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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월산 조성중 정사(越山 趙誠中 正師)가 9월 12일 열반했다. 월산 정사는 교단의 의료계에서 오랜 시간 봉직하며 원불교 한방의학 발전과 아픈 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려내 온 전법사도의 삶을 살았다. 소태산 대종사의 ‘제생의세’ 경륜과 교단 대의에 합력하며 텅 빈 마음으로 사업을 일으켜온 공부인이기도 했다.월산 정사는 출가 당시부터 한방계열의 기관과 인연이 깊었고, 이리역전보화당, 전주보화당, 광주한방병원, 원광제약에서 근무하며 교단 의료계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원기63년(1978) 원광대학교 한의대 부속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9.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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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내년 서울교화 100년을 앞두고, 역사와 지역이 어우러지는 문화콘텐츠 서울성지순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멈췄던 순례가 재개되면서, 서울성지 환수 및 복원·관리, 해설사 양성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다.원기101년(2016) 첫발을 뗀 서울성지순례는 북촌과 창신동, 남산 3개 코스로 진행되며, 그간 누적 포함 217개 교당 4,542명의 재가출가 교도가 함께 했다. 이는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한 4년간의 통계로 1년에 54개 교당, 1천135명의 재가출가가 함께 한 것이다. 서울을 비롯,
교화
민소연 기자
2023.09.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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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여고시절, 하교시간이면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틈에서 홀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너는 왜 그렇게 일찍 가니?” 하고 물었다. 친구는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해야해”라고 답했다. 그 친구가 말한 ‘집’은 교당이었다. 당시 간사생활을 하던 여고동창 이관도 교무를 떠올리며 임성옥 교도(신림교당)은 “그게 원불교와의 첫 인연”이라 회상했다.임 교도의 인생에 다시 원불교가 깃든 것은 결혼할 때였다. “제 입교일은 1981년 11월 29일, 제 결혼식날이에요.” 신림교당이 지금의 자리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09.1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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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해바라기 마을 방송입니다. 1. 드디어 진전(참밭) 마을 노래가 나왔습니다. 장하열·최용정 작사, 최용정 작곡으로 완성했습니다. 이 노래를 8월 30일 5시 마을회관에서 첫 발표합니다. 모두 참석하시어 ‘해바라기 핀 행복한 진전마을’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겠습니다.2. 우리 마을 유공자인 주만조 씨의 제사를 묘소 앞에서 함께 지냅니다. 본인의 논 600평을 마을에 희사한 그는 우리 마을의 유공자입니다. 묘소에서 제사 지내는 의식을 8월 30일 4시에 하겠습니다. 3. 2023년도 해바라기 함박웃음 축제를 하기 위해 군 당국에
우리 교무님은 이장님
장연광 원로교무
2023.09.1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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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한 달만 가서 살아보고 와라.”출가를 반대하던, 아니 어쩌면 ‘시집가지 않는 삶’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한 달’을 조건 삼아 딸의 이리(현 익산)행을 승낙했다. 스물셋, 적지 않은 나이였다.공부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와 한 달이 흐른 걸 알았다. 아버지는 “집에 가자”고 했다. 딸이 물었다. “아버지께서 제 생사고락을 대신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답했다. “그건 안 되지.” 딸은 말했다. “그러면 제 인생은 제가 개척을 해야지요.” 그렇게, 한 달은 평생
선진의법향
장지해 기자
2023.09.1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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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의료법인 원광의료재단 산하 청주원광효도요양병원(이하 청주원광병원)이 7월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열반한 故 안선정 영가의 종재식을 거행했다. 故 안선정 영가는 올해 1월 청주원광병원에 입사해 어르신들을 위한 역할에 전념했으나, 7월 15일 청주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23세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에 청주원광병원은 전 직원이 재주가 돼 7.7천도재를 모셔왔다.종재식은 9월 1일 청주원광병원 법당에서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박기덕 재활팀장은 “면접장에서 봤던 밝고 쾌활하던 모습이 떠오른
교화
장지해 기자
