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직심으로 전무출신 잘 해야 한다"
"공사는 그르침이 없는가, 공부는 체잡고 있는가"

▲ 원로원에서 만난 3대. 중앙이 김윤중 원로교무. 김은경 교무와 김성원 예비교무(왼쪽).
중앙총부 구내의 야생화가 만발하던 날. 빨간 튜울립이 한무더기씩 피어 가족처럼 도란거린다. 야트막한 토담길 따라 중앙 남자원로수도원을 향했다. 4대째 전무출신의 길을 이어온 김윤중 원로교무 가족의 출가이야기를 듣기위해서다. 설레임 때문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2층에 위치한 김 원로교무의 방에 3대가 모였다. 송산효도마을에 근무하는 딸 김은경 교무와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1학년 김성원 예비교무가 함께 했다.

족보를 더듬듯 3대가 어떻게 출가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함이 앞섰다.

먼저 김 원로교무의 출가 배경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삼촌인 진산 김서룡 교무의 영향이 컸다. 당시 진산님은 정남으로 이리보화당에 근무하는 한의사였다. 삼촌은 안타깝게도 29세에 열반했지만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고 회고했다.

김 원로교무가 전무출신을 하겠다고 하니 삼촌은 "내 앞날은 생각하지 마라. 모든 중생을 위해서 돕고 사는 것이 참 보람이다"고 격려했다. 부모님도 출가 서원의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기27년 10월에 대종사님을 뵌 김 원로교무가 전무출신 하겠다고 말하니 "네 뜻이 그러하면 잘해 봐라"는 성자의 성음을 들을 수 있었다.

공심으로 일관한 거룩한 아버지

김은경 교무의 출가 배경은 평범하다. 원불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공부하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김 교무는 "원불교 환경속에서 자연스럽게 내집을 찾아오듯이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교무의 길은 너무나 당연한 길이었다"며 "출가를 결정한 계기는 고등학교때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였다. 나를 위해 사는 것 보다 대중을 위해 사는 것이 참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때 아마도 인과를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출가 동기를 밝혔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집에서 한달에 한 두번 뵐까 말까 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어쩌다 한 번씩 집에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아빠는 퇴근을 하면 종합선물세트와 과자 등을 매일 사온다는 것이다. 우리 아빠는 매일 오지 않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의 전무출신은 몸과 마음을 다 내놓은 때였다. 하지만 이후에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는 공심 하나로 일관하는 모습이 거룩하고 좋아보였다. 출가는 그렇게 사가를 불고하고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김 원로교무는 2남 3녀를 두었다. 세딸 중에 김인경(제주교구장)과 김은경 교무인 두 딸이 전무출신 서원을 세웠다. 그리고 이번에 김성원 손자가 출가 서원을 세우고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들어갔다. 4대째 전무출신이 나온 셈이다.

손자인 김 예비교무도 5살때까지 할아버지 집에서 살다가 영등동으로 이사를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교당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살아서 무엇이 될까'라는 고민으로부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그때만 해도 전무출신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냥 할아버지와 고모들이 정복을 입고 다니면 '한복 입는것을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전무출신의 길, 스스로 발심하고 선택

김 예비교무는 19살 때 자신의 적성을 찾다가 원불교와 인연이 깊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날 대화중에 부모님이 원불교로 인해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원불교라는 종교가 없었으면 내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라는 한 생각이 그를 서원으로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다른 원친회원들처럼 전무출신에 대한 권유를 받지 못했다. 스스로 발심을 했고 그리고 서원의 길을 선택했다. 딸들이 출가서원을 세울 때마다 김 원로교무는 "전무출신은 아무나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을 꾸준히 일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왕에 서원을 세웠으니 잘하라"고 말했다.

대종사님 당대에도 서원을 세우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다시 나가는 사람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전무출신의 서원을 누구나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끝까지 이루기는 쉬운일이 아님을 김 원로교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으로 많이 돕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번 먹은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조석으로 심고 올렸고, 어떠한 원을 이룰 때 마장이 없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경계에 고전할 때는 감내하지 않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고 북돋아 주었다.

스승이고 도반인 가족들

김 교무는 기억에 남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해 "오직 전무출신 잘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 말을 나가지 말고 잘 살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과연 전무출신을 잘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정신을 반조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 되었다. '나는 바른 정신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가. 대종사님 본의에 맞게 살고 있는가. 초발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반무출신은 아닌가' 등 철이 날수록 큰 말씀임을 실감한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전무출신의 길에 정신적인 힘이 된 것은 "변함없이 사가를 불고하고 전무출신하셨던 그 정신이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김 교무. 아버지는 스승이면서 때로는 도반이기에 한 가족인 것이 복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김 원로교무는 재차 "마음에 다른 생각하지 않고 전무출신을 일직심으로 잘해라. 나 역시 서원에 반조하는 삶을 살아왔다. '일자출가 구족생천(一子出家九族生天)'이라는 말이 있다. 너희들이 생천하려면 희로애락을 잘 참고 이겨내야 큰 원을 이룬다"고 당부했다. 그렇게 올곧게만 당부하는 김 원로교무에게 살며시 딸들에 대한 걱정은 없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항시 마음을 놓지 못한다. 공사는 그르침이 없는가. 공부는 체잡고 있는가. 교화는 잘하고 있는가. 선공후사를 하고 있는가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그늘이 어디 가겠는가 싶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염념불망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김 교무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왜 나를 못 믿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조카인 성원이를 보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성원이가 공부심을 놓지 않고 서원을 잘 키워가고 있는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딸로서 김 교무에게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드릴 말은 없는지를 묻자, 순간 눈물을 글썽인다. 그동안의 회한이 밀려온 듯 "감사드린다"는 말로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아는 듯 "이 회상으로 이끌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뜻이지. 전무출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서원이 있어야 하고 부모에게 효성을 다해야 하고, 일편단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더욱 참 다운 전무출신이 돼라. 꼭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매듭지었다. 이어 김 예비교무도 "출가하면서 할아버지와 가까워진것 같다. 할아버지가 바라시는 전무출신이 되겠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성가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우리는 한가족 정다운 도반, 믿음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 다정하게 손잡고 길동무 되어, 오손 도손 정답게 웃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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