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마음'에 관한 관심이 대두되고 있다. 더불어 학계의 다양한 이론이 마음공부와 결부되어 보도되고 있다.
본지에서는 4월을 맞아 '깨달음과 소식'이란 주제로 1주 영성에 대한 조명, 2주 깨달음과 과학, 3주 우체부-편지 배달자, 4주 깨달은 사람과의 만남을 담는다.



대종사 봉래정사에서 백학명 선사와 간혹 격외(格外)의 법문을 즐겨했다. 이런 가운데 이청풍이 백학명 선사의 시험을 통과하는 장면이 〈대종경〉 성리품에 나온다.

백 선사는 이청풍에게 십삼세 각(十三歲覺)이라고 견성인가를 내린다. 대종사는 그 광경을 보고 "견성하는 것이 말에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하나, 앞으로는 그런 방식을 가지고는 견성의 인가(印可)를 내리지 못한다"고 선언 하기에 이른다.

마음과 뇌의 관계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견성인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현재 인지과학이나 인지심리학, 신경심리학, 뇌과학 등이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수도인의 견성 성불(見性成佛)이라는 것이 과학적인 도구에 의해 증명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흐름에는 '마음이 뇌를 만드는가, 뇌가 마음을 만드는가.', '의식적 경험에서 나타나는 마음과 뇌의 관계는 무엇인가'의 물음에 답해야 한다.

어려운 질문이다. 현재 뇌과학에서 힘을 얻고 있는 가설은 '마음은 뇌의 작용에 의한다'는 것이다. 즉 깨어나는 마음이란 깨어나는 뇌이다.

경북대의대 신경정신과 강병조 전 교수는 어느 발표에서 "마음은 뇌와 몸의 통합적 활동을 통해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의식, 정서, 욕구, 기억 등의 영향하에 바깥 환경의 외적 자극과 신체 내부의 내적 자극을 받아들인 다음, 뇌의 인지활동을 거쳐 행동으로 표출하는 일종의 '정보처리 과정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유물론적 입장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마음은 실체를 가진 물질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뇌의 기능이 마음이라는 현대의학의 결과를 유물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뇌는 자주 바뀐다. 살아있는 뇌는 물질만이 아니고 새로운 것이 생기는 창발적(創發的) 존재다.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다. 뇌세포를 다 모았다고 뇌가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뇌과학은 유심론도 유물론도 아니다.

사람에게 기억은 눈을 통해 뇌 속에 들어가서 뉴런 즉 신경세포에 시냅스 어딘가에 저장된다. 그 기억들이 모두 재생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치게 되면 기억장애인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 우리 두뇌는 두려움과 공포에 민감하여 충격적인 사건을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뉴런(neuron)은 신경계의 구조적·기능적 단위. 신경 세포와 거기서 나오는 돌기를 합친 것으로, 자극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 시냅스(synapse)는 신경 세포의 신경 돌기 말단이 다른 신경 세포에 접합하는 부위를 말한다. 이곳에서 한 신경 세포에 있는 충격이 다음 신경 세포에 전달된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가?

우리의 뇌에는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몸에 지각된 모든 정보 등을 신경세포를 통해 수집하여 시냅스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신경세포와 정보를 교환하면서 마음이 생겨난다.

인간의 뇌는 최소한 100억 개 이상의 뉴런(신경세포)이 있다. 뉴런은 축색돌기, 세포체, 수상돌기로 이뤄졌는데 들어온 정보들이 시냅스(신경세포 말단)를 통해 전달되어 공유된다. 우리의 모든 정신활동(마음)은 시냅스 간의 작용이다.

