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법을 설했다. 우바리존자가 부처님이 미륵에게 수기를 준 것을 기억하고 “아직 범부인 미륵이 목숨을 마치면 어디에서 태어납니까?”하고 묻는다. 부처님은 “미륵이 도솔천에 태어나 일생보처보살로 머무를 것이고, 5백만억의 천자들이 공양할 것이며 그들이 서원을 일으켜 궁전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도솔천궁의 장엄에 대해 설한다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 있는 원불교 용암교당은 경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긴 교당이다. 대종사 재세시인 1941년에 건립됐다. 교당 창건의 배경을 알지 못했을 때엔 용암리의 ‘용(龍)’자에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대종사 탄생지인 길용리에 용(龍)자가 나타나고 익산성지의 신용리에 용(龍)자가 나오므로, 용암교당의 창건에도 지명의 용(龍
거닐기만 해도 절로 생기는 기도심산 구비구비를 돌며 ‘이젠 영영 저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렇게 밟고 지나온 길.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숨이 턱턱 막히는지 장군말랭이(배내고개)에선 차도 잠시 멈추어 선다. 어떤 경계선을 넘은 듯 자못 마음이 심상해질 때, 첩첩이 쌓인 봉우리들이 저 멀리서 속내를 감추고 빙긋이 웃는다. 그리고 다시 ‘빨리 오지 않고
금산사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어 TV사극의 배경이 된 덕분에 참배객이 많아졌다는 말이 실감난다. 소태산 대종사는 영산에서 법인성사를 나툰 후 정산종사를 변산 월명암으로 보내고 당신은 팔산 김광선 대봉도와 함께 미륵회상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곳을 찾게 되었다. 13척의 미륵 대불을 모신 미륵전 뒤 송대에 머무르며 짚신을 삼는 등
▲ 죽림정사 중앙에 있는 연못 보드가야에서 라즈기르의 왕사성과 날란다대학을 하루에 다녀오기로 했다. 택시로 3시간이 걸리는 데 그 길이 말이 아니다. 오래 되어 움푹 움푹 패인 아스팔트 도로 때문에 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어찌나 뛰었던지 다음날 옆구리가 결리는 통증이 생겼을 정도다. 만년의 부처님께서 주재하셨던 영취산에는 1인씩 앉아서 탈수 있는 케이
서울의 도심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후원에는 연못을 낀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향원정(香遠亭)이다. 1867년 고종 10년에 건청궁(乾淸宮)을 지을 때 그 남쪽에 못을 파고 중앙에 섬을 만들어 그곳에 정자를 지어 향원정이라 하고 나무로 구름다리를 걸어 취향교(醉香橋)라 했다.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인공적인 건조물을 잘 조화시켜 우리 고유의 정취가
▲ 햇빛을 받아 우유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타즈마할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 이곳은 타지마할과 아그라 성(城)이 있어서 유명한 곳이다. 타지마할은 건축물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거기에 얽힌 아름다운 로맨스가 사뭇 감동적이다. 타지마할은 궁전이 아니라 무덤이다. 이슬람문명을 상징하는 돔(dome)들과 긴 굴뚝같은 첨탑 전체가 흰 대리석을 사용하여 그윽한 우
▲ 카쥬라호 힌두사원의 미투나 조각상 카쥬라호는 인도의 특별함에 지쳐있는 심신을 쉴 수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 분위기여서 마음이 편안했다. 특히 이곳에는 총각식당과 아씨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있었는데 한국인들이 한국음식 요리법을 알려주어 김치·볶음밥·된장찌게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인도사람들의 주식에 탈리라는 것이 있다.
▲ 부처님의 전생담 조각을 간직한 싼치 대탑의 제1스투파 아우랑가바드에서 4일만에 국내에 있는 가족과 처음으로 통화를 하였다. 테러가 빈발하는 카슈미르와는 먼거리라고 했더니 가족들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국제통화를 할 수 있는 공중전화가 마을마다 많이 보급되어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인도에는 아직도 카스트라는 계급제도가 남아있다. 맨 위 계급인 브라만은
20대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강줄기를 따라 흘러가 보는 것. 낙동강 다음으로 한강을 보았고 오랜 후에 섬진강을 보았다. 꿈결엔 듯 대동강 물도 만져보았다. 백마강은 지척에 두고 세 해를 살았다. 그러나 그 어느 강줄기도 따라서 흘러가 보지는 못하였다. 아마 이 생에는 못 이룰 모양이다. 내가 강줄기를 따라서 흘러가고 싶듯이 누구나 훌
▲ 최경도 교무 휴양을 시작하면서 막연히 그 동안 동경해 오던 인도에 가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어 정각을 이루시고 교화하신 후 입멸하신 땅을 순례하는 것과 인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평소 명상에 대한 관심, 그리고 휴양할 때가 아니면 1달이라는 장기간의 여행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기에 용기를 내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