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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연 4조의 마지막은 우(愚), 어리석음이다. 정전에서는 ‘대소유무(大小有無)와 시비이해(是非利害)를 전연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리석음’의 일반 사전적 의미는 ‘이치나 사물에 어두워 지혜가 부족함’의 뜻이다. ‘슬기로움’ 또는 ‘지혜’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하는 것이라는 정의에 대하여는 얼른 이해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의 교리적 해석을 더해 이해를 도와보려고 한다.‘대소유무’는 일
정전공부산책
김경일 교무
2021.11.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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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연 4조의 세 번째는 나(懶)다. 정전에는 만사를 이루고자 할 때에 ‘하기 싫어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게으르거나 행하기를 싫어함의 의미다. 세간의 일이든 출세간의 일이든 게을러서 실행이 없는 사람에게 어떤 성공과 성취가 있겠는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팔십 먹은 노인이라도 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인생이 쉽지 않고 수행이 녹록치않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면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 가다가 중도에 해찰하고 게으르고 자포자기하면 애초에 아니 감만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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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11.0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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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34장에서는 “우리는 변하는 이치를 보아서 묵은 습관을 고치고 새로운 마음을 기르며 묵은 제도를 고치고 새로운 제도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그 변화 가운데 불변하는 이치가 바탕해 있음을 깨달아서 한없는 세상에 각자의 본래 면목을 확립하여 천만 변화를 주재하며, 원래에 세운바 서원을 계속 실천하여 천지로 더불어 그 덕을 합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필자는 어린 시절 우리 고유 ‘전통(傳統)’은 지키되 ‘구습(舊習)’은 타파해야 한다는 말에 혼란을 느꼈었다. 무엇이 전통이고 구습인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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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도 교무
2021.11.0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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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연(捨捐) 4조는 불신(不信), 탐욕(貪慾), 나(懶), 우(愚) 네 가지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연이라는 말은 버릴 사(捨), 버릴 연(捐)자의 합성어다. 공부나 일에 있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마땅히 버려야 하는 조건들이라는 점에서 사연사조라고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 첫 번째가 불신인데 이미 앞서 다룬 진행 사조 신(信)의 반대되는 조건이므로 따로 더 더해서 설명할 것이 없을 것 같아 생략하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그다음은 탐욕이다. 탐욕은 ‘상도(常道)를 벗어나서 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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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10.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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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진행 4조의 네 번째, 마지막은 성(誠)이다. 성(誠)은 정성의 뜻이다. 정전에는 ‘간단(間斷)없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만사(萬事)를 이루려 할 때에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보통 사전적으로는 ‘거짓 없이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풀고 있다. 일이나 이치나 간에 정성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데 왜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매사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많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 일의 성취가 나의 삶과 어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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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10.0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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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진행 4조의 세 번째는 의(疑)다. 의(疑)란 의문(疑問)을 일으키는 것이다. 『정전』에서는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만사를 이루고자 할 때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원동력’이라고 한 것이다. 모르는 일이나 이치를 당해서 이게 뭐지? 왜 이런 거야? 하고 의문이 나지 아니하면 그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그래서 사리간 지혜공부를 위해서는 왜? 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 철학에서도 회의(懷疑), 의심을 품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라고 한다.어릴 적 대종사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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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9.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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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신(信) 다음은 분(忿)이다. 분심(忿心)은 용장(勇壯)한 전진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떤 일을 당하여 두렵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높은 기상의 마음이다. 이 분심이 있으면 없던 힘도 생겨나서 하고자 하는 일을 촉진시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떤 일에 믿음이 생겨 하고자 하는 의욕을 냈다가도 이런 저런 유혹에 마음을 뺏기거나 나태해 지는 것이 보통 중생의 모습인데 이럴 때 분심을 일어내어 용기 있게 한 걸음 떨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종사는 이 분심을 만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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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9.