원들은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업무를 하니까 더욱 단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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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53년 선교소로 발족, 교세를 확장해 온 금구교당(교무 한인성)은 시종근씨가 부지 3백평을 희사함을 계기로 교당신축위원회를 조직, 10월부터 기초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추진위원장은 장현상, 부위원장 박연종, 송영수, 총무위원 문향수, 재무위원 김양균. 한편 교도들의 합력으로 전화도 가설했다. 번호는 금구48번.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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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군 소재 선유도, 무녀도 등 섬 어린이들 2백 4명이 9월 6일, 총부를 방문했다. 이리시 교육청 초청으로 이리에 온 섬 어린이들은 기념관에서 장응철 총무과장으로부터 원불교에 대한 소개를 들은 다음 성탑 참배와 영모전 등을 돌아봤다.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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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9월 16~21일)의 서울 나들이를 나온 홍도 신흥초등학교 5 ㆍ 6학년 28명이 9월 18일 서울교당에 들러 뜨거운 환영과 함께 봉공회 어머니들이 마련한 점심공양을 들었다. 초원관광회사와 문창초등의 초청, 기아산업과 서울교당 청년회 후원으로 서울나들이를 하게 된 이들은 23명이 처음 육지 구경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김주원(원불교 서울어린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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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8월 3~11까지 전북 김제군 봉남면 신호리 2구에 위치한 마을 공회당의 복구 작업으로 김종기 면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이현도 봉황교무는 지난 해 6월, 불에 탔으나 도괴되지 아니한 동공회당을 방치, 마을의 미관을 해치는 것을 보고 수리하기로 결심, 타들어 가던 기둥과 상량 등의 숯검정을 벗겨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 누구의 협조도 없이 5일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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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출판 서둘러 동료맹인의 심안 밝혀주겠다 원불교 사직맹학생회원 국립맹학교생들은 교전 ㆍ 성가를 점역한 데 이어(본보 6월 25일자 3면 보도) 이번에는 스스로 정전 ㆍ 성가를 합본출판, 맹인동료들의 심안을 밝히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주위를 감동시키고 있다. 『법신불 사은이시여.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은 가슴이 두근거리옵니다… 이 정전이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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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남쪽 문을 나서면 미국 히피의 성지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리만큼 이상한 차림의 많은 젊은 남녀들이 길바닥에 깔려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대학생인 줄 알았으나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고 이를테면 그들은 대학생을 상대로 장사도 하고 자기네 생각을 선전도 하고 때로는 그 틈에 끼어 혁명사상을 고취시키기도 하려는 여러 부류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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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1973.09.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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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감초 집단재배에 성공, 정부의 뒷받침으로 농촌 소득 증대 특별사업으로까지 이끌어 올린 이광중(48, 이리시 동산동, 풍림농원대표, 본명 순철)씨를 찾았다. 전북농조 농무과장으로 근무 중인 이씨는 원기44년 최휘일씨 염원으로 입교, 초대 동이리지부장을 역임하면서 교당 신축 등 창립주로서의 큰일을 해냈다. 『11년 전, 외국을 다녀온 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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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농원 이순철씨
1973.09.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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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과정을 더욱 검토하고 수학 중 성적을 반영시킬 수도5급 교역자의 자격요건 마련, 교수내용 출제방향 일치토록교양과목도 다양하고 광범하게 출제했으면 5급 교역자 자격검정교시에 대한 논의가 9월 15일 교정원 기획위원회에서 논의되었다. 「교역자 고시에 대한 문제� 뮌繭� 제목으로 기획 상황실에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주로 제10회 자격검정고시를 앞두고 고시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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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3.09.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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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호 아래에는 「선친 이법준 선생을 위하여 선원건축에 공덕을 심은 이철원, 김명환 내외에게 대산종법사 치하하사 친필을 내리어 이를 만대에 기념코자 여기 새기다」라는 명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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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3.09.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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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38년에 고등선원으로 개원, 대산종법사 - ‘인농(人農)’ 법문내려이철원, 김명환 내외의 원력으로 신축원대와 더불어 교역자 양성 쌍벽 이루고교단의 정예 1백40명 배출, 연구실설은 아직도 불충분교단 만대의 기초가 될 땅일본의 통치가 계속되고 있던 원기24년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대종사 제자들과 더불어 이리 동산동 신사터에 오르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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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3.09.