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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가교도(괄호 안은 근무처)융산 송천은(원대) 관산 박선일(원대) 용산 한정완(부산보화당) 관산 이선경(원대) 흥산 박진흥(금산) 연산 한정수(원대) 임산 임윤철(원대) 갈산 김연성(원광보전) 지산 강운상(청년회) 요산 김달성(교화부) 좌산 이광정(문화부) 융산 김법종(청주) 후산 김성현(재무부) 심산 구안복(원대) 석산 김문택(동산선원) 봉산 장정일(
교화
원불교신문
1979.04.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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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계룡산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삼동원에서 생활한 지 어언 9년이란 세월이 흘러 소년이었던 내가 청년으로 성장해서 금년에 영산선원에 입선하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주시고 인도해 주신 여러 스승님과 동지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올린다. 지금까지 생활 반성과 앞으로의 각오를 다짐해 보려 한다. 전무출신은 누구의 권장에서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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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지
1979.03.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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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 종법사는 겨울 정양을 삼동원에서 마치고 3월 20일경 총부에 귀관할 예정이다.금년 3월 26일 대각개교절은 총부에서 맞으며 식전에 임석한다.
교화
원불교신문
1979.03.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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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가 우굴 댄다는 계룡산 신도안에 간다는 것을 기독교인인 남편에게는 똑바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원불교 어느 기관을 견학 간다고만 알리고 신도안에 자리한 삼동원으로 종법사님 세배 대열에 끼어 나섰다. 영광스럽게도 교무 선생님을 옆 좌석에 모시고 담소하며 그리웠던 삼동원에 도착하였다.공기 맑고 경치 좋은 참으로 수양원다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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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국
1979.02.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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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훈련원 교무 장도영(원광사) ▲ 주사 신도경(전주 보화당) ▲ 원광사 주사 심도윤(삼동원) ▲ 문화부 주사 정원아(휴무) ▲ 원여중 서무과장 정진명(원광대 총무과)
교화
원불교신문
1979.02.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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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64년도 선학원 졸업생 훈련 결제식이 2월 1일 중앙훈련원에서 있었다.45명의 훈련생들은 6개월간의 훈련에 들어갔는데, 주로 교리훈련 및 종합정리, 교화자로서의 기능 개발과 실습 상시훈련의 체질화, 산업훈련을 통한 영육쌍전 정신 함양, 교역자의 임무와 사명감 고취 등을 익힌다.이러한 훈련이 4개월간은 훈련원에서 정전, 대종경, 고경, 일반교양 등을,
교화
원불교신문
1979.02.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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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 종법사의 인품과 종교혼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수시 법문>대종사님의 출현은 세계 부활이요 진리부활삼동원은 진리의 전당이요 도덕의 모국이다.◇ 『나는 꿈에라도 부자유스런 왕궁가에 태어날까 두렵다. 이곳 삼동원이 평범하고도 좋다. 적당히 노동도 할 수 있고 산수도 좋구나. 삼동원이 비록 시끄러운 장터 옆에 있으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조용하기 산속
교화
원불교신문
1978.11.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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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공원묘지 부지를 둘러보는 대산 종법사(좌에서 두 번째)>대산 종법사는 겨울 정양을 위해 18일 신도안 삼동원으로 향했다.겨울 동안 이곳에서 정양을 마치고 내년 대각개교절에 총부에 귀관할 예정이다.대산 종법사는 삼동원으로 떠나기 전 15일 오후 박광전 원광대 총장 및 수위단 원로단원, 총부 직원들과 함께 이번 새로 매입한 공원묘지 부지
교화
원불교신문
1978.11.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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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 종사의 인품과 종교 혼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수시법문>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종법사를 하겠느냐.성현은 어리석고 악한 사람을 먼저 구원한다.◇ 한 학인에게 말씀하시기를『성현은 천하의 더럽고 추하게 생긴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사랑하신다. 너는 어디를 가나 변소 청소를 부지런히 하여라. 나는 정관평 제2차 방언공사 때 여섯 달 동안 변소 청소
교화
원불교신문
1978.11.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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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청년회는 지난 8월 신도안 삼동원에서 정기총회를 갖고 회장단이 그대로 유임되어 새 임원이 출범한 지 1개월여 만에 개정된 회칙에 따라 새 중앙 상임위원 중앙운영위원을 구성, 활동을 시작했다.개정된 회칙에는 68명의 중앙위원 절반인 32명으로 축소하여 활동할 수 있는 위원으로 정예화 했다.◇ 중앙 상임위원기획분과: 이성은 박정원 김은준경제분과: 유응현
교화
원불교신문
