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단지 정원 삼은 연극인들의 삶터

9월 다양한 문학가들을 기리는 문학관 탐방과 문화 현장을 소개한다. 작가의 문학과 삶의 여정을 통해 우리도 삶의 여유를 찾는 가을이길 염원한다.
1주 이효석 문학관, 2주 영상아트 갤러리, 3주 연희문화창작촌, 4주 밀양연극촌 탐방이 게재된다.
영화 '밀양'으로 유명해진 도시에 연극인들이 함께 살며 공연을 하는 곳이 있다. 남밀양 IC로 들어서자 비 그친 들녘은 여물지 않은 벼를 배경삼아 한가롭게 서 있다. 연극촌을 안내하는 팻말이 곳곳에서 친절하게 맞는다.

연희단거리패와 밀양연극촌

밀양연극촌(이하 연극촌) 입구에 들어서니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성벽극장이 정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2010년에 세워진 국내 최대의 야외성벽극장으로 1층에는 연극촌사무실과 의상실, 전시장, 연습장으로, 2층에는 배우숙소, 관객들의 체험숙소 등이 꾸며져 있다. 1200여 석의 관객석과 함께 연극촌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고 있다.

연극촌은 1999년 9월 밀양시의 협조로 폐교된 월산초등학교에 연희단거리패가 입촌해 세워졌고 이후 연극인들의 작업과 삶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극촌 최초의 극장인 숲속의 극장을 비롯해 6개의 공연장과 연극제작소, 연습실, 게스트하우스, 연희단거리패 자료관, 연극촌 가족 숙소 등이 들어서있다.

연극촌의 중심에는 시인이자 연출가인 이윤택 예술감독이 있다. 그는 1986년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해 지금까지 부산의 가마골소극장, 서울 우리극연구소, 연극촌을 중심으로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김해 도요마을에 정착, 배우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는 한국 실험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연극집단으로 성장했고 '이상주의 연극공동체'라는 연극 활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대표 작품으로 '오구', '바보각시', '어머니', '햄릿' 등이 있다.

배우 배보람(26세) 씨는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은 전원합숙생활을 하며 연극촌에는 현재 20명의 배우들이 살고 있다"며 "공연되는 작품에 따라 배우들은 밀양, 서울, 부산, 도요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촌은 배우입장에서 연극에 몰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며 "대도시처럼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밀양에 연극촌이 생김으로서 질 좋은 작품을 보장하고 연습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보며 문화생활을 즐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극촌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연극만들기, 학교, 단체에서 신청할 경우 연극만들기캠프, 방학 중 교원직무연수 등 연극교사들과 숙식을 하며 연극을 체험할 수 있다.
▲ 밀양연극촌 앞의 연꽃단지.

또 다른 볼거리 대단위 연꽃단지

연극촌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돌면 마을 전체에 조성된 대단위 연꽃 밭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연극촌 인근 4개 마을이 문화체험형 복합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연꽃 단지 면적이 무려 70,772㎡로 조성되어 수련 31종을 포함한 다양한 연꽃 품종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걷기에는 멀고 차로 다니기엔 가까운 마을길을 가다보니 가산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그 옆으로 효자각, 운동기구, 정자, 벤치가 있어 관람객에게 또 다른 볼거리, 쉼터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해바라기 꽃길, 수세미, 조롱박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어 마을을 더 정겹게 한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와 주말극장

연극촌의 자랑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와 상시로 열리는 주말극장이다. 2002년부터 시작한 밀양여름축제는 2009년 연극축제 평가 1위, 2010년 공연예술평가 1위를 받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축제로 성장했다. 벌써 11회를 맞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연극이 현실에게 질문을 던지다'는 주제로 7월27~8월7일까지 열렸다. 올해는 연희단거리패 창립25년 기념공연을 비롯해 젊은 연출가전 등 40편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고, 전국에서 몰려든 관람객으로 매진된 공연이 많았다.

매주 토요일 문을 여는 주말극장은 연극촌이 시민들과 만나기 시작한 첫무대로 연희단거리패의 신작 공연과 레퍼토리 작품을 선보이는 무대다. 주말극장이 열리면 밀양 외에 부산, 대구, 울산, 마산, 창원 등지의 관람객이 많이 찾아온다.

이날도 연극촌 내의 우리동네극장에서는 공연을 연습하는 배우들의 노래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린다. 성벽극장 뒤편의 스튜디오극장에서는 다음 주에 있을 '오즈의 마법사'공연으로 인해 어린이극단 반달 단원들의 연습이 한창이다.

해가 지자 개똥이 가로등 불빛아래 연극을 보러오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밀양역에서 출발한 셔틀버스도 도착한다. 7시 30분에 시작될 연극을 여유 있게 보려고 했으나 연극촌과 마을을 돌다보니 어느덧 공연시간이다.
▲ 밀양연극촌에서 공연중인 뮤지컬'천국과 지옥'.
뮤지컬 '천국과 지옥'이 공연 될 공연장 입구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무대에선 배우들이 격렬한 춤과 노래로 열정이 가득한 무대를 연출해 우리동네극장은 금새 열기로 가득했다. 젊은이와 학생관객 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배우들에게 소리 치고 박수치니 유명가수 콘서트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들 연극을 즐기는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난다.

남영옥(43세, 밀양 교동) 씨는 "저번에도 '천국과 지옥'을 봤는데 좋아서 이번에는 일부러 자녀를 데리고 두 번째 보러왔다"며 "확실히 또 봐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시간 이었다"고 전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연극촌은 그렇게 관람객들의 스트레스를 날리게 했다. 연극이 끝난 뒤 배우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던 관람객들. 이들에게 한편의 괜찮은 공연은 모두에게 개운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늦은 밤 셔틀버스는 또 관람객을 태우고 떠나기 시작한다. 밤하늘을 보니 초롱초롱한 별들이 다음 공연에도 오라고 속삭인다. 왠지 더 차가운 밀양의 가을바람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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