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터에서 오래된 미래를 보다
통합·회통·수용의 시대 사상 건져 올려

▲ 실상초당 터 입구의 감나무.


실상초당 터


지금의 '봉래정사' 기도실 우측, 석두암 터 진입로에는 늙은 감나무 몇 그루와 돌멩이들이 제멋대로 뒹굴고 있다.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힘든 그 빈 터에서 오늘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를 본다.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있는 그 빈 터의 풍경너머로는 아직도 소태산의 숨결이 가슴 서늘하게 느껴지는데, 우리는 지금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다시 찾아 가야 할 우리의 미래를 그 터에서 생각한다.

처음 변산에 입산한 소태산은 수제자 정산이 상좌로 가 있는 월명암에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각지의 제자들이 찾아와 따로 집을 마련하여 모시기를 간청 하자 산 아래 실상동에 배 씨의 집(대지는 실상사 소유임) 두 칸 초옥과 근방의 논밭 경작권을 매입한다.

그리고 이만갑 선진의 희사로 방 한 칸을 더 증축하여 삼 칸 초옥을 완성하고 그 해 섣달 무렵 거처를 옮기니, 그 곳이 바로 실상초당이다.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이 전부인 이곳에서 당시 송적벽과 김남천 그리고 김남천의 딸 김혜월과 외손녀인 이청풍은 산전(山田)을 일구며 소태산을 시봉했다.

교단사에서 가장 궁핍한 시절이었던 그 누추한 살림에도 각지에서 제자들은 초당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어 생불님이신 소태산의 법설에 환희용약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다.

소태산은 수양에 전력하며 심산궁곡을 찾아온 그들을 위해 조석으로 법을 설하니 당시 법문 요지는 '관심입정'과 '견성성불' 하는 내용이다.


교강을 선포하다

산중에 묻혀 은거함에도 소태산의 비범한 인품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세상에 나가 구국운동 할 것을 권하지만 소태산은 "태평양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몽둥이로 때려서 몇 마리나 잡으며, 얼마나 큰일을 하겠느냐. 태평양 고기를 잡으려면 먼저 큰 그물을 장만해야지. 그와 같이 나는 천하를 구원할 그물을 만들고 있다"고 응수하곤 했다.

원기5년 4월 실상초당에서 소태산은 마침내 법 그물의 씨줄과 날줄인 '교강 선포'를 했다.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을 새 회상 기본 교리의 강령으로 공식 발표한 것이다.

소태산은 이미 원기4년 금산사에서 일원상을 그려 보이며 신앙의 종지를 구상한 후, 변산에서 이를 좀 더 구체화 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일원상을 종지로 한 교강 선포'를 한 것이다.

창건사에는 교강을 '매우 간명하고 원만하여 모든 신자로 하여금 조금도 미혹과 편벽에 끌리지 아니하고 바로 대도에 들게 하는 새 회상의 기본 교리'라고 기록한다.

이 기록의 행간에서 우리는 여러 대중에게 어찌하면 불법을 더 쉽고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전해줄 것인가를 고심했을 청년 대종사의 간절한 염원과 지극한 원력을 느끼게 된다.

실상초당은 또한 소태산이 일 년 정도 거처하시는 동안 '중생이 본성을 잃고 방황하여 고생하다가 다시 자성을 회복한다는 내용'의 '회성곡'을 지었으며, '노부부의 실지불공법'에 대한 법문 등을 설한 역사 깊은 터다.

어린 나이에 실상초당에 놀러 다니며 소태산을 뵈었다던 이곳 칠보대기 할머니가 생각난다.

지난 해 열반하신 할머니는 당시 그곳 사람들이 외우던 노래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흥얼거리며 놀았다고 회상했었다. 구십 고령인지라 그 내용도 다 잊었다는데, 할머니가 흥얼거린 노래가 혹여 '회성곡'의 어느 한 구절은 아니었을까


변산의 돌과 바람과 향기 속에서

모든 법은 시대적 산물이다. 그것이 한 성자의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법은 곧 그 시대의 환경과 풍토와 문화적 여건 속에서 꽃이 핀다.

소태산이 일차 금강경을 보시고 불법에 연원을 댄 후 본격적으로 불교를 접하고 연구한 시기는 변산시대였다. 실상사를 비롯해 월명암, 내소사, 개암사 등의 4대 고찰이 자리한 변산이야말로 불교의 실상을 접하기에 적격이 아닌가.

이미 불법이 무상대도임을 알고 장차 그 법을 주체삼아 새 회상을 열 것을 계획한 소태산이 수제자인 정산을 월명암 백학명선사의 상좌로 보낸 것은 바로 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파악하는데 그 뜻이 컸을 것이다.

당시 같은 고향 사람이자 사상적으로 통하는 바가 많았던 백학명 선사와의 교류는 새 회상의 교법제정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태산은 〈정전〉 '교법의 총설'에서 모든 사상과 모든 종교의 교지를 통합 활용한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를 지향한다. 그래서 소태산의 사상과 교법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은 통합, 회통, 수용정신이다.

변산반도의 지평선너머로 소태산은 하나의 세계로 열려가는 신천지의 미래를 바라보며 한 올 한 올 법의 그물을 엮었을 것이다.

'매창'을 키우고 '석정'을 길러낸 변산의 그 바위와 바람과 바다의 향기 속에서 돌아오는 세상의 통합과 회통과 그리고 수용의 시대적 핵심 사상들을 건져 올리며….

▲ 봉래정사 가옥구조.

<변산원광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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