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81: 원불교에서 무정물에도 식(識)이 있다고 보십니까?

답: 유정물(有情物)은 그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의 변화를 하기 때문에 각기 생(生)의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바위나 흙과 같은 무정물에게도 과연 생의 요소가 있을 것인가를 문제 삼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원불교에서는 우주내 일체 만상 유정과 무정이 모두 조물주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지수화풍 사대의 모임으로 인연하여 유정, 무정이 다 각자 습관의 종자를 따라 그의 기능을 발휘하여 남에게 유익도 주고 해독도 주는 주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대종경〉 천도품 15장에 "세상의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다 생의 요소가 있으며 하나도 아주 없어지는 것은 없고 다만 그 형상을 변해 갈 따름이니, 예를 들면 사람의 시체가 땅에서 썩은즉 그 땅이 비옥하여 그 근방의 풀이 무성하여질 것이요, 그 풀을 베어다가 거름을 한즉 곡식이 잘 될 것이며, 그 곡식을 사람이 먹은즉 피도 되고 살도 되어 생명을 유지하며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본다면 우주 만물이 모두 다 영원히 죽어 없어지지 아니하고 저 지푸라기 하나까지도 백억 화신을 내어 갖은 조화와 능력을 발휘하나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러한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우주 만유가 다 같이 생멸 없는 진리 가운데 한량없는 생을 누리는 것을 깨쳐 얻으라"라 하시며 무정물과 유정물을 동등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 원불교의 교리의 특징입니다.

물 연구가인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의 내용을 보면 무정물에도 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을 냉동시켜 현미경으로 결정사진을 찍는 방법으로 물을 연구하다가 물에게 글자나 음악을 들려주는 독창적인 실험을 도입한 결과 물 결정이 그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여 유형별로 묶은 것입니다.

실험의 결과는 물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와 같은 언어를 보여주거나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과 같은 명곡을 들려주었을 때 선명하고 아름다운 육각수 형태의 결정이 나타났으며, 반대로 '망할 놈, 죽여 버리겠다, 미워해'와 같은 악한 말과 헤비메탈과 같은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산만하고 불투명하며 어두운 형태로 나왔습니다. 또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거나 생태계가 살아있는 청정한 물의 결정이 아름답게 나타나는 반면, 공장폐수나 생활하수로 오염된 물은 그렇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을 토대로 하나의 가설을 도출해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물이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광일 교수 /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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