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깨끗하면 부처임을 본다

만물이 생생약동하는 대지위에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봄비다. 비오는 날의 산사는 제법 운치가 있다. 이제 막 피어난 새싹들이 단비를 흠뻑 머금은 듯 싱그럽다. 꽃잎사이로 작은 물방울이 방울 방울 맺혀 어느새 자기들만의 소우주를 만든다.

빗방울 때문인지 유독 연두빛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도법 스님의 인드라망 '쉼' 명상은 남원 귀정사에서 한다. 귀정사 가는 길은 구불 구불 산길이다. 외나무다리 건너듯 마음을 잘 챙기게 한다. 터덕거리며 귀정사에 당도하니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나뭇가지 사이에 매달린 연등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시는 우리 부처님'이라는 글귀가 먼저 손님을 반긴다.

우리는 서로 빛을 주는 존재
 

▲ 도법 스님.

'인드라망'은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물과 그물 사이의 그물코가 유리구슬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표현한다. 그물코 사이의 구슬이 서로 빛을 발하듯 결국 우리도 서로 빛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그런 자각으로부터 시작이 됐다.

보광전에서 입재식을 시작으로 '쉼' 명상의 문이 열렸다. 보광전 법당 가운데 모셔진 불상이 인상적이었다.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다. 비로자나불이다. 명상을 진행하는 중묵 처사는 "비로자나불은 우주에 존재하는 진리를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다. 진리의 화현이다. 진리는 석가모니 이전에도 항존했고, 석가모니 이후에도 항상 존재했다. 결국 석가모니도 그 진리를 발견한 부처일 뿐이다. 비로자나불은 햇빛과도 같은 존재다. 햇빛처럼 언제나 함께 있는 존재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반짝였다. 대종사가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법신불의 응화신이다"고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짧은 순간이지만 우주만유의 실상을 맛보게 한다.

인드라망 쉼 명상은 2박3일의 일정속에 몸과 마음을 깨운다.
첫날 도법 스님은 '성찰과 서원'의 법의문답이 있다. 그는 예불을 마치고 온 참석자들에게 "차나 한잔 하고…"라며 말문을 열었다. 어느새 국화향기가 진하게 배어나 마음을 물들였다. 그는 먼저 "마음이라는 말은 종잡을 수가 없다. 마음이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명쾌하지 않다"며 "내가 늘 만나는 사람들이 스님들이다. 그들은 수행 전문가들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엉터리가 많다. 삶과 연결되지 않는 마음공부는 사기일 수 있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마음공부와 수행을 잘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 정신과 육체, 말과 행동,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통일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언행일치가 되어야 제대로 마음공부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직 존귀한 자

불교는 인생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무엇인가'를 본능적으로 고민한다. 왜 죽어야 하며, 왜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은 누구가 갖는 의문으로 자리한다. 도법 스님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할때 너와 나는 하나임을 강의했다. 모든 물음의 해답을 마음에서 찾았다. 그는 "찾으면 쉬운데 사람들은 돈 벌고, 술 마시고 연애하느라 망각하고 산다. 그 물음이 자신에게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놓아버리고 산다. 결국 그 물음은 풀어내야 할 중요한 화두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누가 대신 못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다. '네가 최고다'는 것이다. 네가 오직 존귀한 자다. 네 자신은 본래 부처이기에 더 완성할 것도, 더 위대할 것도 없다. 이 한 마디가 우리를 구원하고 해탈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마음공부와 수행, 깨달음도 이 존재에 대한 가치에 눈을 뜨기 위해서다. 나의 존재 가치는 만족이고 당당함이다. 나 혼자만이 유아독존이 아닌 만나는 모든 사람이 본래 부처다"고 밝혔다.

지금 이 순간 참 존재 가치인 진리에 눈 뜨기를 강조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내 생명은 관계의 존재다. 나라는 그물코를 잡아당기면 온 우주가 나요. 마음이라는 그물코를 잡아당기면 온 우주 전체가 마음이 된다. 내면 이야기를 해도 외면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이렇듯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관계 속에서 생로병사를 나투지만 진리의 속성은 변화일 뿐이다."

바르고 주체적으로 삶을 보라

그는 바르게 보는 것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 중 언어를 예로 들었다. 그는 "언어는 혼자서 하는게 아니다. 늘 관계 속에서 한다. 언어를 제대로 말하려면 바르게 봐야 한다. 말하는 게 참되려면 행위가 바를 수밖에 없다. 말 한마디에 몸과 마음이 다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공부를 할 때 현장을 떠날 수가 없다. 마음공부를 티벳이나 히말라야에 가서 하는 것은 착각이다. 진리의 실상을 바르게 보는것이 중요하지 장소에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불교는 내 주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몸과 마음과 입을 쓰는 것이다. 주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할 때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늘 깨어있는 정신을 가지고 임하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일 때 아름답다. 수행도 주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할때 무엇을 하든 진정한 수행이 된다. 청소를 하고 설겆이를 해도, 혼자 있어도 함께 해도 모든 것은 신앙과 수행은 된다. 그는 "생활이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야 된다. 숨 쉬듯이 끊임없이 정진해야한다"며 "절로 되는 것은 없다. 꽃잎도 떨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열매가 맺듯이 인생은 아픈 것이다. 아프지 않으면 생명의 가치 창조가 되지 않는다"고 독려했다.

행위만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법의문답 시간에 신동열 참가자가 "원효 스님이 밤에 해골 바가지의 물을 맛있게 마시고 날이 밝아 보니 해골물인줄 알고 구토를 했다는 사례가 있다. 밤에 마신 물은 극락세계요. 아침에 확인한 물은 지옥이다. 극락과 지옥은 차이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는 해골물하고는 관계가 없다. 모든 것은 관념과 망상일 뿐이다. 실상인 사실을 받아들여야 된다. 우리는 모든 실상이 부처임을 받아들이고 못하고 있다. 해골 바가지는 원효의 지식일 뿐이다. 행위만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결국 삶은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다. 미워할 것도, 사랑할 것도,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다. 모든 괴로움은 내가 만든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을 주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실상을 정확히 보는 주체적인 힘을 기르는게 중요하다. 오늘을 잘 살면 내일이 좋듯이,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면 안보이는 것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결국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은 곱게 마련이다.

밤10시. 귀정사를 감싸고 있는 만행산은 짙은 어둠에 쌓여 있다. 수도승이 삭발하고 머리카락이 밤톨쯤 자란듯이 산 그림자가 정겹다. 다시 마음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둠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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