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의 백미, 돌이 되어 물소리를 듣네!

▲ 장마로 인해 변산성지의 봉래구곡에 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다.
봉래구곡(蓬來九曲)

오랜 가뭄 끝에 6월의 목마른 숲을 적시며 세차게 내리는 단비가 가슴까지 시원하다. 서산마루에 걸린 붉디붉은 해가 들녘을 태울 듯이 기염을 토하더니 아랫녘 장마가 이제야 남부능선을 넘었나보다.

비는 어디에서 머물다가 내리는 것일까? 깡마른 건천 내변산 골짜기에도 드디어 콸콸 물소리가 우렁차게 퍼진다. 가슴이 타고 숨이 막혀 비틀거리면서도 생명줄 놓지 않고 견뎌낸 저 흙먼지 속 가여운 목숨들이 환희의 얼굴로 비를 맞고 있다.

이 장맛비가 내리고 나면 실뱀처럼 가늘어졌던 직소폭포도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쩌렁거려 산신령도 기가 죽었다던 그 위용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봉래구곡의 물줄기도 한결 또랑또랑해 졌다.

봉래구곡은 해발 150여m에 위치한 암반위를 흐르는 잔잔한 연못 제1곡 대소를 시발점으로 한다. 흐르는 물줄기는 제2곡인 직소폭포에서 굉음을 지르며 포효하다가, 휘몰아치는 폭포수 물살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소를 이룬 제3곡 분옥담을 지난다. 물줄기는 푸른 정화수 속에 선녀가 목욕을 하였다는 제4곡 선녀탕을 맴돌다 드디어 제5 봉래곡에 이른다.

천황봉을 뒤로한 봉래곡은 넓은 반석아래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머무는 듯 넘나들며 소를 이룬 곳으로 언제부턴가 봉래구곡의 대표적인 이름이 되었다. 어쩌면 그 넉넉한 바위와 물소리와 산경이 구곡 중 가장 아름다워서일까? 태인 사람 동초 김석곤 선생이 썼다는 '봉래구곡'이라는 글씨가 넓은 암반위에 새겨져 있듯이 사람들은 흔히 5곡을 일러 봉래구곡이라 지칭한다.

그러나 봉래곡은 이내 푸른 물이 산 그림자를 머금고 있는 제6곡 금강소를 지나, 월명암 시주승이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모습이 연못에 비친다하여 영지못(影池沼)으로 불리어진 제7곡에 이른다. 그리고 내변산의 모든 물이 하나로 합수되는 제8곡 백천내와 마지막 9곡인 암지(暗池)에 도달한다. 백천내와 암지는 지금 부안 댐 상류가 되어 물속에 잠겨있다.

종종 물이 빠지면 십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왕래하던 백천내 다리와 오솔길이 드러나 산길을 걸어걸어 제법성지를 오가던 추억이 물에 어리곤 한다.

이렇듯 변산구곡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필시 소태산께서 대소에서 암지까지 장천의 물길을 따라 걸으며 산경과 더불어 깊은 사유의 시간을 보내셨을 거라고 짐작해보기 때문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과 소태산의 메시지

소태산이 변산에 입산하여 잠시 월명암에 머물던 무렵 영광의 제자들에게 주자의 '무이구곡가' 10수 중 서곡인 "무위산 아래 선경이 있네. 산 아래 차가운 물이 골마다 맑게 흐른다. 그 가운데 절경을 알고 싶으면 노 젖는 소리 들리는 곳을 살펴보아라"라는 시를 써서 보낸다.

무이산은 중국의 복건성과 강서성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인간선경'으로 불리는 '무이구곡'과 주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보낸 '무이정사'가 있는 곳이다. '무이구곡가'는 주자가 무이구곡의 비경를 찬탄하여 지은 시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시를 읊으며 주자를 흠모하고, 이를 본 따 '고산구곡', '화양구곡' 등 조선의 경치 좋은 계곡의 이름을 지었다. 따라서 구곡이란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을 일컫는 말로, '봉래구곡' 역시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다는 것을 말해준다.

소태산은 변산에 계시는 동안 '무이구곡가'를 즐겨 읊고 제자들에게도 권했다고 한다. 소태산이 이 시를 영광의 제자들에게 써 보낸 것은 봉래구곡에서 지내고 있는 당신의 마음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즉 '무이구곡가'에 실어 보낸 봉래구곡의 선경 소식은 장차 열린세상, 밝은세상, 무이구곡처럼 살기 좋은 아름다운 용화회상이 올 것을 전망하는 하나의 메타포요, 스승을 뵙고 싶어 하는 영광의 제자들에게 그 세상을 건설하고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손정윤교무의 〈허공을 삼켜라〉 참조)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네!

봉래구곡의 대명사로 불리는 제5곡은 봉래정사에서 직소폭포를 향해 약 5백 미터쯤 오르는 길 우측에 있다. 천황봉 아래 넓은 암반과 산경이 아름다운 이 계곡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조선 팔도를 돌던 태조 이성계가 변산 청림리 어수대에서 물을 길어다 천황봉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겼다고 전한다.

소태산의 법설 〈대종경〉 성리품11장도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 변산 아홉 굽이 길에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더라. 없고 없다하는 것도 또한 없고 없으며, 아니고 아니라 하는 것도 또한 아니고 아니로다." 소태산은 봉래정사에서 제자들에게 이 글 한 수를 써주시며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닫는 사람이라"하였다. 무이구곡에 비유한 아름다운 용화회상은 결국 이 성리 소식을 깨달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소태산은 자주 이 계곡을 찾아 흐르는 물소리에 물아일여(物我一如)의 선경(禪境)에 들곤 했으리라. 그 물소리는 오늘도 여전히 바위웅덩이를 지나 '쏴아아 쏴아아~' 시원스레 흐르고 있다.

누구라도 홀연히 이 암반위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에 심신을 내어 맡기면 이내 내가 돌이 되고 돌이 내가 되어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는 체험을 잠시나마 하게 된다. 그 순간 무무역무무 비비역비비의 소식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모든 분별이 사라져 버린, 그래서 텅 비어 충만한 순간 돌이 물소리를 듣는다.
요즘 원불교100년을 앞두고 성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그동안은 말로써 이를 수 없는 성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기시 해온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성리가 양성화되고 대중의 관심이 많아졌다 해서 그 경지를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자칫 한갓 해설과 논리로 성리를 다 아는 척 착각 할 수 있음을 경계하며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고 부촉한 소태산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곳 제법성지 순례의 백미는 봉래구곡의 돌이 되어 물소리를 듣는 것이다.
성지를 순례한다면 결코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변산 원광선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