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우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나는 심심할 때마다 더 깊은 답을 찾으려 생각을 해본다. 이 땅에 많은 배우와 배우 지망생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왜 배우를 하는지, 나는 왜 연기를 하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인이 물음표이니 결과도 물음표이다. 무슨 뜻이냐면 방황을 한다는 말이다.

난 우리 중생들의 인생이 그저 방황을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쪽 일을 해보면서 느낀 것은 '배우는 절대적으로 타고난다'이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각자의 직업에 대조해서 생각해 보시면 아마 많이들 공감하실 것 같은데.

내 주변엔 불쌍한 배우들이 많다. 내가 보기에 가장 불쌍한 배우는 희망을 잃은 배우인데 희망을 잃은 배우들은 술을 마시거나 관두거나 둘 중 하나이다. 관두면 다른 길 찾아 돈이라도 버니까 다행인데 안타까운 것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부류이다.

이런 배우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다. 내가 극단에 처음 들어갔을 무렵, 10년 전에 스무살인 나를 앉혀놓고 어떤 극단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배우는 술을 마셔야 한다. 술을 마시며 인생을 배워야 한다." 나는 그 때는 그 말이 상당히 멋지고 예술가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도 몇 년간 열심히 소주병을 비웠었다.

하지만 그 때의 선배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그저 자신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에 대한 달콤한 합리화였다. 왜냐하면 연기를 잘 하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연기를 잘 한다면 국민배우들은 다 알콜 중독자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연기 잘 하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가 더 철저하다. 연기는 머리를 쓰는 직업인데 술을 마시면 머리를 쓸 수 없으니 기운이 반대된다.

물론 너무 올곧고 정직하게만 사는 것도 배우의 삶에 그다지 맞지 않지만 술을 마시고 방황을 하는 것도 20대에는 마감을 해야 한다. 대학로에서 술에 쩔어 사는 배우들의 원인은 대부분 패배감에서 시작된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패배감. 다들 돈이 없어서 쩔쩔매면서 이상하게도 술값은 밤마다 추렴이 된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공연을 잘 끝내고 맥주 한 잔 하거나 사람이 좋아서, 술을 즐기러 마시는 경우는 예외다. 하지만 많은 배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 마시는 것 같다. 이러다 알콜 중독이 되면 자신이 알콜 중독인지도 모른 체 그저 매일 마신다.

위에서 언급했던 10년 전에 내게 멋진 말을 했던 극단 선배는 이제는 대학로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마음공부를 안 했고 훌륭한 교무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알콜 중독에 아직도 사고를 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복이 많아서 저 상황에서 나와 보니 그제서야 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방금도 우울증과 알콜 중독을 앓고 있는 여배우가 고민 전화를 해왔는데 못 받았다. 얼굴도 예쁘고 착하고 어린데 부산에서 올라와 혼자 살며 상처를 많이 받아 저렇게 된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반강제로라도 마음공부를 시키고 싶지만 그럴 수 있나? 마음공부도 연이 닿아야 한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과 나는 복도 많다. 원하면 언제든지 교전도 보고 마음공부를 할 수 있다. 중생들이 떼지어 사는 이곳에서 우리는 스승님을 많나 은혜를 발견하며 살고 있다. 너무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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