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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단(敎化團)은 원불교 제도의 특징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교화를 시작하고 몇 달만에 믿고 따르는 사람이 사십여 명에 이르러 그 가운데서 특히 진실하고 신심 굳은 아홉사람을 골라 회상창립의 표준제자로 내정한 것이 그 효시이다. 이를 수위단(首位團)이라 부르며 교화단의 ...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3.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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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를 가까이 모신 초기교단의 제자들은 매일같이 법문을 받들 수 있었다. 대각(大覺)을 통해 밝혀진 진리세계, 구세경륜을 체계화해 나가는 교리강령, 회상창립과 관련한 일과 이치 등에 대한 가르침을 직접 받든 것이다. 말씀으로 전해주고 마음으로 지도해 준 구전심...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3.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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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文化)체계와 무당(巫堂)체계라는 말이 있다. 문화체계가 경영하는 사업을 기록으로 정리하여 자료로 남기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면, 무당체계는 주먹구구식으로 행하면서 역사기록을 남기는데 둔감한 것을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원불교 교단은 일찍부터 문화체계에 눈떠 왔다. 기...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3.0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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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최초의 교재는 원기12년(1927)에 발간한 〈수양연구요론(修養硏究要論)〉이다. 양장 4×6판 73쪽으로 국한문 혼용이며, 표지에 '소태산 술(少太山 述)'이라고 하여 대종사의 가르침임을 밝히고 있다. 인쇄소는 기독교창문사, 발행소는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2.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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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창립총회가 이루어진 것은 갑자년인 원기9년(1924) 6월1일이다. 지금의 익산시 마동 보광사(普光寺)에서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임시 교명으로 교단을 공개한 것이다. 이 때 채택된 교단 최초의 법규가 〈불법연구회 규약(規約)〉(이하 규약)이니, 오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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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수 교무
2016.02.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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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풍경(山中風景)〉은 훈산 이춘풍(薰山 李春風, 1876-1930)정사의 유고(遺稿) 문집이다. 봉래제법(蓬萊制法) 곧 소태산 대종사의 봉래산 주석기(1919-1924)의 상황을 담고 있어서 교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훈산은 경북 금릉, 현재의 김천에서...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2.0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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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대종사의 가사 '회성곡(回性曲)'은 본성을 회복하는 즐거움을 읊은 노래이다. 봉래산에 주석하던 원기5년(1920) 음력 3월, 교리강령을 마련하던 때의 흥취가 배어 있다. 대각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구도와 깨달음, 그리고 구세이념의 전개에 대한 법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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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수 교무
2016.01.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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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새불교로서 새종교'이다. 새불교란 불법연원의 새로운 가르침이요, 새종교란 변화된 근대의 지구촌사회에 출현한 새로운 구세이념이라는 뜻이다. 연원이란 일과 사물의 근원을 가리킨다. 그러면 소태산대종사가 스스로 발심하여 닦고 깨달았는데, 불교가르침을 연원으로 ...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1.2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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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대종사가 이룬 대각 경지의 확인과정을 〈원불교교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날 조반 후, 이웃에 사는 몇 몇 마을 사람이 동학의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가지고 서로 언론하는 중, 특히 '오유영부 기명선약 기형태극 우형궁궁(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1.0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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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대종사(少太山大宗師, 朴重彬, 1891-1943)의 대각(大覺)은 우주사적 일대 사건이다. 원기(圓紀) 원년(1916) 4월28일 동트는 시기에 큰 회심(回心)을 통해, 피맺힌 구도 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의심덩어리를 풀어낸다. 이 깨달음에서 밝혀진 진리를 우리는...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6.01.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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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법사는 원광대학교를 설립하고, 대종사 성탑과 성비를 건립, 친히 스승의 비문을 지었다. 〈대종경〉 편수를 친감하며, 1960년 회갑을 기념하여 전무출신 요양재단인 법은재단을 설립했다.정산종사 회갑날 아침이었다. 생신상을 올리니, 둘러보시고 약주가 없냐고 하신다. 시자 이공전이 창황중에 벽장을 뒤져 인삼 담근 것을 겨우 찾아 정중히 한 잔을 올리니 파안대소 하시며 수저를 드셨다. 참으로 부처님의 파격이 아닐 수 없다.정산종법사, 원기 46년 4월에 대세계주의인 삼동윤리(三同倫理)를 발표했다. 삼동윤리는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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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12.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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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불경죄로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어 1년간 옥고를 치루고 나온 구산 송벽조 교무는 일경의 감시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실무에 바로 복귀하지 못하고 고향 성주로 가서 지냈다.이에 작은 아들 송도성은 부친께 편지를 보낸다. 고향 성주와 가족이 있는 영광이 풍토가 같다며 영산으로 오셔서 가족과 함께 지내시길 청한다. 구산은 그후 삼례지부 지금의 수계농원 교무로 2년간 봉직하고 이어 금산지부 지금의 원평교당 교무로 4년을 근무한 후 연로하여 가족이 있는 익산 총부로 돌아왔다.