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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편집국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뭉근한 한약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안심된다. 공간 속에 은은히 퍼지는 한방 향이 무언가 모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덕이다. 본래부터 한방은 몸과 마음의 호전을 함께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한 자리에서만 오롯이 90년을 넘겼다. 한약재들로, 한약으로, 이곳에 은은한 한방 향이 흐른 게 말이다. 원불교 산업활동의 효시이자, 원불교 한의약업의 문열이인 이리보화당한의원(이하 이리보화당)의 역사는 한 곳에서만 우직하게, 끊임없이 흘러왔다. 거슬러 가보면, 시작점에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고
100년 더The 공간
장지해 편집국장
2024.03.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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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편집국장] 내리는 이는 있었지만, 타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기차는 시간을 꼬박 지켜 섰다가 출발했다. 그건 오래된 약속이었다.어쩌면 간이역에 도착하기 전, 기차는 역에 다다를수록 선명해지는 플랫폼의 ‘한 사람’이 못내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차를 바라만 볼 뿐, 끝내 오르지 않았다. 플랫폼 위에 선 사람도, 그를 태우지 못한 기차도 왜인지 서로 아련함만을 주고받았다.간이역은 그 풍경을 ‘보통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한 자리에서 100여 년, 그동안 변화를 차곡차곡 겪으며 덤덤해졌기 때문일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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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편집국장
2024.02.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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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어릴 적, 겨울이면 엄마는 두툼한 솜을 꺼내 이불 홑청을 직접 갈아 끼웠다. 그때 이불의 바닥면부터 겉면 사방까지는 빳빳한 면(棉)이 둘러쌌고, 이불 겉면 가운데에는 꼭 부드럽고 화사한 비단이 놓였다. 얼핏 떠올려도 분홍, 노랑, 초록… 예뻤다. 그 예쁜 비단이 엄마의 손바느질을 따라 면과 서로 단단히 엮이면 이내 솜이불이 됐다. 보송하고 묵직한 새 이불 아래로 몸을 쏙 집어넣으면 따뜻한 겨울을 보장받은 듯, 포근했다.어렴풋한 어릴 적 기억 하나 더.그날 엄마는 한복을 해 입으러 간다고 했다. 한복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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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12.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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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누군가 노래 가사로 지어 불렀다. ‘쌀 한 톨의 무게에는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이 스몄고, 농부의 새벽이 숨었고, 우주가 들었다’고.들녘의 봄과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를 가득 품어 황금빛을 입은 벼 이삭이 새하얀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래서 예삿일이 아니다. 땅과 하늘, 거기에 바람과 비와 햇볕이 힘을 모아 키워낸 결실. 그 덕에 제아무리 잘 자랐대도, 이들은 정미소에 도착해 자신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껍질을 한 번 두 번 벗어야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유용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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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12.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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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예쁘게, 그리고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이 돌아왔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계절이 더없이 반갑지만 금세 지나갈 걸 아니 바쁘다. ‘이 예쁘고 맛있는 계절을 어디서 더 만끽할 수 있을까.’ 조금 엉뚱하게도 오일장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풍성한 계절의 수확물들이 있을 것이고, 또 그곳에서는 분명 보기만 해도 배부른 풍경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예상은 오일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적중했다. 조선시대 말에 시작됐다고도 하고, 1923년에 문을 열었다고도 하는, 뭐가 됐든 100년 역사에는 부족함이 없는 인월 오일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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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11.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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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투명한 물이다. 하지만 그 투명함에 햇빛과 바람이 더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하얀 빛을 내며 하나둘 떠오르는 결정(結晶)들. 몇 시간만 더 견디면 겨울이 아님에도 눈이 내린 듯, 흰 언덕이 여기저기 소복할 터다.그래서 하늘 천(天), 천일염이다. 하늘과 ‘함께’ 해야 결정을 보는 일이다 보니 볕이 뜨겁고 바람이 불어야 반갑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 어쩌면 염전은 ‘진공묘유(眞空妙有, 텅 비었으나 묘하게 존재함)’의 소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아닐까.80년 역사 잇는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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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9.