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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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교화추진위원회 창립총회가 9월 9일 총부에서 창립, 회장에 이광정 교무부장, 부회장에 나도국(원대부속실근무, 예비역장교)씨, 총무에 김성관(원대대학원, 예비역장교)씨를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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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3.09.2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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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원불교 교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여기 손쉽게 보낼 수 있는 신보보내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1인1구좌씩 정성은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의 기관, 선생님의 교당에서도 이 대열에 앞장서 주시지 않겠습니까.◇ 참가요령▶1구좌 5백원(1부 1년분) 각 교당 교무님을 통하거나 직접 본사 업무국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특별히 보낼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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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3.09.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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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초등학교마다 운동회가 열린다. 어느 초등학교 운동회나 어머니들의 경주가 있다. 운동장가에는 청군 ㆍ 백군으로 갈라선 아동들이 소리 지르며 응원에 열을 올린다. 경주는 시작된다. 운동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머니들이 반칙을 하기 때문이다. 서로 앞을 못 달리게 치마폭을 잡아당기는가 하면, 트랙을 따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으로 가로질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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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3.09.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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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茂陀圓 전공덕해 정사의 종재가 9월 21일 중앙총부기념관에서 엄수되었다. 중앙교의회 문동현 의장의 부인인 선생은 동래교당 창립요인으로 교당발전과 육영사업으로 일생을 살아왔다. 법위는 正式法强降魔位, 사업성적 正一等으로 元성적 正一等. 이날 종재에는 유가족과 친가, 강습 중인 교역자와 교도 등 1천여 명이 참석, 선생의 명복을 빌었다. 문한규 박사(고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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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3.09.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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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선원의 본관 낙성 봉불식이 9월 21일 교단의 원로와 교역자, 내빈, 교도 등 8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오후 3시, 은은한 주악과 함께 개식, 안이정 원장은 『오늘의 이 감격을 영원히 간직, 출가재가 동지들의 기대와 성원에 어긋나지 않도록 교단의 인재양성 기관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2층, 연건평 2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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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교당 봉불식이 9월 17일 김근수 교정원장과 형산법사를 비롯 인근 교당 교무 및 지부장 등 3백50여명의 교도와 기관장 및 유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김 교정 원장은 『신불에 바탕 해서 봉불을 하여 다 같이 성불하자』고 설법했다. 이날 식전에서는 새 교당 건축에 공로가 지대한 이허장 지부장에게 종법사표창이 있었으며 오철환 군산지부장과 최병무 통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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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훈련, 서로서로 훈련」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제20회 추계교역자훈련 결제식이 9월 18일 총부기념관에서 있었다. 이광정 교무부장은 이날 개식사를 통해 「현대는 훈련의 시대」라고 전제, 『효율적인 교화는 교역자의 효과적인 훈련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수 교정원장은 훈사에서 『훈련의 목적은 완전무결한 道權을 얻는 데 있다.』고 말하고 心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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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성지가 새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되어가고 있다. 9월 15일 영산원에서는 성지인 길용리 지역개발을 위한 모임이 있었다. 이재호 영광군수와 황병조 경찰서장이 함께 주재한 이 회의는 지금 공사가 진행 중에 있는 전기공사와 전화공사는 今秋 내로 완공토록 할 것을 다짐하였고, 장산리 ~ 길용리 ~ 천정리를 잇는 순환도로가 지역개발을 휘한 동맥이 될 것이라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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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긴급수위단회가 9월 18일 오전 9시 종법원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대산종법사는 개회사를 통해 영산성지개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성지사업에 교단의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교정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서울기념관의 일도 이제 차차 새로운 진척이 되어가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교단의 중흥의 역사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고 하였다. 특히 서울에 있어서
교화
원불교신문
1973.09.25 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