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98: 원불교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종교입니까?

답: 한마디로 표현하면 통섭(通涉)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불선의 통섭, 생활과 종교의 통섭,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통섭이 바로 원불교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통섭은 이화여대의 최재천 교수가 Consilience를 통섭, 지식의 대통합으로 번역하여 개념을 확립하였습니다.

통섭은 1840년에 윌리엄 휘웰이 〈귀납적 과학〉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이러한 개념은 우리 원불교의 창립 당시부터 이미 사용되어온 동원도리의 개념으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대종사께서는 "나의 말을 견성한 과학자들이 밝혀 줄 것이다" 라고 예언하시면서 원불교의 미래를 과학자들에게 일임하신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교의편 일원상 진리의 첫 구절인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라고 밝히신 것이 바로 과학과 종교의 통섭을 잘 표현하고 계십니다.

통섭은 설명의 공통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 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또한 스노우의 1959년 작 〈두 문화와 과학 혁명〉에서도 다루어진 바가 있습니다. 윌슨은 과학, 인문학과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통섭에서는 분리된 각 학문의 세세한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모든 탐구자에게 그저 보여지는 상태뿐만이 아닌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통섭의 귀납적 결론은 사실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분야를 통한 결론에 의해 얻어진 귀납적 결론이 또 다른 분야에 의해 얻어진 결과와 일치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귀납적 결론이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만 통섭에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통합과 융합 그리고 통섭을 구분하는데 통합은 물리적 결합, 융합은 화학적 결합, 통섭은 창조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원불교는 유불선의 창조적 융합을 통한 새로운 종교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통섭의 종교적 의미가 강한 것입니다. 바로 유불선에서 탄생한 그러나 그들을 초월한 종교 즉, 청출어람의 통섭의 종교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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