해방 전해 그러니까 1944년 6월 죽마고우이자 동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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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12.1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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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8.15광복을 맞이했으나 현실은 또 다른 시련에 부딪혔다.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사상은 좌우로 분열된 채 국내 정치 현실은 수 없는 정당과 사회 단체가 난립한 가운데 갈등과 대립을 이루고 있었다.이러한 국난을 예견한 정산 송규 종법사는 광복 직후 새 나라 민주 대한민국 건설의 길을 엮은 〈건국론〉을 발표한다.1950년 6월 25일, 동족 상잔의 민족적 대비극인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산종법사는 "과거 반상(班常) 시대에 맺혔던 원진이 터진 것이다"고 진단했다. 세상은 전율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으며, 시시각각 전세가 불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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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12.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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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일본 만주 중국 등지로 징용을 나갔던 전재 동포들이 물밀 듯이 돌아왔다. 건국사업에 협력하는 첫 길은 귀환 전재 동포의 구호라고 생각한 정산종법사는 구제 사업에는 구호사업과 제도사업을 아울러야 한다고 주창했다.당시 수위단 중앙 단원이자 총무부장이었던 주산 송도성은 정산종법사의 구제사업의 정신에 의해 불법연구회 전재 동포 구호사업의 취지서를 작성했다.취지서를 각 교당과 기관에 보내 재가출가 전교도의 참여를 호소했다. 1945년 9월 4일 익산 역전에, 9월 10일 서울 역전에 '귀환 전재 동포 구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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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12.0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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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에 실형(實刑)을 산 전무출신이 있다. 바로 정산·주산종사의 부친인 구산 송벽조(호적명 인기) 대희사이다. 구산 선진은 일본 천황에 대한 '불경(不敬)'이란 죄목으로 광주형무소에서 1년간 영어(囹圄) 생활을 했다. 그러니까 감옥살이, 징역을 산 것이다.구산 대희사는 원기24년(1939) 불법연구회 진안지부(현 마령교당) 교무로 재직할 때에 일본이 패도정치로써 조선을 유린하는 행패에 분격하여 일왕에게 진정서를 써보냈다. 1997년, 필자와 양현수·박정훈·서광원 교무 등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11.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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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은중경〉에 의하면 자식된 도리로서 왼편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편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가죽이 닳아서 뼈에 이르고, 뼈가 떨어져서 골수에 이르도록 수미산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한다.소태산 대종사는 〈정전〉에서 부모 보은의 조목으로 육체의 봉양, 심지(心志 )의 안락, 무자력자 보호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빠짐없이 밟을 것을 밝혔다. 〈대종경〉 변의품 25장에 의하면, "공부의 요도를 지내고 나면 부처님의 지견을 얻을 것이요, 인생의 요도를 밟고나면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11.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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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개벽의 주세성자 원각성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대원정각을 한후 제생의세(濟生醫世)를 위해 일원대도 회상을 창립하면서 최초로 9인제자를 모아 교화를 시작했다. 전남 영광 길룡리에서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기도를 마친후 부안 변산에 들어가 제법(制法)을 한후 원기9년(1924) 전북 익산 신룡리에 중앙총부를 마련, 전법(轉法) 교화를 단행한다.소태산의 최초 구인제자는 모두 남자들로 구성했으나, 일찍이 남녀평등을 주창한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17년(1932) 초판된 〈보경 육대요령〉에서 사요(四要)의 첫 조항으로 남녀권리동일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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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11.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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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10년(1925) 8월에 학위 등급법을 발표한다. 공부인의 공부 등급으로 보통부 특신부 법마상전부 법강항마부 출가부 대각여래부 등 6급을 두고, 그 중간에 각 예비부를 두어 승급을 준비하게 하며, 승급 조항의 조사 기간은 만 3개년씩으로 하고, 승급 때에는 승급 증서의 수여와 승급 의식의 거행으로 회상의 영광을 축하토록 했다.원기 13년(1928) 3월 26일은 제1대 제1회 기념일이자 정기 총회를 겸한 날이었다. 총회 준비를 위해 연초부터 송규 송도성 조갑종 김기천 전음광 등 5인이 창립 12년 간의 사업 보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11.0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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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 교단은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대중 집회는 물론 대소사에 자유가 없었다.총부 경내인 청하원에 이리 경찰서 북일주재소를 두고, 불법연구회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상부에 보고했다. 황가봉(법명 이천)은 전북 도경에서 비밀경찰로 내정되어 경찰복도 입지 않고 아예 불법연구회 안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더욱 철저한 감시활동을 벌인다.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정 당국은 불법연구회 예회 순에 일본국가 제창, 황국신민서사 낭독 등 국민의례를 강제 편입시키고 모든 의식수입을 국방 헌금토록 강요했으며, 그 동안 사용해온 회상의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10.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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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廣寒樓)는 조선시대 유적으로 보물 제281호이다.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이름했고,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고 부르게 되었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 정철이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연못 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을 세웠다. 그러나 정유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10.23 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