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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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때마침 긴-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계획된 이동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비 오는 날 기차를 타면 왜인지 모를 낭만이 더해지니, 굳이 미룰 일도 아니다.그렇게 오른 길. 오늘 탄 기차의 종착역은 ‘서울역’이다. 오늘 향할 목적지도 ‘서울역’이다. 이날 서울로 향할수록 세차게 내리던 빗방울 수 만큼이나, 100년간 많은 사연과 사람이 오갔을 바로 그 공간이다. (본 글에서 다루는 서울역은 ‘서울역 구 역사’ 또는 ‘구 서울역’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편의상 ‘서울역’으로 통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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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7.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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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붓으로 써 내리는 글에는 반드시 그 글씨를 쓰는 사람의 성정이 담긴다. 그래서 서예(書藝)일 것이다. 글씨를 붓으로 쓰는 예술이라는 뜻의.하지만 이 예술은 붓만 가지고 완성할 수 없다. 벼루와 먹, 그리고 종이가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문방사우(文房四友), 문구에 필요한 네 가지 친구라고 했다. 인사동으로 발길을 옮기다 불쑥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어릴 적, 미술 시간 준비물로 벼루 하나, 붓 한 자루를 가져봤던 기억이다.‘인사동’은 언젠가부터 ‘전통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그리고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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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5.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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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여의도 태초에 비행장이 있었다. 아니 여의도는 애초, ‘비행장 그 자체’였다. 그 흔적을 찾는 일에 나선다. 시작은 여의도공원에서부터다. 공원 한쪽에 얌전히 놓인, 뭔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분명한 것 같던 작은 비행기 한 대. 과거 언젠가, 우연히 공원에 들렀다가 혼잣말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웬 비행기? 그것도 공원에?’ 그러니 오늘의 나섬은 그날의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8년 전, 무용함을 깨워낸 두 사건“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었어.”“아하?! 그래서 여의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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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4.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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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갈탄 화로 속에서 새빨갛게 달궈진 참이다. 덕분에 유연해진 쇳덩이 한 조각, 화로에서 꺼내어져 모루에 올라가더니 대장장이의 손에 들린 망치로 여러 번 두들겨진다. 몇 번의 망치질이 지났을까. 어느새 붉은 열기를 삭힌 쇳덩이는 익숙한 호미 머리를 보여준다. 단련(鍛鍊)이라는 단어의 비롯은 필시 대장간일 것이다. 애초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강하게 만든다는 뜻이니. 그렇게 매우 뜨겁게 달궈지고, 한껏 두들겨 맞고,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나야 비로소 쇠는 어엿한 ‘세상의 쓸모’가 된다.그러고 보면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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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3.3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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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오늘도 우직하게, 먼바다를 바라보고 섰다.변화무쌍한 바다 날씨도 있는 그대로 맞고, 그 앞을 오가는 크고 작은 배의 움직임도 그대로 본다. 등대가 하는 일은 주로 그렇다. 한자리에 곧게 선 채 바다를 바라보는 일. 그러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불을 밝혀 ‘길’이 된다. 올해로 117년째, 부산 영도등대는 부산항으로 향하는 선박들의 바닷길 안내자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곳의 비춤은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나만의 불빛’으로 소통표현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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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3.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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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꽉 붙잡았지만, 핸들은 자꾸만 왼쪽으로 휙 오른쪽으로 휙 꺾인다. 그렇게 흔들거리며 발을 땅에 뗐다 붙이기를 반복한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에 더해 외쳐지는 한 마디. “아빠, 절대 놓지마. 절대~!”하지만 어느 순간 단 두 바퀴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아이를, 아빠는 이미 저만치 멀어진 채 바라보고 섰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서도 세상을 향해 달리는 법을 터득하고, 부모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한다.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기까지의 과정은, 한 사람이 자력을 갖춰가는 성장 스토리와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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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2.