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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비고 다북찼음이여!대종사께서 "전권이는 이목구비가 예쁜 곳도 미운 곳도 없으니 원만한 미스 불법연구회다"라며 칭찬한 새 회상 전무출신 정녀1호. 자비와 덕화가 넘치는 불보살의 인품과 법열로 충만한 설법으로 설통제일이라 불리는 공타원 조전권(空陀圓 曺專權, 1909~1976) 종사.그는 기독교 장로로 독실한 신앙을 하던 경산 조송광 선진의 4녀로 출생했다. 이런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성서를 배우며 전도사가 될 꿈을 키우며 자랐다. 그래서 기독교학교인 전주 기전여고에 입학하여 예수의 사랑으로 조선 여성을 개화 시키겠다는 꿈을 키웠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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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4.02.2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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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현장에서 봉공근면하고 검박한 생활표준과 계교심 없는 취사와 원근친소에 끌리지 않는 대인의 심법. 교단 창립의 초석이 된 팔산 김광선 대봉도와 형산 김홍철 종사로 이어진 전무출신의 가풍에 따라 무아봉공의 삶을 살다간 중타원 김대심(重陀圓 金大心, 1926~2011) 대봉도.원불교와의 지중한 인연은 출가외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17세 되던 원기28년 4월에 응산 이완철 종사의 추천과 보증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이후 유일학림 수학을 마친 후 원기34년 서원승인을 받았다.그는 총부에 오자마자 총부 공양원 생활을 했다. 구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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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4.02.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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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견성인가대종사께서 교단 최초로 견성인가를 내린 제자. 〈대종경〉 인도품, 인과품, 변의품, 성리품, 전망품 등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교단창립의 선구자요, 선각자. 대종사께서 "시비를 초월하고 희로애락에 끌리지 않는 부처"라고 극찬한 삼산 김기천(三山 金幾千, 1890~1935)종사.그는 영광군 백수면에서 출생하여 대종사의 최초 구인제자가 됐다. 7세에 한문사숙에서 공부를 시작해서 13세에 문리를 얻고, 17세 때는 훈장이 되어 학동을 가르칠 정도로 지혜가 밝았다. 대종사와는 동향으로 대각하기 전부터 안면이 있었으나, 팔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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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4.02.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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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양성에 오롯한 삶대의와 종명에 수화불피하며 교화일선을 가꾼 교화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농(人農)불사에 남다른 정열을 쏟은 교육자. 남다른 지도력과 교화력으로 교단 발전을 위해 심신을 불사른 열정적인 공도의 주인으로 공부와 사업을 병진한 주타원 윤주현(主陀圓 尹周現, 1924~2011) 종사.그는 어려서부터 간직했던 나이팅게일과 같은 간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여자 전문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접하면서 한국여성운동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다시 중앙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남원용성초등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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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4.01.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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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개척의 선구자온유하고 유덕한 자비훈풍으로 일원대도를 선양한 공도자. 평생을 교화개척과 인재양성을 위해 온통 바친 정타원 이정은(靜陀圓 李正恩, 1923~2010)종사.그는 아버지 응산 이완철 종사의 연원으로 신흥교당에서 입교했다. 언니 상타원 이태연 대봉도의 뒤를 이어 19세 되던 원기26년에 영산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원기27년 꿈에도 그리던 총부에서 사무원으로 4년간 개인내역 사무를 봤다. 이때 출가 연원인 구타원 이공주 종사의 지도로 분명한 일처리와 정확한 시간생활을 익혔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일생을 시간관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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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4.01.1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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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며 일하고, 일하며 공부하자'단아한 풍채와 잔잔한 미소, 용기보다 지혜를, 지혜보다 덕성을 갖춘 불보살. 항상 소리 나지 않게 교단의 고비마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던 주인공.'어찌 이 밥을 먹고 선을 하지 않고, 일을 게을리 하리오'를 심훈으로 삼아 '영육쌍전 이사병행'의 교법정신으로 일관한 예산 이철행(禮山 李喆行, 1928~2007) 종사.그는 원기19년 부친인 도산 이동안대봉도의 연원으로 신흥교당에서 입교했다. 17세 되던 해 원기29년 숙부인 응산 이완철종사의 연원으로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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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4.01.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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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상쾌한 바람같이억겁에 만나기 어려운 대도회상을 만난 기쁨으로 일관한 일생. 대종사의 교법은 불보살이 될 수 있는 무상대도라는 믿음으로 정진 적공한 선산 이선우(善山 李善友, 1921~2012) 대봉도.그는 17세 되던 원기21년, 어머니의 인도로 신흥교당 예회에 참석한 것이 인연이 되어 간사근무를 시작했다. 형산 김홍철 종사의 지도로 주경야독하며 배움의 갈망을 풀어갔다. 원기25년 대종사를 뵙고 곧바로 산업부원이 됐다. 이런 연유인지 일생을 주로 산업기관에 봉직하면서도 고된 일이 적공인양 살았다. 이런 중에도 진리연마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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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4.01.