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도광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논 설 위 원 )

일류가 되기 위한 희생은 당연한 것인가? 올해에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탁월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어 '올해의 KAIST인상'까지 받은 박모 교수(54세)도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재수강제도를 비롯한 무한경쟁,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다. 이 학교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호소한다. 무한경쟁 시대에 최고가 되기 위한 지나친 성과위주의 교육이 대학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박혀 있다.

교육의 위기는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대변한다. 긴장과 불안, 고통, 죽음 등의 한계상황에 부딪혔을 때 이를 넘어설 수 있는 학습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인격을 도야하는 교육과정이 결핍되어 있다. 한 개인의 문제는 가정과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집단 증후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개인은 더 이상 파편적 존재로 머무를 수 없으며, 사회 심리현상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외형적 성과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내면적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자기 상실로 인한 소외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인간의 소외현상과 도덕성 상실은 우리의 삶을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하고 있다. 인간성 상실의 근원적인 병이 치유되지 않는 한 우리의 사회가 건강하고 건전해지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의 위기는 현대 사회의 병폐와 인간의 실존적 위기를 치유하려는 의지와 실천을 통해서만 극복이 가능하다. '전인적(全人的) 인간의 구현'이라는 인문학적 교육의 본령을 유지하면서 현대 사회의 여러 난제에 실천적으로 대응해야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학의 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은 몸과 감정을 조절하는 중심이며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따라서 나 자신의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와 너, 나와 사회,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더불어 존재'하는 필연적 공존의 존재로 인식하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마음의 깨침과 생명에 대한 조화적 세계관을 배울 때, 구제역으로 인한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을 산채로 묻는 비극적인 행위들은 사라질 것이다.

또한, 이성중심의 교육에서 이성과 감성과 덕성의 조화를 이루는 교육이 요청된다. 초·중·고등학교에는 진학상담은 중요시 되나 인성상담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학교에는 취업상담과 취업프로그램은 있으나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없는 실정이다. 지성(IQ)중심의 고등학교 교육은 몇 명의 학생들을 명문대를 합격시켰느냐에 따라 비례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창 성장할 시기에 있는 어린 학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정규수업을 받은 이후에도, 밤늦게 교실에서의 보충수업 혹은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풍부한 감성(EQ)을 갖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하기 어렵다. 더욱이, 예리한 이성은 자신과 상대에 대한 칼날이 되어 상처를 입히기 십상이다. 성과위주의 교육은 도덕성(MQ)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마저도 성적 또는 생활기록부를 조작하는 사례는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덕성에 대한 인문적 이해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응용하여 초·중·고 교육기관, 대학과 사회교육기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의 지향점을 새롭게 전환하여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가르쳐 상대를 배려하는 성숙한 인간을 양성하는 교육의 장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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