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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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팔조는 모든 일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여덟 가지 조건을 말한다. 팔조는 크게 진행(進行) 4조와 사연(四捐) 4조로 구성된다. 진행 4조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의 요소 4가지를 말하고 사연 4조는 진행을 방해하는 4가지 요소로서 버릴 사(捨) 버릴 연(捐)자를 써서 사연 4조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수행에 있어 삼학은 수레와 같은 것이라면 진행 4조는 원동기이고, 사연 4조는 그 추진을 방해하는 조건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 진행 4조는 신(信), 분(忿), 의(疑), 성(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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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9.0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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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삼학은 일원상진리인 우리의 본성을 본받아서 일상에서 활용하는 세 가지 공부법으로서 원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일원상 진리가 진공 묘유 조화의 한 덩어리인 것처럼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공부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뿌리다. 다만 셋으로 나누어 공부의 편리를 도모한 것뿐이다. 대종사께서는 삼학의 병진을 쇠스랑의 세 발로 비유하셨거니와 정산종사도 가마솥의 세 발로 비유하신 바 있다. 그러므로 수행에 발심한 사람들은 삼학 병진공부가 필수적인 것을 얼른 알아차려야 한다. 사람의 근기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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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9.0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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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작업취사는 삼학 가운데 세 번째로 마지막 강령이다. 작업(作業)이라는 말은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하여 업(業)을 짓는 것을 말한다. 취사(取捨)라는 말은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버리는 결단을 말한다. 삼학과 관련하여 말하면 온전한 마음 바탕위에 원만한 지혜를 갖추어 옳은 것은 실행하고 그른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실행공부다. 정신을 잘 수양해 수양력을 얻고 사리를 연구하여 연구력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실제 일을 당하여 마음을 사용할 때에 실행하는 힘이 없으면 수양과 연구의 힘이 수포로 돌아가서 실제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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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8.2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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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리연구는 지혜를 단련하는 공부다. 일과 이치를 연마하고 궁구해 안으로는 진리를 알아가고 밖으로는 삶을 복되게 열어가는 공부다. 이 세상은 한량없이 크고 넓어서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정해진 법칙을 따라 전개돼 있다. 그 법칙을 『정전』에서는 ‘일원상의 진리’라고 한다. 그 일원상의 진리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면 진공, 묘유, 조화다. 공, 원, 정이라고도 하고 ‘대소유무’라고도 한다. 앞서 이미 대강 공부한 내용들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대소유무로서 건설되었다’고 하고 ‘시비 이해의 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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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8.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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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리연구는 삼학(三學)공부의 두 번 째 강령이다. 정전에 ‘사(事)라 함은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이름하고 이(理)라 함은 천조(天造)의 대소 유무(大小有無)를 이름한다’고 했다. 사리(事理)는 불교에서 진리를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어서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사리에서 사(事)는 변화하는 현상세계라면 이(理)는 사(事)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진리를 뜻한다. 사(事)는 형상없는 진리의 나타남이라면 이(理)는 현상의 배후 이치다. 소태산은 정전에서 이(理)에 대해 대소유무라는 독특한 개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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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8.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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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현대문명은 한마디로 찬란하다. 과거의 문명은 자연 상태에 가까운 단순 소박함이라면 현대 문명은 고도화된 과학과 기술문명 덕택에 거대하고 찬란하며 복잡다단한 특징이 있다. 사회구조와 현상도 매우 복잡하고 인간관계도 전 세계에 걸쳐 복합 다중화가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정신은 살기위해서라도 항상 긴장되고 깊은 주의력에 늘 피곤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고 배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세상과는 비교가 안 된다. 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운명이다. 그렇지 않고 살기가 어렵게 구조화되어 있다. 여기에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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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8.