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의 꿈, 봉하마을에서 꽃피다
강자와 약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다운 세상 꿈꾸며

▲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바라다 본 봉하마을 전경.

▲ 다양한 연꽃과 꽃창포가 방문객을 맞이하는 연못.
가난을 딛고 선 소년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던 그는 6학년 때 교사의 권유로 전교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중학교를 거쳐 부산상고에 진학, 졸업 후 작은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곧 바로 고향에 내려와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사법고시 합격 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고 6월 항쟁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었다. 그리곤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고난의 연속. 14대 총선 부산에서 낙선, 지방선거 부산시장 낙선, 15대 총선 종로에서 낙선, 98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16대 총선에서 부산 출마, 또 다시 좌절의 과정을 겪었다.

그러던 그가 2002년 12월19일 당당히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국민통합과 새로운 정치를 외치는 그에게 사람들은 '희망돼지 저금통'을 통해 60억 원 넘게 성금으로 성원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 대통령'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는 그 '바보'가 좋다고 했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 내려와 '사람사는 세상의 꿈'을 만들어 가던 '바보'. '어느 누구도 하찮은 사람은 없다'던 '바보'는 그러나 우리 곁을 떠났다.

2009년 5월23일 그를 보내고 나서야 사람들은 마음속에 노란 바람개비 하나씩을 품었다. 천개의 바람개비가 돌면 그가 그저 '바보'처럼 웃을 것만 같다.

묘역과 국민참여 박석

김해 봉하마을로 향했다.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어려있는 곳. 그 곳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의 묘역과 연지가 있다.
마을 초입부터 묘역까지 800m 길, 노란 바람개비와 추모글이 적힌 노란 플래카드가 가득했다.

묘역에 들어가기 전 마음을 비추는 거울, 작은 연못에서 마음가짐을 정돈했다.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유언에 따라 낮은 너럭바위가 봉분처럼 올려진 묘역. 따로 비문을 새기지 않았다.

묘역에는 추모글이 새겨진 박석이 있다. 박석을 기부한 1만 8천여 국민의 애틋한 애도의 마음이 한 줄 글로 새겨졌다. '가장 바보였기에 오히려 위대했던 분', '늘 그립습니다',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있는 대통령'. 국민참여 박석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추모비로 비문을 대신하고 있다.

묘역을 지나 연못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 귀향 후 조성된 연못으로 연꽃과 수생식물, 수서곤충들의 보금자리다.

노랑어리연꽃, 가시연꽃, 수련, 백련, 홍련 등 다양한 연꽃과 꽃창포가 방문객을 맞아들인다. 연지 바람 끝, 온화한 표정으로 웃어주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미소가 함께 실려있는 듯 하다.

대통령의 길, 봉화산 숲길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보여드릴 것이 없어 늘 미안해했다던 노 전 대통령. 그 미안함으로 몸소 가꾸어 갔던 '봉화산 숲길'에 부엉이바위가 있다. 지금도 가끔 부엉이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던 부엉이 바위. 목책이 쳐져 있고 접근이 금지된 그 곳은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곳이다. 전하지 못할 가슴 먹먹함을 애써 외면한다.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인데도 주변 40~50리가 모두 평지라 정상인 사자바위에 올라서보면 꽤 높아 보입니다. 옛날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 봉화산(烽火山)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사자바위 양 옆으로 길게 날개를 뻗고 있는 학 모양을 하고 있어서 건너편 뱀(산)이 화포천의 개구리(산)를 못 잡아먹게 견제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산입니다." 봉화산 숲길의 사자바위,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이 왜 '낮지만 높은 산'인지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 주던 곳이라고 봉하마을 안내자는 전했다. 792,000㎡의 봉하 들판과 마을, 멀리 화포천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강자와 약자가 서로 견제와 균형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보다 더 세상다운 세상'이라고 했다. 봉하 생태 산책길 곳곳에는 그렇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노 전 대통령의 꿈과 희망이 배어 있었다.

생태습지공원 '화포천 습지길'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쓰레기와 폐수로 황폐해졌던 곳, 화포천. 노 전 대통령이 귀향 이후 마을 주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처음 했던 일이 화포천 청소였다고 한다.

"화포천은 습지하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물의 양이 많지 않다는 거죠. 유속이 굉장히 느려 홍수 때 떠내려 온 쓰레기와 갖다버린 쓰레기가 엄청났습니다. 또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점은 낚시나 그물 어망에 의한 물고기 어획입니다. 물 폭이 좁은 곳곳에 그물을 쳐서 낙동강에서 산란을 위해 올라온 잉어들을 사람의 힘으로 끌어내지 못해 경운기로 끌어낼 정도였습니다." 안내자의 설명이다.

노 전 대통령이 새벽마다 자전거로 돌아볼 정도로 관심을 쏟으며 습지 복원을 위해 애를 썼던 화포천은 이제 국내 최대의 하천형 배후 습지가 됐다. 지금은 매년 겨울, 기러기와 청둥오리 등 다양한 종의 철새 수천 마리가 날아든다.

또 다른 꿈, 봉하쌀

밀짚모자를 쓰고 봉하 들녘을 자전거로 달리며 노 전 대통령이 가슴에 담았던 또 다른 꿈은 친환경 농법이다.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친환경적인 농촌풍경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 속에서 올바른 영농법을 통해 주민의 소득을 향상시켜 모두가 행복한 농촌의 모습을 봉하에 이루고 싶어 하셨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화학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청둥오리의 자연적 속성을 이용해 벼농사를 짓고, 우렁이와 미꾸라지를 이용해 농사짓는 방법을 제안했다. 봉하마을은 그 뜻을 이어 친환경 농법 생산을 늘려가고 있다. 봉하마을 안내자는 "봉하쌀을 구매해주는 시민들과 함께 정직한 농부의 땀과 정성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봉하마을은 더 이상 한 나라의 대통령을 잃은 슬픈 마을이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을 다듬고 전하는, 그래서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꿈'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좋은 바람'이 부는 마을이다.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상대방을 내 안에 소중하게 담는, 사람사는 세상, 봉하마을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