명상 통해 뇌 변화, 그리고 깨침

선(禪)에 들면 뇌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 입정상태가 길어지면 우뇌의 활동이 줄고 좌뇌가 활성화 된다. 즉 명상은 긍정적인 감정과 행복감 동정심이 강화된다. 면역력이 증가되며 외부의 자극에 뇌의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명상을 자주 오래하게 되면 통찰력이 생기는 등 작은 깨달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깊은 좌선이나 입정을 해 본 이들은 마음 공부의 선수라 할 수 있다. 수행자나 공부인들이 어떻게 마음과 뇌를 단련시켜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일반인들은 쉽게 평정심을 찾고 행복해지는 법을 얻을 것이다. 깊은 명상과 수행을 하는 수도인은 명상 속에서 놀랄 만큼 강력하고 침투력이 강한 감마뇌파를 발생시키는데, 이때 신경계의 광범위한 영역이 초당 30~80회의 통일된 펄스(pulse)를 나타내 마음의 광범위한 영역을 통합하고 하나로 묶는다. 신경심리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허버트 벤슨은 "티베트 승려들이 추운 환경에서도 온몸을 드러내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이런 수행을 통해 스스로 몸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2004년 인도의 다람살라로 온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심리학자들에게 달라이라마는 '마음도 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화두를 던졌다. 거기에 참석했던 신경외과 의사는 '뇌의 물리적 상태가 마음의 상태를 일으키는 것이지, 마음이 물질에 영향을 주는 인과관계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서양 의학계에서는 최근 '성인의 뇌도 학습이나 명상수행을 통해 질적, 양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신경가소성(neural plasticity, 神經可塑性) 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동경대학 히라이(平井)교수는 '참선의 뇌파적 연구-집중성 긴장 해방에 의한 뇌파 변화'라는 논문에서 30년 이상의 선 수련 경험이 있는 14명의 선승을 대상으로 뇌파의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뇌파와 정신전류 현상(GSR)에 의하면 첫째, 눈을 감은 평정의 상태에서 출현하는 뇌파인 알파파가, 눈을 뜨고 생각에 몰두하는 참선 중에 현저하게 나타난다. 전문적인 선승들의 경우엔 참선 개시 후 50초 정도에서 뇌파가 평정상태로 변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타파가 나타나나, 이것은 수면 중에 나타나는 시타파와는 다르다. 이것은 참선에 숙달된 선승에게서만 볼 수 있고, 실험 중에 선승들은 졸고 있지 않은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셋째 참선 종료 후에도 여음이 남아 알파파가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넷째 참선 도중에는 수면의 상태와 달리, 외부로부터의 자극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그 정도가 보통 깨어있을 때보다 더 강하다.

이같은 실험은 수면 상태와 같은 평정한 뇌파형을 발생하면서도 자극에 대해서는 항상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의식은 휴식하고 있으면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증명된 것이다.

무시선법에서 많이 사용되는 동정일여(動靜一如)는 동과 정이 완전히 차별없이 하나가 되어 사람의 마음 가운데 일체화되는 상태를 말한다. 정이란 잠을 자듯 고요한 상태이고 동이란 의식이 긴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서로 모순되는 상태의 공존은 히라이 교수가 증명한 것처럼 측정한 뇌파를 보면 금방 납득할 일이다. 〈정전〉 좌선의 공덕 10가지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선 공부의 위대성이 증명되고 있다.

선을 통해 집중상태에 도달하면 집중력을 레이저빔처럼 고도로 향상시킬 수 있다. 집중상태는 통찰력의 원천이다. 하나의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대상에 주의 집중을 유지하는 단계, 즉 선정에 들면 대상에 강렬한 흥미를 가지는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좀 더 깊은 선정에 들면 마음의 평정과 만족, 이어 의식이 통합되는 것을 경험한다. 잡념이 사라지고 무아(큰 나)를 체험하게 된다.

변산에서 대종사의 '앞으로는 그런 방식을 가지고는 견성의 인가(印可)를 내리지 못한다'는 선언을 받아 들인다면, 현대사회에서 깨달음의 인가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견성인가의 전통이 법위사정을 통해 이뤄지는 지금의 모습에서, 깨달음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시기도 멀지 않았음을 예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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