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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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정신수양은 삼학(三學) 가운데 첫 번째 강령으로 정신을 잘 수양하자는 것이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국어사전에는 육체나 물질과는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또는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나 작용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흔히 정신이란 마음 또는 영혼 등과 혼재되어 애매하게 쓰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정전』(正典)에서는 정신에 대하여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라고 정의되어 있다. 정신은 마음 이전의 마음세계다. 그럼 무엇을 마음이라고 하는가? 마음이란 생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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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7.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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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대종사의 자력양성 실천조항들은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그만큼 대종사의 새로운 평등세상을 향한 혁세의지는 확고했다고 보여진다. 그 구체적 사례는 자력 있는 사람으로서 타력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에게 자력을 권장하는 덕목이란 이름으로 예시되었다. 첫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결함 없는 건강한 사람이 부당한 의뢰 생활을 구할 때에는 그 의뢰 생활을 받아주지 말도록 교시하고 있다. 가족은 물론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동령이나 구걸하는 경우 이들을 돕지 말고 스스로 일하여 먹고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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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7.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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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요의 첫 번째 항목은 자력양성이다. 모든 인류가 존재가치를 존중받는 평등 낙원 건설을 위해서는 먼저 자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아직 도움이 필요한 미성년 어린이나 또는 나이가 많은 노혼(老昏)한 늙은이나 병든 이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력을 공부삼아 길러서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힘 미치는 대로 자력없는 사람을 돕자는 취지다. 인권 평등의 근본 조건을 자력양성에 두고 그동안 개인의 자력신장에 장애가 되었던 사회 전반의 제도와 관습을 타파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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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7.0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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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요(四要)는 원불교의 핵심 교리강령 가운데 하나로, 따뜻하면서도 원만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요긴한 법이다.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 숭배 등 네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지(宗旨)인 법신불 일원상 아래 사은(四恩)과 더불어 신앙문에 해당한다. 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밟아야 할 도리라는 뜻으로 인도상(人道上) 요법(要法)의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생물적 욕구를 지향한다. 인간 역시 본능적인 욕망을 추구하게 되므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삶의 일면을 피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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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6.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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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지금까지 사은의 내역인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법신불 일원상은 원불교 교리의 으뜸가는 종지(宗旨)다. 그래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수행의 표본이 된다. 일원의 진리는 말과 글로 그 적실함을 다 드러낼 수 없으나 강연히 말하자면 만유(萬有) 존재의 본원(本源)이다. 즉 만유의 일체 존재는 다 일원상 진리의 나타남이라는 것이다. 사은(四恩)의 교리는 만유의 현상적 실 존재를 네 가지 범주의 강령으로 나누어 나와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신앙(信仰)의 길을 삼은 것이다.대종사께서는 천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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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6.2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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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법률은에 있어서 법률의 실체적 주체는 종교와 국가다. 종교는 도덕의 주체라면 국가는 정치의 주체다. 그럼 종교와 국가, 도덕과 정치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종교는 국가보다 훨씬 근원적이다. 불교나 유교, 기독교 역사가 2천여 년을 넘는다. 이에 비해 국가의 수명은 그 몇 분의 일도 안 된다. 그럼 종교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불교에는 서가모니불이 있고 기독교에는 예수가 있고 원불교에는 소태산 대종사가 있다. 종교는 성인(聖人)의 깨달음으로부터 기원한다. 깨달음은 마음과 자연(自然)의 원리로부터 얻게 된다.
정전공부산책
김경일 교무
2021.06.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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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세상에 실로 우려되는 일들이 많다. 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부 높은 사람들의 비리와 갑질, 건강을 위협하는 식재료의 공급과 유통, 수용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주택과 공공시설물과 수용품들의 생산, 말 못 하는 동물과 미물 곤충과 초목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에서 생태사회가 가능할까? 그래서 대종사께서는 동포은을 사은의 신앙문에 편입하고 인생의 요도라고 하신 것 같다.동포은에서 내가 뽑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공정(公正)’이고 또 하나는 ‘자리이타(自利利他)’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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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무
2021.06.02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