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심부름꾼으로 기쁘게 응하며 지내요"

▲ 이해인 수녀는 쉬지 않고 기도한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 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이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시 '어떤 결심' - 이해인 수녀

제주에서 130여 명과 피정 프로그램을 마치고 온 이해인(66) 수녀. 그는 2008년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암' 투병 중이라는 선입관을 깨주기라도 하듯 건강한 웃음으로, 활기찬 손놀림으로 싱싱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비구름 사이로 여름 햇살이 눈부시던 날,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도수녀원 민들레방에서 그를 만났다. 민들레방은 그의 작품과 일상의 소품들을 한데 모아 둔 전시관이다. 책과 사진, 팬들이 보내온 앙증스런 것들. 그는 전시관에 대해 "공동체에서 이렇듯 배려를 해 줘 소박하게 꾸몄다"며 "보통은 죽은 후에 전시관을 마련하는데 유치원이 새로 지어 이사하면서 공간을 배려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가 살아온 흔적이 가득한 민들레방에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랑의 심부름

그는 "올해 새롭게 발간한 책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며 "그 어느 때 보다 반응이 빨리 나타났다. 의외이다. 그 때문인지 바쁜 일상을 보낸다. 또 이런 저런 사랑의 심부름이 많아 가능한 응답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랑의 심부름'이 뭘까? 그는 "교도소에서 온 편지 중 가족에게 전화를 해서 격려해 주면 좋겠다는 사람, 희망의 메시지를 적어 달라는 사람, 내 사인이 있는 책을 누구에게 꼭 보내 달라, 친필로 좋아하는 시를 써 달라"는 등 아주 다양한 심부름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사랑의 전달자란 말이 실감날 만큼 많은 편지들이 온다. 하지만 못해줄 때도 있다. 어떤 이는 블로그에 글을 남겨 달라는 사람도 있다"며 "돈 빌려 달라는 심부름만 아니면 다 들어주려고 한다"고 기쁘게 응하는 자세를 보였다.

건강이 차츰 회복되면서 그는 "좋은 시집을 찾아 읽고 맘에 드는 시를 골라 이웃과 나누는 일이 새삼 즐겁다"며 시 낭송 모임이나 느낌 나누기를 즐겨하곤 한다.

암과 나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그는 '암'이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찾아온 일종의 불청객인 암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처럼 대하니 자연스레 나의 일부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수술을 하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생사의 바다를 넘나들어야만 했다. 그런 극한의 아픔이 찾아왔을 때 그는 "안으로 깊게 배인 어린 시절부터의 신앙이 많은 도움이 됐다. 또 하나 진심으로 염려하고 기도해 주는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겠다는 아름다운 의무감과 사명감도 한 몫을 했다"며 "이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떠나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죽음이 생각 보단 두렵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시는 분신, 작은 위로 될 듯

직장암 수술을 받은 지 3년. 최근 검사결과가 "현재까지는 별 이상이 없다. 좋아지고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암환자'라는 사실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 정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일단 책들이며 옷가지며 생활소품 등 물건을 정리한다"며 "정리하다 보니 마음도 비워지고 참 좋다"는 느낌을 말했다.

그는 "'모든 물건은 그 주인이 살아있을 때 빛나고 죽으면 빛이 바래니 이왕에 주고 싶으면 살아있을 때 주는 게 좋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수시로 정리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슬프거나 쓸쓸하기 보다는 직접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을 주고 있다"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동료수녀들은 "떠날 준비 하시는 거예요?"하고 울먹일 때 그는 이제 위로를 해주는 여유도 생겼다고.



그는 참 많은 시를 발표했다. 독자들은 시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고 때론 위로를 받으며 자신을 새롭게 다졌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가 발표한 모든 시는 그녀의 '분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그는 "시인은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대신 노래해 주는 사제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저 역시 슬픈 사람들에겐 작은 위로가 되고 기쁜 사람들에겐 더 기뻐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삶의 길에서 선과 진실과 사랑을 추구하는 일에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렇게 일부러 마음먹지 않더라도 이미 독자들 자신이 더 깊은 의미를 찾고 해석을 잘 해 놀라곤 한다"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별 연습



그는 "지난해 지인들의 부고를 부쩍 많이 들었다"며 "하나의 슬픔에 깊이 잠길 겨를도 없이 또 죽음소식이 덮쳐오곤 한다. 수도원의 가까운 동료나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죽음이 차갑고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고통의 마침표인 평화로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는 달관의 입장을 말했다.



그는 최근 창작한 시 '이별 연습'으로 풀어 내지 못한 마음을 대신했다.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좋은 생각을 잊어버리고



잊고 잃는 게 하도 많아/ 내가 나에게 놀라네



나이를 먹는 것은/ 이별을 위한 준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살짝 변명하며/ 빙그레 웃어보는 오늘



세월과 더불어 빛을 잃어도/ 한탄하지 않으면



은은한 환희심이/ 반달로 차 오를거라고



쓸쓸해도/ 자꾸만 웃음이 나올 거라고



창밖의 새들이 노래로 말을 하네/ 정원의 꽃들이 향기로 손짓하네



우는 것도 예쁜 새/ 지는 것도 예쁜 꽃/ 언제나 무엇이나/ 괜찮다 괜찮다/ 나를 위로하니/ 두려운 이별이 두렵지 않네



잊혀져도 좋다고/ 마침내 고백하며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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