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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그리운 선진선견지명의 진보주의자요, 용기 있는 개혁가이며, 대종사를 신봉하며 교단을 사랑한 아까운 천재. 묵산 박창기(默山 朴昌基, 1917~1950) 대봉도.그는 어려서부터 재질이 매우 명민했다. 경성부속국민학교를 6년간 우등으로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3학년이 되어 더 배울게 없다며 돌연 학교를 그만 뒀다. 원기17년 모친인 구타원 이공주 종사를 따라 출가를 해 대종사와 은자결의를 하고 11년간 시봉했다.이때 총부인근의 전무출신 자녀를 중심으로 '자공회(子供會)'라는 어린이회를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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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9.0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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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 없는 심법으로삼세를 오가며 부처님 회상을 떠나지 않고 제생의세의 서원으로 교단 창립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 숙타원 안지숙(淑陀圓 安智淑,1916~1991)대봉도.9남매 중 3녀로 출생한 그는 가정이 화목하고 우애와 효성이 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어려서는 한문을 수학하다 9세에 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다.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20세 무렵 상경했다. 여성계에서 큰일을 해볼 계획으로 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병마가 찾아와 앞길을 가로 막았다.낙망한 나머지 자신의 고향인 정읍 내장사에서 여생을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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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8.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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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살의 삶해심(害心)이 없는 덕인으로 교단 대내외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한 숨은 보살. 농사일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총부 농사를 오랫동안 전담하며 대중들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 달산 윤치성(達山 尹致聖, 1922~1993) 대봉도.그는 삼남 일대에서 명문학교로 이름났던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평생을 산업기관과 자선기관을 천직으로 알고 보은봉공을 했다. 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공부가 퇴보할까 염려가 되어 늘 마음대조를 했다. '내가 경계를 당하여 참는 공부를 했는가. 경제문제에 있어 공정하게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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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8.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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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신성인의 정신으로보화원장으로 한남동에서 17년을 원생들과 고락을 같이 한 고아들의 어머니. 말년을 교화의 불모지인 강원도 춘천·원주·속초 등지에서 개척교화를 하며 헌신봉공한 순교자. 최후의 일각까지 일이관지(一以貫之)하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살다간 은타원 조일관(恩陀圓 曺一貫, 1934~1981) 대봉도.기독교 장로였던 아버지(경산 조송광)가 대종사의 제자가 되자, 마귀에 빠진 아버지를 건지러 간다던 언니(공타원 조전권)마저 제자가 됐다. 이렇게 집안 분위기가 바뀌자 그도 언니 뒤를 따르기로 작정을 했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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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8.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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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생의세의 한 길'심화(心和)·기화(氣和)·인화(人和)의 생활신조로 일관한 공부인. 일생을 교단의 산업전선에서 영육쌍전, 이사병행의 정신을 구현하며 교단의 경제적 자립을 튼튼히 한 덕산 조희석(德山 趙희錫, 1910~1978) 대봉도.그는 42년의 교역생활을 사업계에서 활약했다. 교단의 창립초기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의 대표적 산업기관은 보화당과 수계농원이었다. 보화당은 원기19년 대종사가 참관한 가운데 도산 이동안 선진과 공산 송혜환 선진의 발의로 설립됐다. 최초 운영 책임은 일산 이재철 선진이 맡았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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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8.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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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향내음으로밀행여래, 자력여래, 인욕여래, 제자여래의 삶으로 후진들의 사표가 된 상산 박장식 종사는 3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 삼남매가 출가를 했다. 특히 장녀 제현은 교단의 주요요직에서 기쁘게 헌신 하던 중 갑작스런 발병으로 순직했다. 모두가 황망한 마음으로 그를 보내며 교단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으로 아쉬워했다.항상 대의를 세우고, 선공후사의 모범을 보인 운심처사. 금욕난행으로 신명을 다한 교단에 꼭 필요한 주인의 삶. 열반의 순간까지 오직 공(公)을 위한 책임을 다하며 35년을 헌신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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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7.2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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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하늘의 법등아까운 사람! 무정한 사람! 진리의 뜻으로 오가는 길이라지만 얼마나 허망했기에 나온 탄식 아닌 탄식인가. 38세의 아까운 나이에 열반한 각산 신도형(覺山 辛道亨, 1936~1973) 종사.교역쟈의 자질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수려한 용모와 바른 신성. 지적 능력을 두루 갖춘 지도자로서 자질. 좌우 동지와 더뷸어 하는 촉됨 없는 인격. 