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예원 교도·일산교당 ( 논 설 위 원 )
화수분이란 말은 아무리 꺼내 써도 재물이 끊임없이 계속 나오는 요술 항아리를 말한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 자원이 화수분처럼 아무리 써도 한없이 생산되리라는 착각 속에 성장발전 이라는 미명으로 자연 자원을 과소비 해왔다.

지난 50~60년간 세계 인구와 경제가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개발이란 명분으로 숲이 파괴되고, 목초지는 과도한 방목으로 사막화 되어가고, 이산화탄소 또한 자정능력이 있는 자연이 흡수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 대기 중에 배출돼 지구의 온실효과를 만들었다.

지하수 역시 과도하게 끌어올려 사용한 결과 저수량이 취수량을 따라가지 못해 강조차 말라붙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인간이 자연 자원을 과소비하며 수탈한 결과 지구환경이 재생능력의 한계를 넘어 파산 선고를 눈앞에 두고 앓아눕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정부 정책 입안자나 대규모 집단의 정책 결정자들은 지하수 역시 언제든 끌어올려 사용하면 되는 화수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하수는 결코 화수분이 아니다. 최근이 아닌 벌써 10년 전의 국정감사 자료에서도 우리나라의 지하수위가 전국적으로 2m 가량 낮아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세대에서는 10m만 파면 물이 나왔다면, 우리 다음세대에서는 20m, 그다음 세대는 점점 더 깊이 파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료의 수치가 아니더라도 10년 동안 전국적으로 더 많은 우물들이 마르고, 하천의 물 또한 계속 줄어들고, 강폭이 좁아지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태가 이러한데도 정부 정책 입안자들은 아직도 단지 지하수의 수질이나 수위 측정만 했지 지하수 고갈에 대한 그 심각성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지하수를 빼 쓸 생각만 하고 지하수 보충을 위한 사업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면 통장의 잔고가 바닥이 난다는 이치를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우리나라는 강우량이 많아 많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드는데 지하수 보충이 무슨 걱정이냐는 생각으로 마구 쓴다면 큰 오산이다.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도시에 비해 인구도 적고 지하수량은 풍부하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옛날 마당에 우물 파서 쓰듯 쉽게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하는데, 아무리 물을 절약한다 해도 과거보다 인구도 늘었다.

생활수준 향상으로 도시 못지않게 농촌지역도 물소비량이 증가했는데 지하수를 농촌의 이곳저곳에서 생활용수로 끌어다 사용해 버리면 가뭄에는 농업용수 부족현상이 일어나 양수동력이 증가되고 해안지역은 염수가 유입되는 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지하수는 홍수나 태풍 같은 재해와는 달리 그 폐해의 영향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많다 해도 인구밀도가 높고 개발에 의한 생태계 파괴로 대부분의 깨끗한 빗물이 땅에 저장되기보다 바다로 바로 유입 돼버려 도시는 물론 농촌지역도 지하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족 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설령 우리 세대에서는 그럭저럭 깨끗한 지하수 사용이 가능하다해도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줄 지하수가 많이 부족하기에 빗물을 지하수에 보충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자연파괴의 범주에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는 것도 포함시키고 있다. 지하수란 후손들도 계속해서 써야 하는 중요한 자원이므로 그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여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지하수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건물의 기초를 만들 때 잠수공법을 사용해 주변의 지하수위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세심한 노력을 함은 물론이고 빗물 집수시설까지 하여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하니 우리도 좋은 것은 서둘러 배워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후환은 생각지 않고 한치 앞만 바라보며 경제 논리로 환경 문제를 대처하지 말고 우리교단이 빗물을 비롯한 환경자원을 살리고, 아끼고, 나누어 우리의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풍부한 자연환경을 남겨주는 롤모델이 되기를 또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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