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천교당에서 일반법회에 나가며 청년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일반법회에 참석해 좋은 법문을 듣고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나는 마음에 안정을 얻었고 고향에 온 포근함과 아늑함을 느꼈다. 당시 홍천교당 교무였던 송타원 백수정 교무님은 나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내가...
나와 대산종사의 첫 만남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였다고 들었다. 대산종사와 인연을 맺어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고 송혜중 교도)였다. 아버지는 대산종사를 처음 뵌 순간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독실한 제자가 됐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온 가족이...
내가 처음으로 대산종사를 뵌 것은 출가 서원을 막 세우고 근무지로 가던 도중 원평에서였다. 김덕진 추천교무의 근무지인 대구로 나를 데려다 주는 과정에서 대산종사가 머무르고 계셨던 원평교당에 들러 인사를 하게 해 주셨다.원평에 도착하니 마침 대산종사께서 원평교당 앞에 있...
나와 같은 범부중생을 일원대도 영겁법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대산종사. 대산종사를 처음 뵌 것은 원기46년 가을 대구교당에서였다. 대산종사는 환영 나온 여러 교도들과 일일이 악수하시고 제일 나중에 나하고 악수하시면서 "우리는 기운이 통하니까 나중에 해도 ...
나는 어린 시절 대산종사와 같은 마음의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영산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직접 법명을 친필로 써주시고 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인연을 걸어 주셨음을 알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 대산종사께서 영산을 방문하셨다. 그때 영산 대각...
원기53년 늦은 봄 오후쯤으로 기억된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총부경내를 산책하고 계시는 대산종사를 뵀다. 그때만해도 원불교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익산 시내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가끔은 총부 옆...
"천이 천말을 하고, 만이 만 말을 해도 너는 종교연합 일을 계속하거라. 지금 안 되면 10년 뒤에 될 것이고, 10년 뒤에 안 되면 100년 뒤에는 반드시 될 것이다" 원기76년 소태산대종사 탄생10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종교연합 회의를 지켜보시고...
원기81년으로 기억이 된다. 대산종사가 나에게 갑작스럽게 삭발을 시켰다. 교수 정년퇴직 2년을 앞두고 머리를 깎으라는 갑작스런 말씀을 받들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으나 나의 중요한 생활방향을 결정해 주시는 스승님이고, 퇴직 후 미국에 가라는 말씀을 받들게 되어 머리를 깎게...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먼저 스쳐 지나간다. 방학이 되면 우리 가족은 아버지 친구분들의 가족들과 함께 대산종사께서 정양하고 계신 곳으로 휴가를 떠나곤 했다. 한번은 완도에 갔을 때 일이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크게 싸움이 일어났다. "종법사님은 우리 할아버지야&q...
원기49년 여름,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계룡산 신도안에서 대산종사를 처음 뵈었다. 그해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열반하시고 나는 병으로 잠시 학교를 쉬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지금은 고인이 된 통타원 박지원 교무(이모)가 부모님을 통해 나에게 대산종사가 계시는 신도안으...
예비교무 시절 나는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한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대산종사가 계시는 왕궁 영모묘원에 가 볼 것을 권했다. 여학생들은 지원자가 많아 기간을 정해 놓고 들어갈 수 있지만 남학생은 그냥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모묘원에 간 다음날 나는 왜 남학생...
어머님과 함께 초등학교 2학년 때 중앙 총부에 성탑참배와 대산종사를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 후 고등학교 2학년 때 대산종사께 인사하자고 하여 군산교당 학생회와 전주교당 학생회가 함께 인사를 드렸다. 그때 맨 뒤에 있는데 대산종사께서 "맨 뒤에 있는 학생...
원기68년 10월 대산종사께서 원평에 계실 때 장정수 원로교무님과 백심덕 교무님을 따라 처음 대산종사를 찾아뵙게 됐다. 그 당시 장정수 교무님이 나를 대산종사께 소개하면서 지압을 잘한다 하니 "어디 한번 해봐라"고 하시어 잠깐 동안 지압을 해드렸다. ...
원남교당 청년회 시절 나는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청년회원들과 함께 향타원 박은국 종사를 모시고 지리산 천왕봉 등반을 한 적이 있다.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향타원 종사를 모시고 당시 완도 소남 훈련원에 계시는 대산종사를 찾아뵈었다. 우리가 소남 훈련원에 도착 했을 때...
좌선 10분원기60년 추운 겨울, 어느날 신도안에 요양하고 계시는 대산종사를 배알하기 위해 정토회관 교무님을 따라 나섰다.대산종사는 아주 작은 초가에 자리하고 계셨다. 예를 올리고 대산종사와 마주했지만 왠지 마음은 자꾸만 작아졌다. 대산종사께서 "순영이 새벽 ...
나는 출가 후에 돈암교당을 거쳐 원불교 청년회(원청)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했다. 그때 원청 20주년을 맞아 청년회 임원진들이 함께 대산종사를 찾아뵜다. 그때 대산종사께서 20주년 기념휘호(사진)를 직접 써서 주셨다. 오늘날에도 불멸의 원상으로 굴러가게 해주신 은혜를 잊...
신선 도인원기69년 중학교 2학년 어느날 모현교당 학생회에서 총부 성지순례를 왔다. 구 조실에 가서 대종사님 진영에 인사를 올리고 두툼하신 손을 만지며 따뜻하신 그 손길을 마음으로 느껴보았다. 이어 종법사님을 뵈러 송대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를 처음 뵀다. 15살 ...
대산종사는 교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며 자비로 살펴주셨다. 나 역시 대산종사께서 끼쳐주신 은혜를 잊을 수 없다.용신교당 부임 3일 만에 김제시 봉남면 신호리에 있는 교도들이 교당(현 봉황교당)을 내겠다며 찾아왔다. 교도들을 따라 현장에 가보니 허허벌판이었다...
나는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간사생활도 안 하고 곧바로 교학대 서원관에 들어가게 됐다. 다행히 입학동기 중에 종법실 간사를 한 주성균 교무가 있어서 그 형을 따라 틈만 나면 종법실을 찾아 다녔다. 주말이나 연휴라든지 방학 때 그리고 군입대 전의 공...
나는 두 번이나 대산종사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행운을 누렸다. 첫 번째는 군 제대 후 원불교학과 복학을 고민하던 중 대산종사를 찾아뵙게 됐다. 그 기연으로 대산종사님을 모시고 간사근무를 하게 됐다. 1년 6개월간의 간사근무는 내가 다시 복학해서 공부하는 데 든든한 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