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우울함 '즐거움·유쾌'로 승화

▲ 서픈차 마을의 묘지.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돼 관광지가 됐다.
▲ 여행자 박용분 씨(경기도청 근무)
루마니아 북서부 서픈차(Sapanta) 마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TV를 통해서다. 시청자들이 직접 여행 다녀온 곳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중 세계 유일의 '즐거운 묘지'를 소개한 것이다. 수원에 거주하는 박용분(40·경기도청 근무) 씨가 7월에 다녀 온 '루마니아의 서픈차 마을'. 신문에 소개 하고 싶다는 열망이 본지와 인연이 됐다.

즐거운 묘지와 만남

루마니아 서픈차 마을을 직접 갈 수 없어 방송국을 통해 박용분 씨 연락처를 받았다.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며 서픈차 마을의 즐거운 묘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1998년도에 동유럽을 여행하기로 하고 가이드 북을 구입했다"며 "여러 여행지 중 눈길이 머문 것은 '서픈차 마을'이었다"고 소개했다. '꼭 가봐야겠다'는 확신이 선 것이다. 그는 올해 7월 친구들과 두 번째 루마니아 여행을 하면서도 "친구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곳이라 여행코스에 또 넣었다"며 "'묘지'와 '즐거운'이라는 어감이 상반되는 묘한 매력에 친구들도 끌렸다"고 말했다.

그곳엔 600여 기의 묘지에 각각 죽은 이의 말이 적혀 있다. 또 아주 경쾌한 빛깔과 문양으로 묘비가 꾸며져 있다. 각 묘비명에는 죽은 사람의 별명과 그의 생전 직업들을 쓰거나 그려져 있다. 맨 위에 그려진 비둘기가 흰색이면 정상적인 죽음을 말한다. 반면 검은색은 비극적인 죽음을 뜻한다. 그림마다 색깔도 의미가 각각 다르다. 녹색은 삶을, 노란색은 풍요를, 붉은색은 열정을,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한다. 마을 교회 안에 자리한 이 묘지는 언제 어떤 일로 마을 사람 누가 세상을 떠났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 사연을 담은 묘비

1935년 이 마을 주민이던 이온 스탄 파트라슈가 고인의 생전 직업과 생활의 특징을 유머러스하게 묘비에 조각하고 색칠하기 시작했다는데서 즐거운 묘지는 유래한다.
그림만 봐도 양치기와 선생님, 푸줏간 주인 등 고인의 살아 생전 직업을 알 수 있다. 술을 잘 마셨는지, 요리를 잘 했는지도 알 수 있다.

묘비에 적힌 비문들 내용은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들 저를 봐 주세요. 저는 이 세상을 즐겁게 살다 갑니다. 저는 제 형제들과 놀기를 좋아 했어요. 형제들이 노래를 부를 때 전 춤을 춥니다. 내가 결혼하려고 할 때 죽음이 저를 찾아와서 저를 거두어 갔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 대신 형제들로부터 위안을 받으세요."(20대 청년)

"나는 시비우시에서 온 그 택시를 증오합니다. 이렇게 넓은 나라에 어디 차 세울 데가 없어서 우리 집 대문 앞에까지 와서 나를 차로 받다니, 어린 아이를 잃은 내 보모의 슬픔은 무엇과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로 큽니다. 나의 가족들은 살아 있을 그날까지 나를 위해 애도할 것입니다. 1978년 두 살의 나이로 죽다."(두살바기 어린아이)

이렇듯 각양각색의 화려한 무늬의 묘비 위에 새겨진 비문들은 죽은 자의 하소연을 담아내고 있다. 불치병으로 사망한 한 가정주부의 비문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기도 하다.
▲ 묘비마다 죽음의 사연을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죽음관

묘비에 등장하는 이름들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양치기, 퇴직 군인이라는 직업에서부터 귀머거리, 주정뱅이 등 별명까지 다양하다. 서픈차 마을에는 단지 네 개의 성이 존재한다. '폽, 스탄, 투르다, 홀디스'다. 묘비에 별명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 개 밖에 안 되는 성만으로는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별명은 주로 그 사람의 직업, 모자라는 점, 나쁜 습관 등과 연관 돼 만들어진다.

이렇듯 묘지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서픈차 마을의 죽음관과 연관이 있다. 서픈차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티사강과 카르파티아산맥으로부터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마을이다. 약 5천명 정도의 주민들로 구성된 이 마을은 루마니아 북부지역인 마라무레시지방의 여타 마을들과 같이 매우 고립돼 있다. 마라무레시지방은 오래 전부터 지리적으로 멀고 접근이 어려운 관계로 외부로부터 문화적, 정치적 영향을 다소 보호받을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타지방에 비해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마을주민들은 정교회의 전통을 열심히 실천하며 그것을 하나의 의무로 간주한다. 루마니아의 농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라며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일반적으로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저 세상으로 편안하게 보내는 데 목적이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루마니아 장례식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히 고인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의식이라기보다는 루마니아인들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루마니아에만 있는 '즐거운 공동묘지(Merry Cemetery)'나 밤에 고인을 지키는 '경야풍습', 그리고 고인에게 '마지막 키스'하는 장면 등은 루마니아만의 독특한 장례풍습이다.

루마니아 장례식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촛불'이다. 저 세상으로 가는 어두운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 없으면 천국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에서 혼자 사는 나이 많은 독거노인들은 밤에도 불을 켜둔 채 잠을 잔다고 한다. 혹시라도 잠자는 사이 죽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불을 켜 두는 것이다.

이제는 세계문화 유산

박용분 씨는 "98년도에 방문할 때는 입장료가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며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입장료를 받고 있고, 민박도 활성화가 되어 마을이 '즐거운 묘지'로 인해 공동체가 되었고 생계 유지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생각의 전환이 마을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또 마을을 다녀간 세계인들에게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루마니아 북서부 서픈차 마을에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우울함'을 '유쾌함'으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자신들의 '내세관'을 정립하는 '즐거운 여행'을 마무리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