활달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 무엇하나 빠짐없는 심심상연(心心相連)한 대종사님의 일등 제자였다.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신태인교당에서 공타원 조전권 종사의 교리강습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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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7.1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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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한 송이고운 미소 속에 감춰진 강한 의지. 아기자기한 정속에 깃든 대범한 운심처사. 투철한 사명감과 단정하고 우아한 태도. 복과 혜, 지와 덕을 겸비해 선망의 대상이 된 원타원 송원철(圓陀圓 宋圓徹, 1926 ~1977) 대봉도.그의 생은 온통 베풀고 간 일생이었다. 수학시절부터 교단에 폐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경제적 혜택을 물리치고 스스로 자취생활을 하면서 다른 동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했다. 부모에게 유산을 물려받아 비교적 풍족하게 살 수 있었지만 자신을 위하는 데는 피가 나게 아꼈다. 외모만 보면 화려한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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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7.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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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주신 보배대종사의 호념과 정산·주산종사의 훈증으로 선(禪)·교(敎)를 겸전한 공부인. 달마도를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시문을 남긴 예(藝)· 문(文)에 능한 수도인. "수도인은 육신의 키보다 정신의 키가 커야 한다"는 대종사의 말씀을 하루도 잊지 않고 정진 적공한 고산 이운권(高山 李雲捲, 1914~1990)종사.그는 5세부터 조부로부터 〈천자문〉 〈통감〉 〈명심보감〉 등을 익혔다. 영광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서당을 개설해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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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7.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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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기(無邪氣)의 자비보살"무사기(無邪氣)의 정기(正氣)로 뭉친 도인, 관세음보살과 같은 자비보살이 우리 회상에 왔다"며 대종사께서 기뻐하신 항타원 이경순(恒陀圓 李敬順, 1915~1978)종사. 대종사의 기쁨 그대로 그는 진리와 법과 회상과 스승과 하나가 되어 법맥과 신맥을 이으며 법풍을 불렸다."천하에 제일 큰 것이 무어냐."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제일 크다 하느냐." "마음이 있어야 참선도 하고 불법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은 허공이 제일 크다 생각한다." "마음이 곧 허공이라 생각합니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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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6.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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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망구(爲法忘軀) 위공망사(爲公忘私)출가생활 63년을 종명과 공명에 절대적으로 바친 신성. 일생동안 사업계에 투신해 일체의 사사로운 취사를 놓아 버린 심법. 청렴결백하고 지공무사함으로 실천궁행의 표본이 된 성산 성정철(誠山 成丁哲, 1902~ 1987) 종사.출가 전 형수인 추타원 조창환 선진과의 인연으로 증산교 일파인 태을도에 입문하여 전 재산을 관리하는 총책임자가 됐다. 그러나 정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던 차에 이청춘·장적조 선진등을 통해 불법연구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후 이미 대종사를 먼저 친견한 모친 손학경과 형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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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6.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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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길, 이 공부 이 사업에포대화상 같은 넉넉함과 원융무애함으로 마산·대구·서울 등 대도시 교화 현장에서 법풍을 불린 범타원 김지현(梵陀圓 金智玄, 1924~2003) 종사.그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대범하고 총명하며 통솔력이 뛰어나 많은 기대 속에서 성장했다. 10세 무렵,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인생을 헛되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누가'시집가라'하면 서운해서 울곤 했다. 부친 용산 김석규 대봉도의 권유로 16세에 대종사를 친견했다.대종사께서는 "나는 너의 정신의 영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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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6.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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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방언공사의 주역대종사의 첫 제자로 방언공사와 법인기도로 새 회상 창립의 혈심 주인이 된 팔산 김광선 대봉도의 장자. 당당한 풍모에 의기와 신성으로 교단의 대의를 세우며, 무아봉공 사무여한의 전무출신 정신의 사표가 된 형산 김홍철(亨山 金洪哲, 1902~1987) 종사.그는 어려서부터 활달한 성격으로 의기양양하게 자라며 강직한 성품을 간직했다. 이런 성격은 훗날 교단의식의 마지막 만세삼창을 도맡았으며, 때로는 창과 춤으로 대중의 법열을 흥기 시켰다. 소년시절 대종사께서 "천지공사인 방언공사에 합력하라"는 말씀을 받들어 두 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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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6.0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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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실(三實)과 삼무(三無)로붉은 홍시 위에 흰 눈이 내린 듯 정열과 소심을 간직한 수행인. 