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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최초법어! 이는 하늘이 열리고, 땅이 춤추며, 금수초목을 비롯한 만물이 환희에 휩싸이는 성자의 첫 포효다. 성불제중·제생의세를 향한 법신불의 사자(使者)로 나온 성현의 첫 말씀이기 때문이다.제자들을 앞에 둔 석존의 초전법륜, 예수의 산상수훈이 그랬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있지만, 진리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불불이 계세하고, 성성이 상전하는, 진리의 연쇄반응 직전 빅뱅의 장이다.이 최초법어에는 석존의 생생한 초기설법인 〈숫타니파타(경집)〉처럼 날것과 같은 인간 삶에 기반한 진리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6.0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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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솔성요론 13조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 14조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요"는 원불교의 정의(正義) 실천론이다. 정의는 법(Dharma), 즉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이를 깨달은 성현의 말씀이다. 무념·무상·무착의 청정한 자성이 정의의 근원이다. 그 자성은 이 세계를 무한히 창조하는 일심이다.또한 눈을 뜨고 보면, 모든 존재는 진리의 화현이다. 즉 법신불 일원상의 내역은 사은이며, 사은의 내역은 우주만유로서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부처 아님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5.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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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솔성요론의 제1조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 제2조 "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을 것이요"라는 가르침은 진리를 대하는 우리의 각오를 더욱 강하고 새롭게 한다.내가 진리를 깨치지 않는 한, 성현의 말씀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바닷물의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그 맛을 느끼게 할 수 없다. 스스로 바다를 찾아가서 직접 맛보지 않는 한 그 맛을 영원히 알 수 없다.그럼에도 성현의 말씀인 법(=진리적 언어)에 의지해 구도의 길로 나아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5.1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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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솔성이라는 말은 〈중용〉의 첫머리에 나온다. 그 유명한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는 구절에 포함되어 있다. 은 천도를 근거로 하여 인도를 세운, 유교의 핵심철학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즉 하늘의 본성이 만물에 부여된 것이 본성이고, 이 하늘마음을 잘 발달시키는 것이 도이며, 그 도를 구현해가는 수행이 바로 본받음이라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솔성의 도는 이러한 〈중용〉의 깊은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5.0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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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법마상전은 법과 마가 서로 싸운다는 뜻이다. 법은 진리나 불법을 말한다. 모든 존재가 의지하는 궁극적인 세계가 진리이며,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진리를 설하거나 중생구제를 위한 가르침이 불법이다.마는 마왕마순, 천마, 악마로 번역됐으며, 원래의 의미는 죽음, 죽임, 장애 등을 뜻한다. 수행자의 발심과 서원을 꺾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파괴하며, 모든 의지를 상실하게 하여 마침내 죽음의 수레바퀴인 윤회에 빠지게 한다.법과 마가 싸우는 모습은 석존의 성도 과정에서 잘 보여준다. 탄생상, 고행상, 항마상, 설법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5.0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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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믿음은 진실한 것, 의심하지 않는 것, 귀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전에서 '범부와 부처가 동일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말씀을 내면화하고, 의문을 일으키지 않으며, 굳게 의지하여 올곧은 마음으로 수행 정진해 가는 것이다.이러한 믿음이 일관된 사람은 반드시 불지(佛地)에 오르게 된다. 극락왕생을 목표로 하는 정토문의 믿음은 더욱 선명하다. 법장비구가 세운, '자신이 부처가 되었을 때, 중생들이 그 이름을 불러 부처가 된 자신이 있는 불국토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4.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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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보통급은 무엇인가. 입문의 단계다. 사찰의 입구에는 일주문이 있다. 이것은 성과 속의 경계다. 마음을 씻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기둥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마음의 근본 형태인 일심으로 불공과 수행을 하라는 의미다.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삶은 성화(聖化)된다.일주문을 마음에 세움으로써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길을 걷거나 잠을 자거나 일을 하거나 나는 일주문 안에 있게 된다.기독교 입문에서 세례를 통해 자신의 죄를 씻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도 같다. 나의 의식은 완전히 새로워진 것이다.보통급 10계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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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4.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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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보통급·특신급·법마상전급의 30계문은 불문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든지 받아 지니고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재가·출가의 화합교단을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계의 산스크리트어 원어인 실라는 '훈련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일상 속에서 불법을 구현하는 교법의 정신과 상통한다.계를 밟아가는 것은 진리·양심·대중에게 자신을 고백하는 것이며, 청정한 자성을 운전함으로써 부처로 살아갈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악을 멈춤으로써 역으로 선을 행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또한 예수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4.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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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전〉 수행편 계문의 정신적 원류는 대승불교의 보살계다. 보살은 자신만을 위한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고 뭇 중생들과 함께 깨달음을 지향하며, 그들의 고통을 짊어지고 자비를 실천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불자를 말한다.이러한 보살에게 수여하는 계가 보살계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계를 받기 위해서는 부처님 재세 시만큼 철저한 수계법(受戒法)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계를 받는 자는 마음의 각오가 확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사들이 계를 중시한 것은, 한 번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께 서원하고 받은 계의 무게가 우주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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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4.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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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계는 석존이 외도가 행한 비행(非行)을 보며, 제자들에게 경계하도록 한 것에서 출발한다. 율은 교단이 구성되고 발전함에 따라 함께 사는 승려들을 규제하기 위한 규칙을 말한다. 계가 자율적이라면 율은 타율적인 것이다. 불법은 계정혜 삼학의 공부로 귀결된다. 계는 불법을 완전하게 구현하는 알파요 오메가다. 따라서 계는 재·출가자가 입문하는 형식과도 관계가 깊다.재가신도가 되기 위해서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승려로부터 5계를 받는다. 매월 포살일(布薩日, 승려들이 모여 계를 설하고 참회하는 날)에는 8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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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3.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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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불공법은 현대에 들어와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이것이 탄생한 것은 유래가 없는 인간의 고통이 극에 달한 20세기다.사회학자 베버는 일찍이 근대문명 하에서 인간은 삶의 의미와 자유를 상실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성이 도구화됨에 따라 조직과 형식 속에서 인간은 자율성을 잃고 파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과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연의 신비가 깨지고 욕망이 극대화되고 있으며, 증오를 먹는 전쟁과 같은 대량살상으로 인류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동일성의 욕망에서 찾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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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3.