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 봉평
효석문화마을, 문학의 정취 물씬

▲ 이효석 문힉관.
▲ 평창들녘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9월 다양한 문학가들을 기리는 문학관 탐방과 문화 현장을 소개한다. 작가의 문학과 삶의 여정을 통해 우리도 삶의 여유를 찾는 가을이길 염원한다.
이번주 이효석 문학관, 2주 영상아트 갤러리, 3주 연희 문화창작촌, 4주 밀양 연극촌 탐방이 게재된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 -


매년 9월이면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의 고향 봉평은 소설의 한 장면처럼 메밀꽃으로 뒤덮여 하얗게 물든다. 들판을 가득 메운 메밀꽃 사이를 걷노라면 마치 소설 속으로 들어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문학의 정취가 향을 내뿜는 봉평으로 떠나 보자.

소설과 현실이 공존하는 효석문학마을

산마루를 겨우 벗어난 해는 아직까지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장날을 맞은 봉평장은 벌써 전 부치는 소리와 각종 산나물 등이 뿜어내는 향기, 시골 상인들의 분주한 움직임들로 열기를 올린다. 허생원이 판을 벌였을 드팀전이야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왁자지껄한 장터 풍경이야 변했을 리 없다.

작가가 오늘날 소설을 썼다면 분명 이 모습 그대로를 담았을 것이다. 이처럼 봉평의 특징은 소설과 현실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봉평장을 나서면 장과 효석문학마을 사이의 섶다리가 어제와 오늘, 현실과 소설을 이어주고 있다. 소설을 읽듯 물레방아와 메밀꽃밭을 끼고 돌면 이효석문학관과 그의 생가가 나오는데 문학관에는 육필원고와 사진을 비롯한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을 뿐 아니라 생가를 주변으로 〈메밀꽃 필 무렵〉의 장면들을 조형물로 꾸며 놓은 문학동산이 조성돼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의 토속적이면서 서정적인 작품들과는 다르게 전시관 내 재현해 놓은 작업실을 보면 인물 뒤 벽면에는 'Merry (X)-mas'라고 영문으로 쓴 장식판과 프랑스 여배우의 사진이 걸려있어 이국적이고 서구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고향인 봉평은 자신이 쫓던 이상향을 위해 버려야 했던 동시에 현실에서 그가 접근할 수 있었던 이상향에 가장 가까운 이중적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때문인지 이효석은 여러 작품 속에서 고향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메밀꽃 필 무렵〉을 포함해 〈산협(山峽)〉, 〈개살구〉, 〈고사리〉 등이 그 대표작이다. 어쨌든 덕분에 메밀꽃이 필 즈음의 봉평은 많은 이들에게 고향의 전형적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봉평에서는 매년 이효석을 기리기 위한 효석문화제를 열고 있다.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효석문화제는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밭'이라는 주제로 9월8~18일 진행되며 효석 백일장, 문학의 밤, 농악대 공연, 전통혼례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준비돼 있다. 또 7~10월 사이에 개화되는 메밀꽃을 문화제 기간에 맞춰 파종해 소금을 뿌린 듯이 숨이 막힐 정도로 만발한 메밀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의 정취를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잠시 길을 걷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설 속에서 허생원은 동이와 함께 봉평을 떠나 산길을 걷고 개울을 건너 대화로 향하는데 옛날 지역 주민들이나 장돌뱅이들이 면온과 봉평을 오가던 봉평옛길이 복원돼 소설 속 주인공들과 함께 걷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 전시관 앞의 이효석 동상.
▲ 섶다리.

먹거리, 볼거리는 덤

그렇다고 봉평까지 와서 문학만 즐기라는 법은 없다. 봉평은 메밀음식으로도 유명한데 어느 곳에서든 메밀막국수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지역의 경우 국수의 메밀함량이 30~40% 정도 되는데 봉평의 경우 대부분 함량이 70~80% 정도인 국수를 사용한다. 메밀의 함량이 높을수록 면이 뚝뚝 끊기기는 하지만 메밀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또 봉평장에서는 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올챙이국수와 수수전병, 메밀묵, 메밀전병 등을 한 상 가득 맛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릇 가득 음식을 채워주는 시골장의 인심이 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봉평 주변에는 다양한 관광지가 있어 가족 또는 친구들과의 나들이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봉평면 흥정리에 위치한 허브나라농원은 환경부가 선정한 생태관광 2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럽풍 건물과 나비가든, 어린이가든, 중세가든, 팔레트가든 등 다양한 테마가 있는 코스에 계곡이 옆에 있어 색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봉평에서 40분가량 떨어져 있는 대관령 삼양목장 역시 추천할만 하다. 횡계리 대관령 일대에 위치한 삼양목장은 동양최대의 600여만 평의 초지목장으로 광활한 초원에 펼쳐져있다. 목장이 워낙 넓은 탓에 1년 가도록 소의 발자국이 닿지 않는 초지가 도처에 널려 있어 봄이면 얼레지가, 가을에는 구절초가 군락을 이룬다. 드넓은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또 소와 양에게 건초로 먹이를 주는 체험은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에게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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