2023.09.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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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만법귀일 일귀하처,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깨침의 여부를 가늠하는 최고의 화두 중 하나다. 선사들의 화두는 해석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그 자리를 훤히 깨달아 표현하고 있다면 영생사가 해결되고 있는 경사요, 찰떡같이 해석을 잘 해도 나와 만법과의 관계를 모른다면 빛 좋은 개살구다. 만법귀일과 나의 관계를 아는 것이 관건이다. 만유의 움직임을 만법이라 한다. 만유를 하나가 운영하므로 만법귀일이며, 그 하나가 일원이다. 일체 우주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3.09.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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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권도갑 원로교무] 소태산은 열반 게송을 설하시고 “이 진리를 사량으로만 알려하지 말고 관조로써 깨쳐 얻으라”고 부촉하셨다. 아무리 존엄한 법문이라도 이를 사경하고 암송하여 머리에 지식으로만 남으면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초기불교에서도 부처님은 이런 법문을 자주 하셨다. “내가 하는 말이라도 무조건 믿지 말라. 스스로 의문을 걸어서 터득하라” 하셨다. 이미 알고 있으니 자신에게 물어서 답을 얻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모르며 무지하다고 보았다. 때문에 오랜 세월 주입식 교육의 노예가 되어
은생수
권도갑 원로교무
2023.09.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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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영산성지 대각전(이하 영산대각전)은 영산 학원실에서 집회(법회)를 열어오다가 교도 수가 증가함에 따라 신축하게 됐다. 원기21년(1936) 10월 지금의 대각전 자리로 현대식 건물을 착공해 대중 집회의 공간을 준비했다.영산대각전 신축 공사에는 영산지역 교도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까지 동원됐고, 익산 총부에서는 이재철과 오창건을 건축 감독으로 파견했다. 그러다 그해 12월 초순경부터는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1개월여 기간을 친히 감독하며 심혈을 기울인 곳이다. 영산대각전 건축공사 중에 이재철의 백부 이세형 교도
문화
유원경 기자
2023.09.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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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진타원 전팔진 원로교도(이리교당). 그의 본적은 ‘전북 익산시 북일면 신용리 344-2’, 즉 중앙총부다. 불법연구회 초창기,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설계해 준 집을 지어 익산총부 구내에 온 가족이 살았고, 그 집에서 그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 총부 구내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기억이 확연하다. 구타원(이공주 종사) 할머니집을 지나면 총부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 팔타원(황정신행 종사) 할머니집, 그 옆이 자신이 나고 자란, 큰 방(소태산 대종사 당대 선방) 하나를 놀이터 삼던 ‘우리 집’이다.
선진의법향
이여원 기자
2023.08.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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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 52상(공부 요도 상): 나침반이 일원상 모양을 하는 까닭은? 은 현재 서양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적인 지도자 중 한 분인 숭산(崇山) 큰스님이 지난 30여 년 동안 미국에서 설법한 내용을 제자 현각이 집대성한 책이다. 제목을 ‘선의 나침반’이라 한 첫 번째 이유는 고해의 바다에서 ‘지혜(prajna)의 배’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선의 나침반’에 의지하라는 의미다. 또 깨달음의 주체인 자신의 본성을 ‘나침반’삼아 수행에 임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여기서 일원상은 바로 공부의 요도다. 그래서 나
일원 108상
윤덕균
2023.08.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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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당타원 박순옥 정사(堂陀圓 朴純玉 正師)가 8월 25일 열반했다. 초기 교단의 어려운 생활에도 사없이 공사에 헌신하고, 늦은 출가를 오롯한 신심과 공심으로 채워나간 거룩한 봉공의 일평생이었다.당타원 정사는 원기49년(1964) 수계농원에서 입교 후 20여 년간을 수계농원 감원으로 근무하고, 원기68년(1983)에는 중앙수양원(현 원광효도마을 수양의집) 감원으로 부임해 17년간 봉직했다. 원기70년(1985)에는 전무출신 서원승인을 받고, 원기85년(2000) 정년퇴임했다.수계농원 20년, 중앙수양원에서 1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8.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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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내년(원기109년)은 법위사정의 해다. 이에 법위사정 세부지침 안내를 시작으로 법위사정 일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8월 중 교도 ‘법위측정점검표’ 작성 및 교당 사정이 마무리되면, 지구협의(9~10월), 교구사정(11월), 중앙법위사정위원회 사정(12월) 등이 올해 안에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이어 원기109년 1월 수위단회 사정 및 종법사 승인을 예정하고 있다.재가출가 교도들에게 법위(法位)등급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법위사정의 목적과 정신, 법위사정의 대상과 절차, 법위사정 규정·규칙 수정내용 및 개정안
교화
이여원 기자
