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산의 한글시가엔 신시 비슷한 것, 시조 같은 것, 가사 닮은 것 등이 뒤섞여 있습니다만 한 마디로 딱히 요것이다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대 아마추어 문인들이 대개 그렇듯, 응산은 한글시가에 있어서만은 장르의식이 거의 없던 듯합니다. 이런 점은 정형률을 엄수한 그의 한시와 뚜렷이 대조가 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주목되는 작품을 들자면 39세에 지은 '늦은 길 바쁜 걸음'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늦깎이가 된 응산으로서, 그야말로 '중천(中天)'에서 '반서천(半西天)'으로 날은 저물고 길이 멀어 초조함을 안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균수명이 50에도 못 미치던 시절, 나이 40이면 저승 갈 보따리를 챙기라 법문하던 시절이니까요. 주제나 내용은 물론 시어 선택이나 수사에 이르기까지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넉넉한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일부라도 읽어 보세요. 마지막 대목을 읽을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납니다.

갖은 계획 품에 품고 이른 아침 행장 차려/희망봉 바라면서 멀고 먼 길 떠났었네/산은 어이 높고 높아 물은 어이 길고 길어/가는 길이 끝이 없어 둔전둔전 지체했네/아차 중천 바라보니 사정없는 저 일력(日曆)은/차츰차츰 빨리 가서 반서천이 늦어졌다/목적지를 못 다 가고 중도에서 저 해 지면/정한 계획 다 틀려서 이 실패를 어이 하리.

다음은 시조형에 가까운 '우리의 보물'입니다. 종장에서 쓰인 음수율이 평시조의 매력적인 틀(3·5·4·3)을 깨뜨린 것이 흠이지만, 그야말로 미옥 같은 매력이 느껴지지 않나요?

여기에 있는 미옥 깊이 감춰 두오리까
세상에다 팔으리까 팔기야 팔 테지만
그 사람 기다려서 그 값을 구하노라.

응산 문학의 진수는 한시입니다. 출가 전 유생들과 한시를 주고받는 등 금체시를 익힌 응산은 7언율시 등 정격 한시를 즐겨 지었죠. 그러나 소수의 선시에 상당량의 종교시도 있긴 하지만, 이들 시의 태반은 명승지나 고적을 찾아가 풍류를 즐기는 서정시 내지 서경시의 성격을 띤 것들이 많습니다. 〈도운전망(道運展望)〉이란 절구는 100년 성업을 앞둔 우리가 읽을 만한 시네요. 결구의 '삼십육궁'은 편한 대로 '온 세상'으로 풀어도 좋습니다.

宇宙沖融一理眞(우주충융일리진) 우주가 화하니 하나의 진리로다
東方露出大精神(동방노출대정신) 동방에 솟아 드러난 큰 정신이여
洋洋聖道流行處(양양성도유행처) 양양하다 거룩한 길 흘러가는 곳
三十六宮都是春(삼십육궁도시춘) 삼십육궁 모두가 봄, 봄이로세.


응산의 문장은 실용적인 글, 논리적인 글, 문예적인 글이 다 있지만, 주목할 것은 논리적인 글입니다. 에세이풍의 논리적 문장들은 상당히 정연하고 탁월한 바 있죠. 정작 문예문은 기행문이 태반이어서 서경성은 돋보이지만 종교적 색채의 탈색이 조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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