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섣달 , 혹독한 추위 속 피고 지고 또 피는 꽃

▲ 절집과 하나로 어우러진 홍매화, 그대로가 자연이다.
▲ 금둔사 납월매. 엄동설한인 섣달 그믐에 꽃망울을 틔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벌교읍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금둔사 차밭이 싱그럽다.

봄을 마중하러 간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벌교읍이 내려다보이는 금전산 자락에 작은 사찰 금둔사(金芚寺)가 있다. 그 곳에 봄소식을 전하는 홍매화가 만개했다.

3월4일 찾은 금둔사. 남아있는 겨울의 흔적을 지우기엔 그리 만만치만 않은 듯 여전히 바람 끝이 칼칼하다. 먼 길 달려온 객의 마음을 분홍빛 매화가 은은한 향으로 먼저 물들인다.

금둔사 홍매는 엄동설한 납월에 꽃망울을 틔운다고 해서 '납월매'라고 한다.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을 이른다. 금둔사 주지 지허스님이 직접 덖은 찻잎을 우리며 금둔사 납월매를 소개한다.

"울력 12월은 한 겨울 이지요. 한 겨울에 피는 매화가 납월매입니다. 매화는 청매, 홍매, 설매(백매), 납월매가 있어요. 뼈에 사무치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핀 납월매가 제일 향이 높습니다. 오전 9시경에 아주 진한 향을 전하지요."

섣달 모진 추위에 피는 꽃, 금둔사 홍매 납월매는 이렇게 1월에 꽃망울을 터트려 3월 말까지 피고지고를 거듭하면서 붉은 자태를 뽐낸다. 이곳 홍매가 질 무렵 섬진강변의 백매가 꽃을 활짝 피워 봄기운을 널리 퍼뜨린다.

금둔사 납월매는 토종 매화다. 꽃을 피우는 방식이 다르다고 지허스님은 말한다. "납월매는 일시에 꽃을 피워 한꺼번에 지지 않지요. 꺾이고 비틀린 가지에 겨우 손톱만한 꽃 몇송이가 듬성듬성 피었다가 추위에 사그라지면 다시 몇 송이가 피고 지고, 또 다시 몇 송이가 피고 집니다."

피고지고 피고지고 또 피는 꽃, 금둔사 납월매는 찬 눈 속에서 꽃을 피우며 혹독한 바람을 이겨낸다.

지허스님은 1984~1985년 낙안읍성 고매에서 씨앗을 얻어와 금둔사 곳곳에 심었다. 싹을 틔운 건 고작 6그루. 음력 섣달, 꽃은 피었는데 아직 날이 풀리지 않아 벌도 나비도 활동하지 않는다. 꽃가루를 실어 보낼 수 없으니 납월매는 열매가 아주 귀하다. 제일 열등한 나무에서 3월에 피는 꽃이 오랜 노력 끝에 발아했다. 열매가 부실한 납월매는 개량종처럼 매실을 얻기 위한 꽃이 아니다. 그러니 오히려 꽃잎이 야무지고 향이 깊다. 
 

 

▲ 금둔사에 납월매를 심었다는 지허스님. 스님은 전통차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다.

 

▲ 금둔사엔 대문이 없다. 매향 그윽한 찻잔이 방문객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된다.

 

▲ 반농반선(半農半禪)하는 금둔사 스님의 작업장인 텃밭.
지허스님의 매화사랑이 문득 궁금해진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항상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지요.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이 매화, 치자꽃, 목백일홍이었어요. 내가 출가한 절이 선암사인데 그 절에도 매화가 있어 좋아하게 됐고, 금둔사를 복원하면서 매화를 많이 심었어요. 아마 전국에서 매화나무가 제일 많을 거예요. 100여 그루 되니까."

지허스님은 매화는 고행을 하는 수행자와 같다고 말한다. 부귀와 안락을 버리고 고행 길에 들어선 수행자의 꽃, 그래서 중국의 황벽시인은 "뼈에 사무치는 추위가 아니면 매화향이 코를 찌를 리가 없다"고 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매향은 수행자에겐 아름다움이면서 채찍이다.

부처님 금, 싹 돋을 둔, 부처님 싹이 돋는다 해서 불려진 금둔사. 그 곳에선 수행자를 닮은 꽃, 납월매가 깊은 향으로 제일 먼저 봄꽃을 피운다. 이내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 마음에도 금싹이 돋는다.

 

 

▲ 비석처럼 네모반듯한 몸돌에 불상이 조각돼 있는 금둔사지 석불비상, 보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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