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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변하면서 우리들의 종교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부모 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빈곤을 벗어난 우리들의 생활엔 부모 세대에서 절실했던 생활고 해결을 위한 간절함이 없듯이 종교생활도 그렇게 간절함이 없는 신앙생활로 변해 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각 지역에서...
교화자의 삶
박혜원 원무
2015.09.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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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교화활동은 나부터 감사·보은하는 생활을 실천하는 데 있었다. 그런 뒤에야 동료들과 서로 화합하고,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상생의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원불교 마음공부 확산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함께하는 학생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 감사 발견하기, ...
교화자의 삶
박혜원 원무
2015.09.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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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96년 4월 원무 사령을 받고 총부 교화훈련부에서 실시하는 신규 원무훈련에 참가했다. 훈련을 받으며 원무의 책임과 역할에서 "원무에게 권리는 없다. 오로지 책임과 의무만 있을 뿐이다"라고 한 원무단 단장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입교 10년차...
교화자의 삶
박혜원 원무
2015.09.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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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길 괴로운 길 헤매이다가 즐거이 이 법문에 들었나이다. 이 몸이 보살되고 부처되도록 나아갈 뿐 물러서지지 말게 하소서.' 원기85년 대각개교절에 신창원교당에서 입교식을 한 나는 이 성가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늘 흐트러지는 ...
교화자의 삶
박혜훈 원무
2015.08.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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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포리교당은 원래 26.4㎡의 초가집이었다. 군산 변두리 농촌지역에 개척교당을 신설하여 젊은 교도들과 함께 상시 훈련도량, 상시 기도도량으로 교화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했던 이진수 교무의 염원이 담긴 이곳을 우리는 '초당'이라 불렀다. 교당에 첫발을 딛었을 때...
교화자의 삶
곽제명 원무
2015.08.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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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급격한 물질문명의 변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간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사회윤리의 부재 현상을 빚었다. 이는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정부는 7월21일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을 시행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에 인성교육을 의무화 하고...
교화자의 삶
곽제명 원무
2015.08.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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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제명 원무 / 나포리교당 나의 현 근무지는 나포리교당에서 운영하는 (사)국제티클럽(이하 티클럽)이다. 티클럽에서는 차(茶)를 통해 인성교육, 예절교육, 차 문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활용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나포리교당에서는 원기95년부터 문화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차 문화를 통한 교화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에 티클럽과 연계하여
교화자의 삶
곽제명 원무
2015.08.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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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불교 나포리교당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국제티클럽'에서 교화를 도우며 원무활동을 하고 있다. 원불교와 인연은 원기81년 군산대학교 원불교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맺어졌다.군 제대를 하고 군산교당에 법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살고 있던 김제 집에서 버스...
교화자의 삶
곽제명 원무
2015.07.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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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신(新)나는 교화, 신(神)나는 훈련, 신(信)나는 공부로 교화대불공을 이루고자 서원했다. 이 서원이 17년 만에 입교연원 53명, 출가연원 3인을 배출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로 인해 교화단 3개를 창설하고, 단장활동을 14년 동안 하고 있으며, 원...
교화자의 삶
최선각 원무
2015.07.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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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병원 순교는 나에게 있어 숙명적 사명이다. 대종사께서는 "사람의 직업 가운데에 복을 짓는 직업도 있고 죄를 짓는 직업도 있나니, … 이 모든 직업 가운데에 제일 좋은 직업은 일체 중생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여 고해에서 낙원으로 제도하는 부처님의 사업이니...
교화자의 삶
최선각 원무
2015.07.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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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기독교인로서의 삶은 절대 신앙이었고, 나의 마음세계에 원불교가 창립되고부터는 43년 동안 잃어버린 참 나를 찾게 됐다. 그것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진아실현(眞我實現)의 기회를 얻게 된 거룩한 선택이었다.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명의 진리...
교화자의 삶
최선각 원무
2015.07.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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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무활동
교화자의 삶
최선각 원무
2015.06.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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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생활의 반을 원무로서 임했다. 원무 사령을 받기 전에도 마음공부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가장 큰 행복이자 남다른 비법으로 여기며 살았다. 교직을 신앙과 수행의 공간으로 생각하는 교도이자 교육자로 살려 노력했다. 원무가 되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면 딱히 ...
교화자의 삶
최도진 원무
2015.06.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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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무를 지원하며 세웠던 서원을 심고 때마다 간절히 염원했다. 그러던 중 교구 교사모임을 조직할 기회가 왔고, 사무국장의 도움으로 교구 내 교직을 수행하고 있는 교도들의 연락처를 파악하며 하나씩 준비해갔다. 반갑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법회출석만 하거나 출석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드디어 원기93년 10월, 대전충남교구 교사회가 창립됐
교화자의 삶
최도진 원무
2015.06.1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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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마음을 공부하는 곳이다." 이 한 마디의 선명함이 좋아서 교당에 다녔다. 유년·학생시절을 거쳐 청년회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언제나 그렇게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던 중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공부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입으로 떠들었던 그 말이 내가 해야 할 몫이란 걸 알게 된 순간, 답답
교화자의 삶
최도진 원무
2015.06.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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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꼭 원무를 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첫째는 교리해석을 편협하게 하여 현상에 치우쳐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바로잡아보려 함이었다. 그 일환으로 부산 서면에 '부산목요시민선방'을 개설했다.교단에서 공부 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선천의 공부법와 후천의 공부법을 구분지어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선천이 아닌 후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교화자의 삶
최봉은 원무
2015.05.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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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1]-----------------------------------'오직 무아봉공만 있을 뿐 교단으로부터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는 나의 소신이자 사실상 원무를 지원하게 된 동기다. 그...
교화자의 삶
최봉은 원무
2015.05.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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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원교당은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40만원이었다. 월세 중 진해교당에서 10만원을 부담하고 30만원은 내가 부담했으며 매주 수요일 밤 법회를 보기로 했다. 나는 용원교당의 교화의 기본 목표를 '반드시 성공하는 불공법'과 '무시선 무처선'으로 잡았다.그리하여 전지크기의 게시판을 교당 외벽에 설치하여 정전 '불공법'과 '무시선법'을 주단위로 교
교화자의 삶
최봉은 원무
2015.05.0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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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원 종사의 법하를 떠나 생업에 종사할 때도 언제나 마음 한편에 허전하고 못다 한 보은의 도리에 대한 아쉬움과 죄송스러움을 안고 살아 왔다.그런 관계로 원기85년 초에 지금은 퇴임한 김현 원로교무가 영산성지학교에 와서 서무과장을 해보면 어떠겠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영산성지학교는 정규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일을 도우라는 말씀이었다. 두
교화자의 삶
최봉은 원무
2015.05.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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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들에게 출가동기가 있다면 원무들에게는 원무 지원동기가 있다. 내가 원무를 지원하게 된 동기는 '오직 무아봉공만 있을 뿐 교단으로부터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나이다'라는 기도에서 시작됐다. 인연관계로 보면 구타원 이공주 종사와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서울 한남동 수도원에서 우리 회상의 법랑인 구타원 종사를 모시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구
교화자의 삶
최봉은 원무
2015.04.24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