2023.08.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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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길고긴 비행 끝에 도착한 아프리카, 그곳에 첫발을 디딘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평생을 교육에 바쳐온 신항균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법명 효영, 압구정교당 교도회장). 중학교와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총장에 이른 그의 일생은 학생이라는 ‘잘 배우는 사람’을 길러냈고, 교사라는 ‘잘 가르치는 사람’을 길러낸 시간이었다. 지난해 퇴임 후 다시 시작하게 된 인생 2막의 눈과 귀는 이제 아프리카 어린이에게로 향한다. 그는 (사)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이사장이 된 지 보름 만에 아프리카를
여기, 은혜로운 당신
민소연 기자
2023.08.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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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요산 이진하 정사(堯山 李眞廈 正師)가 8월 14일 열반에 들었다. 요산정사는 고등학생 시절 인생에 대한 회의와 구원에 대한 깊은 화두를 품고 기도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숙겁의 불연을 따라 을 읽고, 스스로 교당을 찾아 출가의 길에 나섰다. 이후 40여 성상을 삶과 영생의 길을 연구하고 전달하는 데 전력한 구도자이자 전법사도의 삶을 살았다.요산 정사는 실력 있는 교화자이자 영육쌍전의 구도자였다. 그 일생을 곁에서 보고 자란 세 자녀 모두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전무출신의 길로 나서 거룩한 성업에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8.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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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맥타원 이선균 정사(脈陀圓 李善均 正師)가 8월 12일 열반에 들었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준 대종사님과 원불교에 한없이 감사하다”며 봉공직으로 주어진 일터에서 계교 없이 오직 정법 만난 감사함으로 심신을 바쳐온 일원회상의 주인으로 살아온 일평생이었다. 맥타원 정사는 해방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의 시대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용신교당 야학에 참여해 출가의 서원을 키웠다. 출가 후 초임지인 영산선원에 근무하며 ‘정관평 재방언 공사’에 합력해 어느 때는 감원으로, 또는 농부와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8.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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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안타원 조경연 정사(安陀圓 趙敬蓮 正師)가 8월 6일 열반에 들었다. 대의를 갖추고 공의에 합력하며 한결같은 성품을 지녔던 안타원 정사는 ‘장학사업과 후생사업에 합력하리라’는 뜻을 세우고, 평생의 정재를 정리해 후생사업회와 원불교대학원대학교에 희사한 공심과 무아봉공의 정신을 바로세운 전무출신의 삶을 살았다.안타원 정사는 숙겁의 불연을 따라 구타원 이공주 종사의 “나 따라 갈래?”라는 한 마디에 23세에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60여 성상을 곧고 고귀하게 교화계에서 헌신했다. 총부 식당 간사 때부터 익힌 신심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8.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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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독공 계획은 부친의 열반으로 무위로 돌아갔다. 그간의 생활과 구도의 후원을 잃고, 부친이 생전에 빌린 부채 역시 해결해야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귀영바위 옆에 오두막을 얻어 주막을 차려 운영했지만, 장사는 이원화에게 맡기고 귀영바위굴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기가 일쑤였다.탈이파시 장사로 채무를 청산한 소태산 대종사는 이후 ‘이 일을 어찌할꼬?’ 한 생각으로 구도에 전념했고, 더 지나서는 그것마저 잊었다.[2023년 8월 9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08.1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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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직산 김정유 정사(直山 金正有 正師)가 7월 30일 열반에 들었다. 직산 정사는 고등학교 시절 마주한 생사의 기로에서 ‘모두가 은혜’라는 한 소식에 원기55년(1970) 출가를 서원했고, 원기59년(1974) 서원승인을 받았다. 이후 50여 년의 시간을 교육기관·중앙총부·교당·산업기관 등 교단 곳곳에서 보은행을 실천하는 데 혈성을 다했다.스스로 가장 푸르렀던 시절을 “영산에서의 5년”이라고 한 직산 정사는 영산선학대학교에서 후학들에게 교단과 스승을 향한 신근을 뿌리내리게 하고, 이어 원광새마을금고에서는 기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8.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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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열아홉 살 될 무렵, 이제 산신도 도사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으나 부친이 열반하여 독공 계획이 무위로 돌아갔다. 부친이 열반하자 지금까지의 생활에 대한 의뢰와 구도에 대한 후원을 잃게 되었고, 모친과 처자의 생활 책임을 전담하여야 하고 부친이 생전에 영광 읍내 부자에게 빚을 진 채무독촉을 받았다. 그리하여 농사일로 동네 사람들과 의논도 하고, 집안일로 여러 곳에 출입하기 시작했으나 뜻과 같이 되지 않았다. 소태산 대종사는 귀영바위 옆에 오두막을 얻고 주막을 차려 운영하였으나 장사는 아예 이원화(
온라인뉴스
이현천 기자
2023.08.06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