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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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 일선에서 헌신대종사 재세 시 귀의하여 "법명값 하라"는 대종사의 성음을 간직한 채 신심·공심·공부심으로 일관한 효타원 양혜련(曉陀圓 梁慧蓮, 1921~2003) 대봉도.그는 원기6년 김제군 원평에서 기독교 신앙을 독실하게 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교회 집사로 신앙심이 대단했다. 그의 이웃은 기독교 장로를 하다 개종한 조송광 선진의 집으로, 친척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이런 인연으로 기독교에서 원불교로 신앙을 바꿨다.아홉 살 되던 해, 박대완 선진이 원평교당에 부임하여 야학을 개설했다. 야학을 다니면서 〈취지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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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2.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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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교화의 초석일원대도의 세계화를 위해 몸으로 실천한 미주교화의 선구자. 일원의 진리를 통철해 명쾌한 설법으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한 수행자.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운심처사를 하면서도 대의명분이 분명하여 송죽처럼 살다간 원산 이제성 (元山 李濟性, 1935~2009) 종사.그는 어머니의 독실한 신앙 샐활로 어려서부터 교당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지내다 원기32년 누나인 부타원 이영화교무의 연원으로 입교했다.부유한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지냈으나 6·25로 집안이 피해를 입자 전주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했다. 이 무렵 아버지가 선물한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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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2.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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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 중흥의 주인공대장부 같은 넓은 도량과 탁월한 역량을 갖춘 대불사의 법기. 천부적인 안목과 열정으로 혁신적인 교화방법을 시도하며 가는 곳마다 교화의 새바람을 일으킨 교화중흥의 주인공. 인과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생사불이(生死不二)의 해탈력으로 거침없고 걸림 없는 무애도인으로 살다간 성타원 이성신(聖陀圓 李聖信, 1922~2012)종사.그는 도산 이동안대봉도의 5남 4녀 중 4녀로 태어났다. 교단 초창기부터 이미 아버지는 물론 집안의 어른들이 출가하여 교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원불교와 인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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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2.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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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적 정열'정열적인 구도자(求道者). 한결같은 애지자(愛知者). 희생적 정열을 원불교학 체계 정립에 바쳤던 여산 류기현(如山 柳基現, 호적명 병덕, 1930∼2007)종사.그는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나 광복 후 늦은 나이에 진학해 동급생 한정원 박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조우는 훗날 그를 전무출신으로, 한정석, 송천은 박사와 함께 원불교학계의 4박사로 자리매김 하게 되는 기연이 된다. 특히 '일원상의 진리'에 크게 발심했던 그는 정산종사께 기현(基現)이라는 법명을 받고, 대산종사의 추천으로 전무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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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1.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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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불보살의 행적처하는 곳이 바로 불지라는 신념으로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킨 삶. 항상 평범하여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매사에 법도를 지켜 실행으로 가르친 삶. 누구보다도 이 회상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는 겸양하는 마음으로 열반하는 그 날까지 보은일념으로 살다간 윤타원 이정만(允陀圓 李正滿, 1914~1987) 대봉도.군자는 '반윤월(半輪月)과 반개화(半開花)를 더 사랑 한다'했다. 대산종사는 그를 가르켜 "일생동안 웃음을 담은 무언의 수도인으로 중인에게 항상 평안을 주고, 아주 조용하게 숨어서 수도생활을 하며, 순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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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1.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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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년의 포도(抱道)'로 정진인격을 양성하고 공익사업을 하며 하늘과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 인간이 행해야할 충·효·열을 실천하여 세상의 거울이 되는 삶.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거래에 담박하여 해탈의 심경으로 살아가는 삶을 위해 정진 적공한 모산 장성진(母山 張聖鎭, 1924~ 2010) 대봉도.그는 천성이 인자하고 묻고 배우기를 즐겨해 지혜가 밝았다. 어느 날 족보를 보니 집안의 시조가 국사요, 스승임을 알고 자신도 큰 스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연을 기다렸다. 이런 연유인가. 원기25년 16세시에 강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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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1.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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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교당에서 공도헌신평생을 초창교당에서 공도헌신하며 인간적인 인정미와 책임감으로 전무출신의 사명을 다한 상타원 이태연(常陀圓 李泰然, 1914~1963) 대봉도.그는 응산 이완철 종사의 장녀로 태어났다. 