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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참회야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간을 끌어올리는 길이다. 사회에서 죄는 미워할지라도 인간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는 진리가 숨어 있다. 죄는 잘못된 행위를 말한다. 죄(罪)라는 한자는 잘못을 저질러 그물에 걸렸다는 뜻이다.에서는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나기 마련이니, 하늘의 법망이 넓고 넓어서 성긴 것 같아도 새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은 이러한 인간의 죄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자신의 업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마음과 그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2.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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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생활 속에서 삼매를 경험한다면, 그 삶은 경전을 써내려 가는 행위가 된다. 삶이 곧 경전이 된다. 특히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그 경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에 소장된 밀레의 '만종'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 음악방송을 통해 나오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물 흘리기도 한다. 필자 또한 아침 출퇴근 시간에 차를 몰다가 바이올린 선율에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왜 우리는 예술 작품 속에서 감동을 얻는가.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2.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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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일심은 분별과 집착이 없으며, 선악과 염정을 초월하고, 주객과 진속을 둘로 보지 않는 동시에 허공처럼 텅 비어 있으되 맑고 두렷하며, 일체를 파악하는 지혜의 능력과 세계를 하나로 품는 마음이다. 승조(僧肇)는 에서 "성인은 (반야의 지혜로써) 신령하다. 마음에 번뇌가 텅 비었으나 관조의 작용을 잃지 않는다. 형상도 명칭도 없기 때문에 관조로 작용을 해도 실지 그 자체의 텅 빈 마음을 잃지는 않는다"고 한다. 무시선법에서 정할 때 일심을 양성하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우리 내면의 원만구족하고 지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2.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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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진리를 본체와 현상으로 나눠 보는 것은 '현실 너머에 무엇이 있지 않을까'하는 이성적인 사고 때문이다. 서양은 플라톤 이래, 동양은 유불선 삼교가 함께 진리를 두 세계로 파악하고 그 관계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지 고민했다. 이를 실제와 가상, 원본과 복사, 유와 무와 체용, 이와 사, 진공과 묘유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진리계의 두 세계가 인간의 마음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봤다. 두 세계로 나눠진 진리는 하나로 통합된다. 일원상의 진리는 그 통합된 세계를 말한다. 그리고 일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1.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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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삶은 선(禪)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누구나 선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것을 자각하고,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가, 그렇지 않고 그저 운명에 맡기고 사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차를 운전하는 예를 들어보자. 그 이유는 운전이 인생의 축소판인 동시에, 선이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 차를 몰기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도로는 삶의 한 가운데를 의미한다.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이다. 골목, 국도 혹은 고속도로인가에 따라 속도가 다르다. 국도에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1.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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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기훈련 중에 기록하는 일기가 정기일기다. 그 핵심은 심신작용처리건과 감각감상이다. 심신작용은 인과의 법칙을 자기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일의 주종·선후·본말과 시비이해를 잘 파악하여 실천했는가라는 자기반성을 불러낸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인 의지로 행복하게 만들어 가기 위한 것이다. 행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인과를 어떻게 삶 속에서 잘 활용했는가, 하는 점이 요체다. 예를 들어 보자. 맛있는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한 알의 사과 씨앗을 땅에 심어야 한다. 그 씨앗 속에는 사과라는 인(因)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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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11.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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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상시일기의 핵심은 유무념 공부다. 상시, 즉 일상의 공부는 일상수행의 요법과 상시응용 및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을 얼마나 온전한 생각으로 실천했는가로 집약된다. 아니 〈정전〉을 비롯해 모든 성현의 가르침을 얼마나 내 삶에 투영하고 풍요롭게 가꾸어가고 있는가, 라는 신앙과 수행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유무념 공부는 상시공부의 핵심이다. 유무념 공부 하나만으로도 불지에 뛰어오를 수 있다. 상시일기에서 이를 기재하는 것은 순간순간의 진급을 점검하는 것이다. 유념은 깨어있는 자성에 기반한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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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11.0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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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삶의 흔적은 허공에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핵심은 영육쌍전과 이사병행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해 자신의 삶을 복혜 구족한 낙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일기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발명품이다. 동서양에서 일기는 수입·지출의 대조를 위한 기록에서 출발했다. 그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자기성찰을 위한 기록으로 변모했다. 예를 들자면, 16세기 말부터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 확립과 자아성찰을 위한 일기를 쓰고 있다. 신앙심을 깊게 하기 위한 방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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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10.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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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의두요목 5조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의 원문이다. 〈벽암록〉에서 조주선사, 〈선요〉에서 고봉선사에 의해 유명해진 공안이다. 〈대종경〉 성리품에서는 소태산 대종사가 제자들에게 과제로 내고 있다. 전통 선방에서는 화두 중 으뜸으로 치고 있다. 필자도 평생 이 의두를 들고 있다. 좌선 때, 차를 타고 가거나 한가할 때, 때로 꿈속에서도 불현듯 이 의두를 풀어보곤 한다. 핵심 전략은 이 언어로 표현된 사구(死句, 죽어있는 말)가 활구(活句, 살아있는 말, 즉 생생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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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10.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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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수행은 무엇인가. 만법의 근본인 한 마음을 밝혀 대각과 해탈, 그리고 중도에 기반한 부처의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 혜명의 등불로 세상을 밝혀 모든 이웃도 그 세계에 들어와 함께 행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공안과 화두, 의두와 성리 또한 그 길로 가는 첩경(捷徑, 지름길)이다. 그런데 불법을 계승한 원불교는 불가(佛家)에서 잘 쓰지 않는 용어인 의두와 성리를 새롭게 내놓았다. 사실 근본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불법의 현대화를 지향한 소태산 대종사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의두·성리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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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10.0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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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논리철학논고〉)고 했다. 