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후진국병이 아닙니다"
특수환자와 함께 한 35년, 사회인식 개선 필요
박사과정 밟으며 간호사 평생교육에 관심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 /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가수 권혜경이 불러 유명해진 '산장의 여인'의 가사다. 국립 마산병원 결핵환자를 대상으로 반야월씨가 작사한 것이다. 이런 애절한 역사를 품고 있는 마산병원에 간호과장으로 있는 최선인행(58·고성교당) 교도.
그는 10월27일 국제적십자사로부터 2년마다 선정하는 나이팅게일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상은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기리고 헌신적인 간호사에게 주는 상으로 1920년 제정됐다.

"사실 나이팅게일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고흥교당 이운숙 교무님의 권유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제가 국립 소록도병원에 부임한 이후 소록도교당과 왕래는 있었지만 입교를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무님과 첫 만남에서 성철스님의 상좌였던 고모님을 너무 빼닮은 거예요. 그리고는 좋은 느낌으로 입교했습니다. 저의 간호사 일생을 다 들으신 교무님이 나이팅게일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넌지시 건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소록도병원장님의 추천으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큰 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가 7년 가까이 근무했던 국립 소록도병원은 한센병 환자가 650여 명이 모여 살며 격리된 생활을 해오고 있다.

"한센병 환자들은 가족이 먼저 버린다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한센병이 눈, 코, 손 등에 오니까 사람들이 대하기를 꺼립니다. 가족이나 사회가 자신들을 완전히 소외시킨다는 생각에 한센인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6월20일, 국립 마산병원으로 부임한 그는 특수환자들(한센병, 결핵, 정신병 등)만 35년째 대하며 아픈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마산병원은 결핵치료의 메카로 일제강점기에 설립됐다. 그의 첫 번째 근무지가 바로 이곳 마산병원이었다. 결핵환자를 돌보는 것은 정신적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그는 민간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에 비해 낮은 인식과 편견이 힘들게 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간호사로서 침이나 들숨 날숨, 재채기, 가래 등으로 환자들에게 감염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어려운 점을 털어놓았다.

"이곳에 근무하면서 결핵에 감염돼 도중에 그만 두는 간호사들을 많이 봤습니다. 일단 동료 간호사가 결핵에 감염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마스크와 위생장갑 착용은 최근에 시행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전염위험이 있는 양성환자를 치료했어요."

결핵에 한번 감염되면 짧게는 9개월, 길게는 2년6개월 이상 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병을 치유하는 데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결핵이 후진국병이라는 인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결핵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습니다. 결핵은 폐질환으로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낫지만 치료에 정성을 드리지 않으면 내성균이 생성됩니다. 이렇게 되면 강한 약을 처방해 결핵을 퇴치하도록 하지만 내성균이 생긴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때 더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환자를 격리 시키는 것이지요. 요즘 와서 다시 국립 마산병원을 주목하는 것은 결핵환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서 특수환자를 오랫 동안 경험한 경륜이 묻어나왔다. 결핵균과 한센균은 사촌형제라고 했다. 균의 성질이 많이 비슷해 성(姓)은 같고 이름만 다르다는 것이다. 오히려 초기치료는 한센균이 쉽고 결핵균은 장기간의 치료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산병원에 김지하, 서정주, 김대규, 권한, 고은 시인 등 당대 유명인사들이 치료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마산병원에 처음 근무할 때 김지하(본명 영일) 시인이 제가 담당하는 환자였습니다. 대학생들만 따로 관리하는 입원실이 있었는데 그곳을 대학병동이라고 불렀지요. 그 당시 김 시인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3번이나 우리 병원에 입원했어요. 고문을 당해 건장했던 체격이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수발은 영내 천주교 수녀님들이 다했지요."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정년을 앞두고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교육학 박사과정을 한 학기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간호사들의 평생교육에 대한 논문을 쓸 겁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최근 새로운 치료(웃음, 그림, 음악 등)방법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이런 조류에 선배 간호사로서 빨리 적응하고 모범을 보여 환자들에 더 좋은 치료환경을 제공할 것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쯤 그는 나이팅게일상 메달과 기장, 인증서를 책상서랍에서 꺼내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간호과장실을 나오자 덩치 큰 은행나무들이 내려놓은 노랑물결이 그의 힘들었던 여정을 위로하는 듯 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