온순하고 정직하며 인자한 성품으로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많았다. 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평범한 가정생활 보다는 공도헌신하며 공부할 수 있는 전무출신의 길을 동경했다.원기16년 18세 되던 해에 부친의 인도로 입교와 동시에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학비 마련을 위해 이리 택전 고무공장과 전주 제사공장에서 4년간을 일하여 학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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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1.0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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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밀행·인욕 여래법통과 종통을 호위한 제자여래. 흔적 없는 보시를 베푼 밀행여래. 일생을 자력에 바탕 해 인욕정진한 인욕여래로 우리 곁을 다녀 간 상산 박장식(常山 朴將植,1911~2011) 종사.그의 조부와 부친은 문과에 급제해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이런 유수한 집안에서 성장하며 경성제일보통학교와 경성법학전문학교에서 신학문을 익힌 엘리트였다. 우리 회상과의 인연은 비를 피해 길가의 주막집에서 만난 일타원 박사시화 대봉도가 남원의 유수한 집안을 우리 회상으로 인도 하려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 끝에 어머니(정형섭)가 입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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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0.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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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 연꽃"큰 도인이 가셨다. 육타원과 대등한 실력가이시다. 원근친소를 떠나 항상 대의를 세웠고, 진인으로 일생을 일관 하셨다. 장하고 거룩한 일생이다" 대산종사께서 근타원 박진오(根陀圓 朴眞悟, 1902~1973)종사 영전에 내린 법문이다.그는 천성이 근실하고 총명하여 무슨 일이나 처사가 분명하고 글재주가 뛰어났다. 16세 되던 해 경성에 사는 의학도인 보성오씨 가문으로 출가했다. 그러나 가정사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현을 만나 참다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이때 이미 불법연구회에 입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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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0.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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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여중·고 기반 확립주세불이 새 회상을 열고 전신전수(全信全受) 전탈전여(全奪全與)할 법연을 찾을 때 혈심으로 호법봉도한 그 사람. 이소성대의 정신으로 원여중·고의 기반을 확고히 한 천산 이건춘(天山 李建春, 1920~1989) 대봉도.그는 농촌의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이건양씨의 연원으로 입교를 하고 14세 되던 해에 영산선원에 입선했다. 2년간 수학을 마친 후 서무부 서기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 때 시대를 향도해갈 교육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당시 배재고에 재학 중인 숭산 박광전종사에게 교과서와 참고서등을 부탁해 탐독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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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0.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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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초창교화 현장에서늘 넉넉하고 유연한 가운데 주밀과 정성이 함축된 공부인. 넓은 도량과 훈훈한 취사로 교화·복지 현장에서 법풍을 불린 흠타원 정윤재(欽陀圓 鄭潤才, 1922~2007)대봉도.그는 영광의 농촌 마을에서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당시만 해도 남자를 우선시 하는 교육풍토가 팽배했다.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광주로 나가 주경야독을 하려했다. 그러나 완고한 할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러던 중 백모님을 따라 영산을 가게 됐다.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원생들을 보고 부러움이 가득했다."광주로 보내주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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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10.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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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심의 대명사우리 회상 공심의 대명사. 춘풍화기로 가득한 용모에 극진한 인정과 의리, 매사에 중심과 대의를 잃지 않는 처사로 모두의 신망과 존경을 받으며 공도에 헌신한 공산 송혜환(公山 宋慧煥, 1905~1956) 대봉도.그는 성품이 침착하면서도 백절불굴의 기개를 가진 실천력의 소유자였다. 마령보통학교를 마치고 한학과 농업전수학원 등에서 학습을 하며 자랐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빈부귀천과 선악우열이 생기는가', '차별현상을 조정해서 원만 평등한 안락한 생활은 할 수 없는가'등에 대한 의문을 가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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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9.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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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값 해야 한다"대종사께서 "이름 값 하라"는 말씀에 일직심으로 일관하며 따뜻한 성품으로 인정과 사랑을 베푼 삶. 평생을 공명따라 호오의 가림 없이 교화현장에서 제도 사업을 한 염타원 박영권(念陀圓 朴永權, 1918~2003) 대봉도.구인선진으로 불법연구회에 입참한 일산 이재철 대봉도가 그의 외숙이다. 외숙의 인도로 대종사를 친견하고 '영권'이란 법명을 직접 받았다. 이러한 인연으로 영산을 오가며 학원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봤다. 모두가 새롭고 좋아 보였지만 결혼을 안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껴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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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9.13 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