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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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사실 불상에 불공하는 것과 〈정전〉에서 설하는 불공하는 법의 근본 의미는 같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불상의 재료인 나무·동·철·진흙 등에 경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만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행위가 된다. 여기에 부처님의 근본 뜻을 잘 받들어 행하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그것은 최상의 불공이 된다. 불공이 불법의 핵심 가르침임은 그 역사가 증명한다. 초기불교에서는 당연히 부처는 오직 한 분뿐이다. 불교는 역사상의 부처님의 출현에 의해 발생한 종교인 것이다. 부처님 열반 후 400년 동안 부파불교의 시대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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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3.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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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불공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다. 공양은 불법승 삼보, 부모, 스승, 망자 전에 올리는 물품 또는 행위를 말한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던 초기교단에서는 의복, 음식, 와구(혹은 처소), 탕약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사공양(四事供養, )이라고 했다. 불교가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공양 문화로 정착됐다. 또한 각종 경전에서는 공양을 단순히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적 세계로까지 확대하여 설하고 있다.예를 들면, 2종, 3종, 4종, 6법공양, 나아가 10종 공양을 설하기도 한다.2종공양은 이사(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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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2.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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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불공은 부처님께 향·꽃·등·차·과일 등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킨 성자의 열반 후, 후인들이 그를 존중하는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제사처럼 소중한 물품을 올리는 이 행위에 어느 사이 개인의 소원이 가미됐다. 죽음을 비롯해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상황을 돌파할 수 있도록 간절히 비는 것 또한 종교적으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그런데 이렇게 불공의 대상인 불상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았다. 불멸 후, 제자들은 부처님이 너무나 위대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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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2.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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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자신만의 기도문을 가지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다. 아침저녁 심고를 올릴 때,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 뜻하지 않은 위험이 닥칠 때, 심신의 아픔에 처해 있을 때, 큰 업장이 밀려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기도는 힘이 된다. 또한 주위에 모순과 부조리가 판을 칠 때,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할 수 없을 때, 모든 이들의 행복과 이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기원할 때, 모든 생명체의 상생의 삶을 기원하고 싶을 때, 온 몸과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법신불사은님의 무한한 위력을 반드시 얻을 것이다. 그리고 삶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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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2.1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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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밀레의 에서 보듯이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기도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에서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진다. 하늘의 음성인 아잔은 땅과 하늘을 진동시키며 저절로 무릎을 꿇게 한다. 동서의 성자들은 기도로써 하늘과 대화했다. 믿음의 끝은 깨달음이며, 깨달음의 처음은 기도다. 수행이 기도며, 기도가 수행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개혁을 이끈 루터는 "제화공이 신을 만들고, 재단사가 옷을 만드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직업은 기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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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1.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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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업에 대한 생각은 인도에서 발생했다. 업의 산스크리트 원어는 카르만(karman)이다. 조작(造作)이라는 뜻이다. 의지에 의한 행위로 나타난 심신의 모든 활동을 말한다. 일찍이 인간은 어떤 행위 이면에 동기가 있으며, 운명은 이 동기에 따른 객관적인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 사상을 발전시킨 인도에서는 신의 은총과 구원을 바라는 종교적 행위인 제사와 같은 의식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이 업이 윤회의식과 결합하여 깨달음에 의한 해탈의 윤리가 됐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업과 윤회를 곡식의 낱알이 익어 떨어져 땅에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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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1.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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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죄업의 근본인 탐진치는 인간 개개인은 물론 인류문명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해독이다. 참회를 할 때도 이 삼독심을 제거하지 않는 한, 업의 굴레는 그대로 굴러가게 된다. 결국 참회의 궁극은 이 삼독심을 제거하여 참된 열반과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데에 있다. 인간의 한계는 곧 현대문명의 한계다. 인간 스스로 마음병을 성찰하지 않음으로써 수많은 사회적 질병과 고통을 낳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인류 전체는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여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계문에서도 법마상전급의 마지막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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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1.1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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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한 때 들렀던 해외 어느 교당의 주임교무가 밤마다 오체투지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스스로를 완전히 비우고, 모든 것을 법신불에게 바치는 행위가 바로 오체투지의 근본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참과 이참이 일치가 된 행위가 이 오체투지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108배를 올리는 것도 같은 의미다. 108은 번뇌를 말한다. 번뇌인 한 생각으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 사참을 통해 번뇌로 인한 죄업을 뉘우치는 일, 이참을 통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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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1.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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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참회는 불교용어다. 그 연원은 석가모니불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매월 초하루나 보름이면 승가의 대중이 모여 포살(布薩, Posadha)을 진행했다. 전 대중 앞에서 장로가 먼저 포살의 의미를 설명하고, 오계, 십계, 250계의 조목 하나하나에 대해 청정한가를 묻는다. 세 번을 묻는 동안 그 계율을 어긴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는 의미에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렸다. 마지막엔 대중에게 다시 묻고 함께 참회의식을 가졌다. 이는 허물을 고백한 사람에 대한 배려였다.또 하나 자자(自恣, Pravaran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1.02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