진실(眞實)·근실(勤實)·성실(誠實)의 삼실과 무대(無對)·무적(無敵)·무쟁(無諍)의 삼무로 대인욕·대사랑을 나툰 수행인. 상타원 전종철(相陀圓 田宗哲, 1934~1993)종사.대산종사께서는 "상타원의 수행정진의 불과는 부처님께서 수행 중 가리왕에게 겪었던 절절지애의 대인욕이었으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수행으로 불공을 했던 대사랑의 뜻과 다름이 없을 것이로다"는 열반 법문을 내렸다.그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힘겨울 때가 많았지만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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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5.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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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달 잠기듯'이 사람을 보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 '성실, 근면, 책임'을 생활신조로 삼은 인간다운 사람. 정원을 가꾸고 시를 쓰며 멋진 인생을 살다간 사람. 중산 정광훈(中山 丁光薰. 1917~1977)대봉도.그는 자호를 '목진(牧眞)'이라 했다. 이는 얼마나 진실하고 성실하며 책임 있고 주도면밀하게 살고자 했던가를 말해준다. 그런 그를 대종사께서는"광훈이는 두 번 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을 빈틈없이 잘한다"고 칭찬했다.영산성지에서 태어난 지연과 독실한 신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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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5.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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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겁의 약속불보살들은 시방일가 사생일신의 대서원 아래 한 마음으로 삼세를 일관하고 구제의 인연 따라 동서남북에서 출현한다. 숙겁에 약속했던 불연을 기다리다 일원회상을 찾아 위법망구(爲法忘軀) 위법망사(爲法忘私)의 정신으로 교단의 대의를 세워 후진들의 사표가 된 달타원 이정화(達陀圓 李正和, 1918~1984) 대봉도.경상도 금릉군이 고향인 훈산 이춘풍 선진은 도를 구하기 위해 영광으로 간 고모댁인 정산종사 집안을 환고향시키겠다는 뜻으로 영광을 찾았다. 그러나 정산종사의 부친 구산 송벽조 선진의 안내로 대종사를 뵙고 그 위덕에 감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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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5.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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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 한 송이꽃들의 향연으로 화사한 봄날이 더 아플 때가 있다. 모진 겨울을 이겨낸 어여쁜 속잎을 다 피우기도 전에 떨어져야하는 꽃들이 있기 때문이다. 충남권 개척교화에 혈성을 다하고, 미주교화의 선봉에 나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순교한 균산 정자선(均山 丁慈善, 1922 ~ 1974) 대봉도.그와 원산 이제성 종사는 미주교화의 씨앗을 뿌린 선봉장이다. 젊은 시절부터 간직했던 해외포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쉰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 미지의 시카고로 떠났다. 현지에 도착하자 먼저 한국일보 시카고 지사를 찾았다. '시카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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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5.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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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화에 열정 쏟아평생을 공명에 따라 일호의 사심이 없이, 일호의 호오도 없이 교화에 전념하며 일직심으로 살다간 영타원 이지일(寧陀圓 李智一 1915~2003) 대봉도.전주여고를 다닐 때 전주교당 초대교무로 봉직중인 재당숙모 오타원 이청춘 대봉도의 인도로 원기24년 불법연구회에 입회했다. 어느 날 전주교당을 방문한 대종사께 절을 하고 올려 다 보는 순간 번쩍이는 안광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대종사는 "큰 공부 큰 살림 하게 생겼다. 큰 일꾼이 되어보라"고 격려했다.다음해인 원기25년 가정사를 청산하고 총부에서 경진년 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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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4.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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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음에, 내 집 없음에대의와 의리로 일관한 충(忠), 스승의 명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신의로 일관한 효(孝), 담대하고 굵은 기국으로 동지들을 사랑한 애(愛)를 실천궁행한 동산 이병은(東山 李炳恩) 종사."내가 동산의 일생을 생각해보니 무아무불아(無我無不我) 무가무불가(無家無不家)로다. 그 큰 자리는 내가 없으므로 나 아님이 없으니 시방이 내 집이요, 출가위요, 성자의 대승행이로다" 열반을 앞둔 그에게 내린 대산종사의 법문이다.어렵기만 했던 시절, 30대 중반 약업계에서 눈부신 사업역량을 발휘 하던 중 경제적 여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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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4.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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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잊고, 사를 놓고훤칠한 용모와 장부같은 늠름한 기상, 어머니의 따뜻함과 넓은 도량의 대인의 성품을 겸비한 발타원 정진숙(發陀圓 鄭眞淑 1920~2001) 종사. 출가 후 58개 성상을 '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고, 공을 위해서는 사를 놓아 버리자(爲法忘軀 爲公忘私)'는 정신으로 공중사에 헌신 봉공한 거룩한 생애였다.그는 할아버지가 승지 벼슬을 한 지체 있는 가정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따라서 여자가 학교에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한 어머니의 염원 덕에 보통학교를 갔다.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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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전 교무
2013.04.12 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