전자는 철학의 영역으로 수학·과학처럼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세계를 뜻하며, 후자는 종교의 영역으로 신·진리는 말로써 드러낼 수 없기에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칸트 또한 종교·윤리·예술은 이성의 한계 너머에 있다고 보았다. 결국 종교적 가르침은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말로써 설명해봐야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공안·화두는 이처럼 진실을 체득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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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9.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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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인간은 의문의 동물이다. 이 의문을 부여잡고 운명의 주체를 끝까지 파헤친 사람이 선사다. 의문의 끝은 청정한 자성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혜능은 "선지식들이여,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본래 청정하니 만법이 자성에 있다"(〈육조단경〉)고 한다. 그는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가리켰다. 그래서 그의 선을 돈오선이라고 한다. 세계를 통찰하는 능력을 가진 본래성불의 본성을 언하에 바로 회복하는 것이다. 청정한 자성은 분멸망상 이전의 마음이다. 이는 지혜로써 관조해야 만이 드러난다. 이후에 선사들은 이 본래무일물인 자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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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9.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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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전〉 좌선법에서는 육체에서 정신에 이르는 10가지 공덕을 설한다. 10가지뿐이겠는가. 무한하다. 한마디로 좌선은 일상에 찌든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고 자유자재의 인격을 이루는 일이다. 마침내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무한 공덕을 쌓고 베풀어 이 사바세계를 고통에서 건지고 모두가 원하는 불토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나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지금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선택하는 그는 누구인가. 나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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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9.0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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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좌선의 기본은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이다. 몸과 숨과 마음을 고르는 것이다. 대산종사가 '식망현진, 수승화강, 긴찰곡도, 요골수립'으로 세워준 선의 강령은 이 3조(調)에 기반하고 있다. 첫째, 조신과 관련해서는 몸, 손, 눈을 어떤 자세로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몸은 석가모니불이 수행에서 행한 결과부좌가 이상적이다. 요골수립이 확립되면 어떤 흔들림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결과부좌가 어렵다면 반가부좌를 취해도 좋다. 단, 무게의 중심이 단전에 오도록 입정 전에 몸을 고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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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8.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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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선림의 규범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당나라의 백장회해이다. 소위 〈백장청규〉가 그것이다. 이를 근거로 남송의 자각종색은 〈좌선의〉를 지었다. 이보다 앞서 단전주를 비롯한 좌선법을 설한 천태지의의 〈수습지관좌선법요〉도 빠질 수 없다. 오직 좌선만이 불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설한, 일본 중세의 도겐 또한 〈보권좌선의〉로써 좌선의 방법을 설했다. 이 외에도 여러 선사들의 좌선법이 있다. 원불교 좌선법은 이 조사들의 전통적인 방법을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좌선의 궁극적인 세계를 밝힌 것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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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8.2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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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좌선이라 함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기운을 아래 단전(배꼽 아래)에 주하고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무별한 진경에 그쳐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니라." 초기교서인 〈육대요령〉의 좌선의 내용이다. 〈불교정전〉에서는 불전에 나타난 수행방법과 단전주와의 관계, 동아시아의 여러 조사와 선사들의 단전주 내용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정전〉 좌선법에는 단전에 마음을 주하면, 기운 조절, 수화의 조화를 이뤄 선정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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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8.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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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원불교의 좌선과 무시선은 선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능가사자기〉에서 혜가는 "시방 제불 가운데 좌선을 하지 않고 성불한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석존 사후에 조성된 불상 가운데에는 뼈와 가죽만 남은 입정삼매의 좌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선과 깨달음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사들은 이 체험을 반복하여 자신에게 재현해 내었다. 불교의 명맥은 이렇게 해서 이어지고 있다. 6세기 전반 보리달마가 중국에 불교의 생명을 불어넣은 것 또한 좌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후, 혜가, 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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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8.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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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어느 봄날, 기숙사의 선방에서 학생들과 함께 좌선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날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창문 밖의 세상은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그대로 있었다. 천지가 이렇게 창조되어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겨우내 마른 나뭇가지에서 푸른 잎이 돋고, 꽃이 피는 이유를 저절로 알 것 같았다. 나와 우주는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생사에 대해 자신에게 물었다. 스스로 미소 지었다. 이전과는 다른 기운에 싸여 머릿속 관념의 세계를 탈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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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8.07.2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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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푸른 하늘아래 지평선이 펼쳐진 도로에서 차를 몰다가 문득, '저 세계 너머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 광활한 우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이 좁은 세계 내의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 과연 나는 행복한가' 라고 묻는다. 그렇다! 법신불의 무한 은혜를 느끼며 살면서도 이처럼 망각할 때가 있다. 은혜를 느낄 때 세상 어떤 것보다 더한 절대적 기쁨은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삶의 초라함을 느끼는 순간 그 기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복(至福)을 느끼는 사람들이
정전
원익선 교무
2018.07.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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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염불은 죽음의 순간에 어떤 도움을 줄까. 〈무량수경〉에서 적공으로 아미타불이 된 법장비구가 세운 48원 가운데 제19원에 해답이 있다. 보리심을 일으켜 공덕을 쌓은 임종자가 지극한 마음으로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원하는 데도 부처가 된 자신이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깨달음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 덕분에 우리들은 극락왕생의 티켓을 쥘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관무량수경〉에서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일지라도 임종 시에 열 번의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되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일순
정전
원익선 교무
2018.07.11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