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의 기쁨은 말로 다할수 없다"

▲ 푸른 하늘에 우뚝 솟은 인장바위.

"제가 출가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느꼈던 그 맑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처음 성불제중이라는 서원이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임을 느꼈을 때의 벅참을 다시 갖고 싶었다." 이는 김성현 교도의 7일간의 출가여행 동기다.

나 역시 한번쯤은 출가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출가서원을 세운지 16년. 조금은 무디어진 정진심을 다시 곧추 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안암교당 청년들의 날카로운 초발심이 보고 싶었다. 그 초심을 맛보기 위해 변산 원광선원으로 내달렸다.

선원에 도착했을 때는 출가여행 5일째. 출가여행자 24명은 변산의 직소폭포와 월명암을 산행중이었다. 예상시간보다 지연이 되고 있었다. 김제원 교무에게 전화를 거니 "지금 월명암인데 겨울 빙판길이라 굉장히 미끄러워 시간이 지체되고 있어요. 저녁식사 전에 도착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예상보다 길어진 겨울 산행. 그들을 빨리 보고픈 마음에 도착지인 제법성지로 향했다. 내변산 도로에는 잔설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었다. 제법성지로 향하는 매표소 입구에는 동장군을 상징하는 고드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고드름을 본 순간, 이런 강추위속에서도 출가여행 선객들이 제법성지 법당에서 새벽선을 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원광선원에서 도보로 새벽의 별빛을 맞으며 참선에 임한 그들의 기상이 놀라웠다.

▲ 출가여행에 참석한 선객들의 환호.

출가여행은 구도심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눈길을 걸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살얼음을 밟는것 같이 마음을 사용하라는 가르침이 그대로 전달된다. 제법성지에 도착하니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 햇살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렇게 한참 선객들을 기다리며 일원대도비, 봉래정사석두암터에서 기도를 올리고 나오는데 청년 2명이 차를 몰고 왔다.

그들은 1차 산행을 마치고 선객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차량으로 대기중이었다. 얼굴은 야위었지만 눈빛만은 빛나 보였다. 눈푸른 납자를 연상케 했다. 이번에 출가 서원을 세운 허석·채수한 교도. 왜 출가여행을 참석했는지가 궁금했다. 허 교도는 "구도심이다"고 답했다. 이번이 두 번째 출가여행인 그는 "출가서원을 세우고 원서를 쓰는 동안 과거를 많이 되돌아 보았다. 월명암에 갔을 때 길이 참 험했다. 처음에는 정산종사님께서 이렇게 험한 길인데도 대종사님을 찾아뵈러 매일같이 가셨을까 싶었다. 대종사님을 뵙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그 험한 길도 한달음에 가게 하셨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신심과 원력의 차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교역자로서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일 매일 변산성지를 산행했다. 마당바위, 천왕봉, 인장바위, 월명암 등 변산의 기운을 몸소 느꼈다. 출가여행 내내 도반들과 법정을 나누며, 선의 깊은 경지를 체험한 용맹정진의 향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채 녹지 않은 하얀 눈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음을 깨워냈다. 멀리서 푸른 하늘에 우뚝 솟은 인장바위가 그들의 말을 증명하듯 선명하게 들어왔다.

정진과 몰입의 프로그램

산행 후 선객들은 조촐하게 식사를 한다. 소식(小食)을 하며 인스턴트 음식은 금한다. 이는 수행을 위해서는 음식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김 교무의 지론이다. 그러므로 선(禪) 프로그램은 식사전에 짜여져 있으며 핸드폰이나 노트북 사용도 불가다. 김 교무는 "깊은 수행으로 들어가려면 2박3일 가지고는 안된다. 5~6일은 되어야 진경에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작년과 올해 6명의 출가자가 나왔다. 출가는 내가 권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느낌과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암교당의 7일간의 출가여행은 올해로 네 번째다. 변산·영산·익산 성지를 돌아 다시 변산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고 출가여행은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게 아니다. 법회출석 90%와 화요공부방 70%이상 참석해야 가능하다. 가이드라인을 확실히 정했다. 오로지 정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심화반이 형성된 셈이다.

▲ 선객들이 선(禪)의 진경을 체험한 봉래정사.

 


'참 나'와 만남, 그리고 맑은 눈물

저녁 정진은 염불과 108배로 이어졌다. 절을 마친 어두운 법당. 적막함속에 누군가가 흐느껴 운다. 그 울음은 주위의 업장을 녹이듯, 여기 저기서 울음소리가 섞인다. 이어 소득 발표를 나눴다. 염불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는 오은진 교도.

그는 "서산님 강의를 통해 평소 가보지 못한 그 자리. 그전에 생각했던 성불제중이라는 서원이 되새겨졌다. 나라는 존재가 사량으로 살면 그것은 고아나 다름없다. 이제 잃어버린 부모를 찾은 것처럼 부자가 된것 같다. 선을 하면서 내내 행복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번뇌와 나라는 상이 보이고 원망과 자책하는 괴로운 마음도 절반을 차지했다. 내가 공부할 소중한 마음들이었다. 내 마음의 고향이 어디인줄 알고 나니까 의두요목이 너무 너무 시원했다. 예전에 자꾸 사량으로 스승님과 법을 저울질 했다. 여우가 되어 아는게 병이되고 공부는 깊어지지 않았다.

염불을 하면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문구가 많이 와닿았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나왔다.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다보니 너무 행복하고 든든하다. 법문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다시 손잡아준 교무님 덕에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중도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그는 출가여행을 통해 시들했던 신심과 서원이 살아나고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들이 열렸다. 세속인의 눈으로 보기엔 보잘것 없는 개인이지만 부처님의 세계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낙원으로 이끌어갈 주춧돌이요 희망임을 자인했다.

허유미 교도도 "이전에는 훈련을 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역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전의 원망심과 후회에서 비롯된 눈물이 아니라 참회와 진정한 반성에서 흘리는 맑은 눈물이었다. 저는 항상 뭔가 부족하고 더 갖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바닷물을 마시듯이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는 사람이었다. 이번 출가여행을 통해 자성자리와 참나에 대해 많이 느끼게 되었다. 이 자리를 내가 떠나지 않아야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삿된 욕심에서 비롯된 행복자가 아닌 참나의 자성자리를 찾아가는 진정한 행복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표현했다.

법당은 이내 훈훈해졌다. 감동과 법정이 서로를 진급시키고 있었다. 김 교무는 "대종사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사은의 은덕이라고 했다. 진리는 늘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의 내면에 있다. 하려고만 하면 진리가 협력해준다. 간절히 원하면 도와준다. 수양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누가 뺏어갈 수도 없는 그 맛을 놓치고 산다면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이러한 훈련과 정진의 풍토가 계속 이어지고 정착되기를 염원한다"고 덧붙혔다.

염불을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데 밤하늘 에 반달이 선명하다. 옆에 있던 백소영 교도가 "출가여행 올 때는 초승달이었는데 벌써 반달이 됐어요"라며 해맑게 웃는다.

 

▲ 소나무 사이로 내비친 겨울햇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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