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73: 선정에서 수행을 해야 하는데 왜 분심(忿心)이 필요한가요?

답: 분심이라는 말을 접해보면 분(忿)자에 대해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성낼분 자를 썼느냐는 것입니다. 옥편에서 찾아보면 〈정전〉의 분자는 내용상으로 분낼 분(憤)자 여야 하는데 성낼 분(忿)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사용의 근거는 '선의 요체'설법집인 〈선요〉에 있습니다. 〈선요〉에는 신(信), 분(憤), 의(疑) 셋만 씌어 있는데 여기에는 분낼분(憤) 자로 되어있습니다. 선요는 고봉스님이 도를 깨친 후 20여년간 설법했던 것을 시자 지정(持正)이 기록하고 직옹거사가 총 29장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수심정경〉에는 신·분·의·성과 불신·탐욕·나·우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정전〉의 성낼분 자로 써주셨습니다. 〈수심정경〉은 강증산 선생이 보았고. 강증산 선생의 외동딸 강순임씨를 통해 원불교의 정산종사에게 전해졌다는 경전입니다. 대종사님 계실 때는 한학을 도도하게 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수심정경〉은 전체가 한문인데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시는 분들이 분낼분 자와 성낼분 자를 구분하지 못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대종사님의 원대한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처인데 부처인 줄도 모르고 중생같이 행동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냄이 원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분한 마음은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며 성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자동차 운전하는 것으로 비유하면, 자동차가 달려가기 위해서는 엔진이 있어야 하는데 엔진은 신(信)이며, 기름은 분(忿)입니다.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이 의(疑)며, 액셀러레이터를 계속해서 밟고 있는 것이 성(誠)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불신은 엔진이 고장 난 상태이며 탐욕은 기름에 불순물이 많아진 결과니, 예를 들어 불공보다 잿밥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이를 탐욕이라고 합니다. 나태는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놀고 있는 것이며 우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고 브레이크를 밟는 것을 말합니다.

왜 참선을 공부해 가는데 분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심에는 두 가지 뉘앙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밖으로 향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분심과 안으로 향하는 분심입니다. 밖을 향한 성냄은 분통이 되어 병으로 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향한 성냄은 분발력이 되어 수행의 추진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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