1978.09.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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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수양원이 주관하는 반만일 기도 회향 및 정진원 준공식이 8월 15일 삼동원에서 대산 종법사가 임석한 가운데 내외 귀빈 인사 등 2천 5백여 교도 일반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 이 자리에는 삼동원 시설확장에 공이 큰 28명의 유공인에게 표창 및 감사패를 전달하고 이도명(원광대) 정지훈 부부에게 효행 교무를 수여하였다.「삼동윤리」실천의 대도량 되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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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78.09.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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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세월의 적공과 정성으로 삼동원은 이제 신도안의 중심으로 개발되었다.소태산 대종사가 점지해 준 땅에, 정산종사의 삼동윤리를 실천하는 터전으로서, 대산 종법사의 염원이 열매 맺어 오늘의 삼동원이 된 것이다. 특히 신흥유사종교의 소굴이라는 신도안에서 교단 대내외적인 비난가 조소 속에서도 묵묵히 쌓아온 20년의 세월이었기에 삼동원의 오늘은 더욱 값지고 뜻
교화
원불교신문
1978.09.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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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조실에 봉안된 대종사 영정에 참배하고 나오는 대산 종법사>대산 종법사가 하계 정양을 삼동원에서 마치고 9월 1일 총부에 귀관했다.이날 대산 종법사는 개원하는 원광의료원(원광대 부속한방병원)에 들려 관계인들을 격려하였다.대산 종법사는 2일부터 4일까지 교정원 및 산하 기관장들을 접견현황을 듣고 5일에는 영산성지를 찾아 소태산 대종사 대
교화
원불교신문
1978.09.1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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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원생 1, 2학년 50여 명은 신도안 삼동원에서 7월 11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하계 봉사활동을 하였다.영산선원생이 1, 2학년 합동으로 교단 기관에서의 봉사 활동은 처음으로 기관 임원들과 함께 작업하고 새벽기도를 올리고 저녁시간에는 법문 듣는 시간을 가져 한 기관을 통하여 교단의 새로운 정신을 체험했다.봉사활동을 마친 영산 선원생에게 이병은 삼동
교화
원불교신문
1978.08.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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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청년회 제16차 정기총회가 7월 29, 30일 양일간 삼동원에서 열리어 회칙 개정과 임원개선, 사업계획을 수립했다.전국 대의원 94명이 참석(위임 31명) 열린 총회는 전국 대학생 연합회를 발족시켜 청년회 산하에 두고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며, 상임위원(65명)의 수를 30명 선으로 줄여 실질적 운영을 꾀하며, 역대 회장 역임자는 고문단으로, 7월말
교화
원불교신문
1978.08.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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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삼동원 계곡에서 서울대 학생 회원에게 설법을 하고 있다.>□… 삼동 수양원에서 정양 중인 대산 종법사는 쾌유한 건강으로 연일 40~ 50명씩 방문하는 지방교도들이나 사회 인사들을 접견하고 있다. 매일 오후면 방문객과 함께 계룡산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지방의 교세 현황이나 개인의 공부 방향 등을 듣고 직접 법문을 내리기
교화
원불교신문
1978.08.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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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팔근 회장>원불교 교수협의회 제1회 수련대회 및 정기총회가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중앙훈련원에서 개최되어 9개 대학에서 43명이 참가했다.첫 날인 22일 오후 5시 가진 수련대회 결제식에서 본사 김정용 사장은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학문의 연구에 앞서 인간됨이 필요한 것이니 우리가 이렇게 사서하는 고생은 원만구족하고 지
교화
원불교신문
1978.08.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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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얼 새 슬기」로 뭉쳐진 원불교 대학생 전국 연합회 창립총회가 전국 39개 대학 1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8월 4일 중앙훈련원에서 개최되었다.「조화와 혁신, 전통과 창조」를 바탕으로 회원 상호간의 인격도야와 원불교 청년문화 창달을 통한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앞장설 것을 목적으로 하고 창립된 원불교 대학생회는 2년간이 산고의 기간을 거치면서 행사만도 6
교화
원불교신문
1978.08.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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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총부에 도착하니, 큰 어른님들(?)은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허전하였다. 부산교구 대법회 관계이겠지 하고 돌리는 마음이지만 역시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점심 식사 후 총부 각 기관을 방문하고 원광대 캠퍼스를 구경하고 동산선원에 당도하니 평소에 그렇게도 뵙고 싶었던 훈타원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작년 삼동원에서 뵈온 후 늘 한 번
교화
최봉은
1978.06.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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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들어 5회째 맞이하는 졸업반 훈련. 특히 이번부터는 장기간의 훈련으로 변모되면서 천여래 만보살의 배출을 예견하시고 직접 터를 정해주신 정산 종법사님의 간절하신 유촉이 받들어지게 되었나 보다. 그동안 대산 종법사님과 교단 원로 선진님들의 끊임없으신 숙원으로 계속되다가 원기 63년 5월을 계기로 그 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곳에 오던 날 이제야 정산 종
교화
원불교신문
1978.06.25 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