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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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올해로 여든의 나이. 그 가운데 60년을 미싱과 함께 살았다.1970년에 문 연 가게도 50년 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아직 숨이 살아있는 100년, 120년 된 미싱이 있다. 이곳에서 웬만한 ‘몇십 년’을 가지고는 차마 고개 내밀지 못하는 이유다.그리고 그 모든 숫자가 증명하고 가리키는 하나. 바로 이곳을 지켜온 장태춘 한일미싱상회 대표다. 그만의 꾸준함과 성실함은, 120년 된 미싱부터 현대 기계식 미싱까지 고치지 못하는 게 없도록 만든 비결이다. 장 대표는 이를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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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3.01.0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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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남편은 떡을 싫어한다. 어릴 적, 집이 방앗간을 해서다. 시아버지는 방앗간 옆에서 솜틀집을 했다. 평생 뿌연 솜먼지와 100살 넘는 조면기(목화씨를 발라내는 기계)를 벗으로 두고 산 분이었다.이 이야기들이 ‘현재’에도 숨 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간이 사라진다면 공간에 담긴 이야기도 사라지는 게 수순 아니던가. 정작 시댁 식구들은 너무 익숙한 공간이라서,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듯했다. ‘건물을 팔아버리면 없어질 이야기’가 못내 아까웠던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찾아가 이곳에 새롭게 담아낼 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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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2.11.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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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아버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중에 회사 관두면 고향 내려가 살아야지.”이 말은 곧 ‘나, 돌아갈 곳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이 말이 혹 넥타이 속에 감춰진 무기였던 건 아닐까?’ 홍동우 ㈜괜찮아마을목포 대표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모 세대에게 ‘고향’은 위로와 위안의 다른 표현이니 말이다.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그렇지 못했다. 당연히 고향이 있지만, 왜인지 고향은 없다. 이들에게 고향은 대부분 지금은 사라진 어떤 아파트에서의 기억 같은 것들이라서, 위로 또는 위안과 거리가 멀다. 부모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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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2.10.0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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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2~3cm짜리 바늘로 무려 3만 땀이 지나야 한다.많은 바늘땀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앞서 치수를 재고 본을 뜨고 재단하고… 가봉까지 이뤄진 후에 3만 땀을 거쳐야 번듯한 양복 한 벌이 그 위용을 드러낼 수 있는 것. 손님과 잠깐 대면하는 것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한 번의 만남에 완성할 수도 없다. 맞춤 양복은 필연적으로 테일러(재단사)와 두세 번의 만남을 필요로 하고, 일일이 그의 손을 타야 한다. 종로양복점에서는 그 과정이 3대째, 100년 넘게 이어지는 중이다.Since 1916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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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2.08.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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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100년 동안 묵직히, 술 익는 냄새가 한결같다.일주일에 딱 300병. 요즘은 전통주도 기계화와 대량화가 일반화되었건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빚어 탄생시킨다. 고두밥을 찌고, 전통재래식 누룩과 일본식 누룩에 직접 만든 효모를 섞어 발효하고, 생산된 술을 병에 담아 스티커를 입히는 전 과정이 온전히 ‘수제’로 이뤄지는 이곳. 목도양조장의 100년은 그렇게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20년 창건, 1931년 창업목도양조장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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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2.07.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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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100년 세월을 품은 한옥에서 매월 공연이 열린다. 백년이라는 역사 때문일까. 사람들은 서로의 무릎이 닿게 앉은 약간의 불편함까지 공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그 순간, 오래된 역사가 현재 속에서 살아나 생생해진다. 부여 자온길이 담아내려는 꿈이 펼쳐지는 일면이다. 온기를 살리는 일자온길은 ‘스스로(自) 따뜻해지는(溫) 길’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제는 부여군 규암마을 일대를 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이 이름은 4년 전 박경아 ㈜세간 대표가 직접 지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죽었던 마을에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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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해 기자
2022.06.29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