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90: 원불교에서는 자녀를 어떻게 교육하도록 가르치고 있나요?

답: 대종사께서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다양한 융통성을 가지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대종경〉 인도품 45장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데에 네 가지 법이 있다고 밝혀 주셨습니다.
첫째는 심교(心敎)라 마음에 신앙처를 두고 바르고 착하고 평탄하게 마음을 가져서 자녀로 하여금 먼저 그 마음을 체받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행교(行敎)라 자신이 먼저 실행하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서 자녀로 하여금 저절로 그 실행을 체받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언교(言敎)라 매양 불보살 성현들과 위인 달사들의 가언(嘉言) 선행(善行)을 많이 일러 주어 그것을 기억하여 체받게 하며 모든 사리를 순순히 타일러서 가르치는 것이요.

넷째는 엄교(嚴敎)라 이는 철없는 때에 부득이 위엄으로 가르치는 법이니 이는 자주 쓸 법은 아니니라.
대종사님은 "한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되 어머니 태중으로 비롯하여 성인(成人)이 되기까지 이 네 가지 법을 아울러 쓰면 착한 사람 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그 첫째가 우리 자녀는 모두가 동일하게 태어납니다. 공자님께서는 그것을 성상근(性相近)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가 교육에 따라 무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공자님께서는 그것을 습상원(習相遠)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불가의 여래장 사상입니다. 여래장이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여래 즉, 부처가 될 소지를 갖고 태어난다는 믿음입니다. 다만 진리의 필요에 따라 용처가 있을 뿐 입니다.

〈대종경〉 불지품 22장에 보면 대종사께서 "이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낮은 것은 낮은 대로 각각 용처가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녀들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누구도 용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용처를 어떻게 쓰느냐에 차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장자〉의 제물론에 보면 '손이 트지 않는 약(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을 세탁을 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은 세탁소를 경영합니다. 또한 그것을 겨울 전쟁에 사용한 사람은 제후가 되어 치국에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의 교육도 환경과 용처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한양대·중곡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