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진 교도·여주교당( 논 설 위 원 )
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기준은 그 사회의 교도소에서 죄수를 대하는 방식과 도축장에서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한 사회에서 어린 미혼모를 대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 세 가지 측면에서 OECD 선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적인 경제 수치는 화려할지 모르나 사회적 약자와 생명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야만적일만큼 가혹하다.

한 제자가 중학교 3학년 때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 잠시 귀국하여 만난 적이 있다. 대화를 나누며 학생 입장에서 그 곳 교육과 한국 교육에 관해 느낀 바를 듣게 되었다. 그 제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으로 처음 든 사례가 학교에서 미혼모 학생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 곳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급 학생 중 임신한 여학생이 생겼다고 한다. 한국 같으면 마치 큰일이나 난 것처럼 요란스러웠을 텐데, 그 곳에서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고 한다. 임신 사실을 안 학교에서는 임신 여학생의 학부모를 학교에 불러 해당 학생과 함께 어떻게 하는 것이 학생에게 가장 바람직할 것인지를 오랫동안 상의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학교 측이나 학부모 의견보다는 임신 여학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았다고 한다. 그 여학생이 출산을 원하여 출산 직전까지 배가 부른 상태로 학업에 충실히 임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의 일이다. 교육방송에서 세계의 선진교육현장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뉴질랜드의 미혼모 스쿨 편이 방송되었다. 학교와 사회적 지원을 충분히 받으며 학업에 충실한 뉴질랜드의 미혼모 학생들이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 죄책감이나 불안감에 찌든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출산까지 계속되는 체계적인 건강관리와, 출산 후의 육아지원 시스템은 우리나라 미혼모 학생들과 대비되면서 부럽기만 하였다. 같은 경우이건만, 어떤 나라에서는 안정된 심리적 지원까지 받아가며 학업에 충실하도록 도움을 받는데 반해 어떤 나라는 마치 죄인인양 쫓기고 있다.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에 따르면 학생이 임신으로 인하여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예전보다 진일보한 인권의 한 측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여학생의 임신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에는 명시되어 있으나,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바라보는 따가운 눈총을 이겨낼 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배가 불러오는 상태로 등하교를 하고, 학교 안을 오가는 모습을 이해해 줄 사회적 배려심이 아직 충분치 않다. 또한 그 과정을 이겨낸다 하더라도 임신과 출산, 보육에 따른 특수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학생에게 성적 경쟁, 대입 경쟁 중심의 우리 학교현장이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저 출산 문제로 고민하면서도, 연간 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어린 중, 고등학생 미혼모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히 미혼모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가 세워지고 있기는 하다. 수원시 우만동에 있는 홀트고운학교나 서울의 나래중고등학교가 그것이다. 하지만 미혼모 학생 수에 비해 그 혜택을 입은 학생은 극소수이다.

그러기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대자비교단으로서의 원불교에 제안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모 학생들은 대부분이 학업을 끝까지 마칠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 출산과 직접적인 양육까지도 생각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단지 졸업장 뿐만 아니라 직업교육까지, 미혼모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심리적 치유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원불교 미혼모 스쿨이 필요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쉼터를 찾아 헤매고 있는 어린 미혼모 학생들에게, 또 그 뱃속에서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또 다른 생명들에게, 미혼모 학생의 발생으로 인해 불화와 다툼을 반복하고 있는 그 가족들에게 안정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원불교 미혼모 스쿨을 제안하며 글을 마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