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는 당뇨에 좋습니다"
씨앗 자가 채종하며 연구에 매진
자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 인기

▲ 나눔농장 박영일 대표가 '여주' 재배에 관한 설명을 곁들였다.
박과의 덩굴식물인 여주(苦瓜). 시골집 관상용으로 심었던 여주가 이제는 농장에서 제법 볼 수 있다. 여주의 성분 가운데 당뇨병에 효과가 있는 것이 밝혀진 이후부터다.
농장에서 기르는 여주를 직접 보기 위해 전남 영광으로 향했다. 백수읍 한성주유소에서 물어물어 찾아간 친환경 농산물 나눔농장에는 가을이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박영일 대표가 어느새 뒤에 서서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밀짚모자를 둘러쓴 그의 얼굴에는 선한 향기가 풍겼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과 함께 한지가 수 세월이다.

"여주 농사를 지은 지는 4∼5년 됩니다. 처음에는 당뇨, 고지혈, 고혈압에 효능이 있다는 친구의 권유에 의해 씨앗을 몇 개 얻어 대나무 지줏대를 세우고 심었죠. 수확하여 주변에 있는 당뇨환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 분들이 먹어보고 괜찮다고 말들을 해요. 어떤 분은 당 수치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여주 농사를 계속 짓게 됐습니다."

그의 말처럼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유명한 〈약용 식물 백과〉에 '번갈(煩渴)을 멈추게 한다(당뇨병에 효과가 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식물인슐린(p-insulin)과 카란틴(charantin)이란 성분으로 인해 이러한 효능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식물인슐린은 체내에서 인슐린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펩타이드의 일종으로 여주의 열매와 씨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카란틴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지용성 성분이라는 것은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포장을 마친 마른 여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야기에 빠져들자 박 대표는 여주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바구니를 들고는 터널식 하우스로 안내했다.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는 터널 곳곳에 여주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5월초에 파종되었던 여주는 이제 끝물입니다. 여주 수확은 서리 내리기 전까지 가능하나 상품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든요. 지난해에 토종여주를 30,003㎡를 심어 15톤을 수확했죠. 올해는 토종여주, 대만산 애플여주, 일본산 슈퍼여주를 6600㎡를 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한달간 비가 오다 보니 작년보다 수확량이 1/5로 감소했습니다. 열매가 잘 달렸어요. 그래도 다시 몸살하면서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고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여주를 바구니에 담는 도중 평소 볼 수 없었던 동그란 모양의 애플여주와 길쭉한 모양의 여주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말이 재미있다.

"제가 식물 이름을 붙이면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닙니다. 대만산 애플여주가 그 좋은 예입니다. 보세요, 사과처럼 둥들둥글 하잖아요. 변이종은 벌 나비들의 수정으로 생깁니다. 분명히 구분하여 심어도 이렇게 변이종이 나오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여주를 수확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안내했다. 처음 오시는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 놓으면 상품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수확한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여주는 보통 1주일에 한 번 씩 수확합니다. 너무 익어도 상품성이 없습니다. 겉모습을 보면 따야 되는지 따지 말아야 되는지 보입니다. 크기에 관계없이 보면 압니다. 이것은 커도 덜 여문 것이고 이것은 작아도 상품성이 좋은 것입니다. 이것은 놓아두면 더 커집니다. 보통 울퉁한 엠보싱을 보면서 수확합니다. 대만산은 미끈하고 부드럽습니다. 토종과 일본산은 울퉁불퉁하고 뾰족합니다. 이같이 여주는 나라별로 색깔과 모양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상품성이 좋은 여주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가 이처럼 여주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끊임없는 관찰과 연구의 결과다. 다른 나라 종자를 구하고 문헌을 검색하는 한편 여주환과 건여주를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성이 스며있다.

"토종여주는 속에까지 꽉 차서 씨방이 분리가 안됩니다. 건여주를 만들어 보면 수확량이 적습니다. 슈퍼여주는 양은 많은데 속이 비어있죠. 겉에만 남고 씨방이 분리되니 모양이 잘 안나옵니다. 이와달리 변이종은 길쭉하여 상품을 만들어 놓아도 모양이 좋습니다. 지금은 생것을 썰어서 말려 고객들에게 판매합니다.
일반적으로 감칠맛이 있고 끝 맛이 좋다고 해요. 여주차는 쌉스레하면서도 맛이 괜찮습니다."

이런 그는 요즘에는 공중파 방송과 신문의 홍보를 되도록 사양한다.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방송과 신문에 나가게 되면 기존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 고객층이 리스트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고객들이 찾고 또 찾고 합니다. 고객들에게 1년 내내 판매를 해야 하는데 3월이나 4월 쯤 여주가 없다고 하면 안되잖아요. 저온 저장고에 보관해서 고객들에게 드리기 때문에 굳이 홍보를 안해도 됩니다."

이처럼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그는 2004년 3월 농장을 개원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건강농법을 계속 유지해 온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지난해 12월31일자로 명예퇴직을 한 후 올해 1월부터 자연농법을 위해 장모인 강순자(72)여사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여주 이외에도 콜라비, 돼지감자, 야콘, 둥근대마, 토종 무청을 수확하고 있다. 그의 컨셉은 당뇨와의 싸움이다.

"처음 농장을 시작하게 된 것도 좋은 잉여 농산물을 나눠먹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믿음터, 소망터, 사랑터, 행복터, 나눔터, 희망터, 매향터, 하늘정원터, 은혜터, 어울림터, 고인돌터, 옥터, 여옥터 등 16,500㎡에서 생산되는 자연 농산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합니다.

씨앗을 자가 채종해서 심는 것도 옛 맛을 재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주말농장에서 벗어나 자연농법으로 감자와 마늘 위탁 농장을 시작한 이후 올해 가을은 김장배추를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잖아요."

그의 농사철학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사일기를 8년째 쓰며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그의 마음 씀을 보니 덩달아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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